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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아트앤 스터디에서 강신주 박사님의 인문학 강좌를 함께 들으면서 이 책을 보다보니, 책 내용이 대부분 강연 내용과 일치해서, 이 책을 읽는 과정은 '내가 들었던 것을 책으로 보는' 느낌 정도 였다. 마치 다상담을 미치도록 듣다가,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봤던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책을 보기 전 까지만 해도 '자본주의'에 대해서 논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기도 하고,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순간 공산주의를 찬양한다는 말도 안되는 흑백논리에 나 역시도 멀리 떨어져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체 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해서 그것을 논하는 것을 금기시 여기는 것이 그 얼마나 미련한 일이고, 우리에게 그 어떤 진보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을, 역시나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살아간다. 태어날 때 부터 자본주의 였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도 여전히 자본주의 이다. 그러다보니 어쩌면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모습 마저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며 현 체제에 대해서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점에서는 저자인 강신주 박사님 역시 마찬가지 일테다. 아무리 우리가 떠든다 하더라도, 그 체제 속에서 완전히 녹아 있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태풍 속에 들어와 있으면 태풍의 모습을 결코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 이다.
그래서 강신주 박사님은, 이 태풍을 멀리서 바라 보려 노력했던 옛날 철학자들과 시인들의 눈을 빌려서, 지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이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한 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 이다. 이 과정에 있어서, 벤야민, 보드리야르, 보들레르, 짐멜 등 유명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들이 등장하였고, 이상과 투르니에 같은 문학자 들도 등장 하였다.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우리의 맨 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이다.
이 책은, 한편으로는 나에게 새로운 인문학을 시작하게 해 주었다. 이 책,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강연을 계기로 나는 '자본주의'라는 주제에 대한 인문학에 무척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내 책장에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트루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 등 여러 책이 새롭게 꽂히게 해주었다. '장자'로 머물렀던 나의 철학 공부 역시, 다시금 '벤야민'으로 시작하게 해주었고, 이제 '니체'를 조금씩 접하게 만들었던 그 '호기심'과 '욕구'를 불러 일으켜 주었다. '철학 vs 철학'이 나의 철학과 인문학의 입문서이자 시작이었다면, 이 책은 다시 시들해져버린 나의 철학과 인문학에 대한 공부 의욕을 다시금 불러 일으켜 준 소중한 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