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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울수록 가득하네 - 행복을 키우는 마음연습
정목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언젠가 부터, 그저 빠르게 달려나가데만 급급했던 요즘. 나는 그런 속도감을 즐기고 있었다. 속도보다 중요한건 방향이라는 걸 잘 알지만, 이 쪽 방향이 맞는지, 저 쪽 방향이 맞는지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이리도 가보고, 저리도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열심히 기웃거리며, 도대체 어떤 방향이 맞는지 찾아다니며, 지난 1년을 바쁘게 보냈었다. 그러다가 유난히도 힘들고, 지치는 요즘, 나에겐 무언가 변화와 휴식이 필요했다. 열심히는 살고 있지만, 그냥 그 뿐 이었던 것 이다. 그런 내게, 이 책은 한 줄기의 빛과 같았다.
이 책의 첫 시작은,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자' 이야기로 시작된다. 배가 부딪히려 하자, 상대편 배를 향해 방향을 바꾸라고 고함을 치지만, 부딪히고 나니 그 배는 텅 비어 있었고, 고함을 지른 사람의 화도 눈 녹듯이 살아졌다는 얘기. 그저 웃음거리로 넘길 수도 있는 얘기지만, 그 환경, 형태만 바뀌었을 뿐, 결국 그 본질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까 싶다. 우리들은 배가 텅 비어 있는지도 모르고, 항상 그 배를 향해 소리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에서 인상 깊은 부분은, 바로 '화'나 '분노'에 대해서 자신을 한 걸음 떨어뜨려, 그것을 '객관화' 시키는 것 이다. 흙탕물의 본질이 뿌연 그 자체가 아니라, 맑은 물과, 그 아래에 있는 흙인 듯, 우리가 지금 느끼고 있는 화나 분노도, 결코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것 이다. 흙탕물을 가만히 두면 잔잔히 가라앉듯이, 우리의 마음 역시, 가만히 두면 화나 분노가 빠져나간다. 그것들이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 이다. 즉 이것들을 '객관화' 시키는 순간, 우리는 이러한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말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우리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듯 하다.
또한 역시나 인상 깊었던 구절은, 바로 '달은 차면 기운다'라는 것 이다. 책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그저 채우기에만 급급한 현대인에게 던지는 메세지는, 무척이나 역설적이었다. 달이 차면 기우는 것은 맞지만, 비울수록 가득해진다는 뜻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은 그 논리적으로 어긋난 말에 대한 증명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덮은 시점에서, 그제서야 아주 조금이나마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새로운 음악을 듣기 위해선 우리가 그 음악을 느낄만한 여유가 있어야 하고, 새로운 가르침과 깨달음을 채우기 위해선,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얄팍한 지식과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가득 찬 잔에 어떻게 새로운 물을 더 부을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선,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가득 채워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얼핏 들으면 논리적으로 어긋나는 말일지 몰라도, 한 면만을 바라보지 말고, 시간의 흐름까지 고려해 유연한 시각으로 봐서는, 분명 맞는 말이라는 것 이다. 바로 이것이 서양과는 다른, 우리 동양만의 사상이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명상' 이다. 그런 점에서, 아직 명상에 대한 절대적인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였다. 분명 중요하고 좋은 것인지는 알겠지만, 나는 아직 그런 명상보다는, 조용한 노랫소리를 들으며 독서를 하는게 훨씬 행복하고, 내 마음을 가라 앉혀지는 편 인 만큼 말이다. 하지만, 정목 스님은 명상은 따로 시간을 내서 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도 또 하나의 길을 열어주었다. 바로, 일상을 명상으로 채우라는 것. 무의식 속에서 나와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 하나하나, 자신이 보고 있는 것,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 하나 하나에 섬세하게 느낀다면, 그러면서 현재에 집중하고, 충실해진다면, 그것 역시 명상이라는 말로, 내가 명상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과 틀을 깨게 만들어 주었다.
할 일이 많고, 앞으로 달려나가기 급급하고, 자신이 과속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 이 책을 한번 권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야 할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멈춰설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달려나가고 있는 자신을 인지 할 수 있고, 스스로 '사유'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명상'보다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