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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를 그만두다 - 소비자본주의의 모순을 꿰뚫고 내 삶의 가치를 지켜줄 적극적 대안과 실천
히라카와 가쓰미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태어날 때 부터 자본주의 속에 있었고, 곧 바로 '돈'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자본주의를 지극히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이것에 대해 그 어떤 문제 의식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오로지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돈이 없다면 그것은 개인의 불성실함이나 능력의 문제라는 인식이다. 무엇보다, '소비'가 우리의 삶에 아주 커다란 부분으로 다가왔다. 소비가 사라진 사회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버린 것 이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그 돈을 쓰기 위해서 이다. 회사에서 우리에게 돈을 주는 이유는, 그 돈으로 물건을 계속 사면서 소비를 하라는 말이다. 결국 우리는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소비를 하고, 돈이 다 떨어지면 또 일을 하는 그 메커니즘 속에서 마치 쳇바퀴 구르듯 살아가고 있는 것 이다.
이 책은 이른바 '소비자 1세대'였던 저자가 겪게 되는 커다란 변화와, 그것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자세히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저자의 어머니가 동네 슈퍼에서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필요 없는 물건을 사오는 이야기 인데, 지극히나 합리적인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안되는 행동이다. 속옷이 집에 많은데, 어째서 또 속옷을 사온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그 당시에 가게에 가는 이유는 오로지 물건을 사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것 이다. 즉, 모든 인간 관계가 돈과 상품의 교환만으로 끝나지 않는, 그보다 더 깊은 관계가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느새나 우리 주위에는 이러한 슈퍼나 가게가 사라지고, 편의점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분명 24시간이라 우리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해주긴 하지만, 우리는 편의점 직원과 그 어떤 인간적인 관계도 맺으려고 하지 않는다. 책에서 나온 듯, 편의를 추구하는 만큼, 우리는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소비자 1세대인 저자는, 어쩌면 패전후 일본에 다시금 본격적으로 자본주의가 도입이 될 때를 살아오면서, 자본주의가 주는 상처들을 고스란히 받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나라에서 '이상'이라는 시인이 '날개'를 통해 그 상처들을 노래할 수 있었듯이, 저자 역시 자본주의로 인해 삶의 많은 부분들, 혹은 사회의 많은 부분들이 크게 변하는 걸 느끼고, 그에 따라 이 책을 쓰지 않았나 싶다. 분명한 건, 자본주의가 우리 인간의 본성은 아니라는 것 이다. 자본주의가 우리 인류를 지배하기 시작한지, 기껏해야 2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전 까지는 돈을 몰라도 잘만 살았다는 말 이다. 바로 이 점이, 아직 자본주의가 강해지기 전에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가 이 책을 쓸 수 있는 강력한 이유이기도 하다.
돈의 사용가치에 대한 분석, 주5일제, 월마트 효과 등, 이 책은 자본주의와 관련된 많은 중요한 개념들을 다루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이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분석은 무척 좋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러한 분석 다음으로 오는 '결론' 이었다. '소비'가 미덕인 마냥 여겨지면서 더욱 자본주의의 매커니즘 속에 강하게 빠져드는 우리들에게 해법이라고 제시 하는 것이, 커피를 사먹지 말고 그냥 개인 커피점을 만들어라는 것이, 절로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대목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표면적으로는 소비를 하지 않게 되는 것 이지만, 과연 이게 해법일까. 이런 논리라면, 우리가 소비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식당, 커피집, 목욕탕, 옷집을 따로 이용하지 말고, 아예 이러한 가게를 모조리 차리는 것 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게 가능한가? 스스로 일해서 스스로 먹는 '농사'의 매커니즘을 새롭게 적용하긴 했지만, 이건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그냥 나의 눈에는, 그렇게 커피집을 차릴 만큼 돈이 남아 돌아서 개인 커피집을 차렸다는 자랑으로 밖에 안 비춰진다. 커피집을 차리는데 1억이 들었다고 가정하면, 그 덕에 하루에 커피 값 10000원을 아낄 수 있게 된 것이, 소비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걸까? 초기의 비용인 1억은 훨씬 커다란 소비가 아닌가?
이런 결론의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가 '소비'에 맞서서 좀 더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답은 틀렸지만, 그 풀이 과정에 있어서 쓰인 공식들은, 충분히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이다. 그런 점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한번쯤은 권해주고 싶은 책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