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동물 관찰기 - 다윈의 안경으로 본
마크 넬리슨 지음, 최진영 옮김 / 푸른지식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가 개미를 관찰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개미가 무척이나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과,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하나의 커다란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곤충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서, 개미들은 과연 자기 스스로를 그런 식으로 관찰 할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 이다. 개미들이 관찰하는 것은 자신의 먹이와, 자신을 해치려고 하는 많은 위험한 것들이다. 그들 스스로를 관찰하는 것은 그들의 생존과 직결되지도 않고, 그 어떤 먹이도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통찰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대단한 일 인지 모르겠다. 단순히 '생존'을 넘어서서, 좀 더 나아가기 위해 자신을 돌이켜보고, 보다 진보된 사회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진화에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이니 말이다.

인간의 사유의 동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사유'보다는 '동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쩌면 인류가 이정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사유'가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우리는 스스로가 '동물'임을 자기도 모르게 잊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십만년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바가 없는, 동물원에 침팬치와 자신이, 결국에는 똑같은 '동물'이라는 것에 기분이 좋아질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결국 본질은 동물이고, 이 책 역시 철저하게 '본능'을 부각시키며 인간의 동물적인 면으로부터, 우리가 '사회적인 것'이라고 이름붙이고 있는 것들의 고정관념을 깨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에 관한 부분이다. 이것을 나누는 기준은 흑백논리가 아니라, 인간은 꼭 큰 키와 작은 키만 있는게 아니라 '중간 키'도 있다는 점을 비교하며,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중간 지점에서 얼마나 한 쪽으로 치우치냐에 따라 그것이 결정된다는 것은, 어쩌면 인권이 확대됨에 따라 많은 논란이 되어 가고 있는 이 부분에 대해, 새로운 사고의 길을 열어주지 않나 싶다.

어쩌면, 인간은 지나치게 자신의 종족을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개미가 그 스스로를 제대로 탐구할 수 없듯이, 우리 인간 역시, 우리가 인간 대상자 그 자체이기에,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그런 것을 배제하며 인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다윈이 위대하게 평가 받는 것이고, 그리고 그런 다윈의 시각에서 우리 인간을 바라본 저자 역시, 우리에게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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