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는 여자 - 체육관에서 만난 페미니즘
양민영 지음 / 호밀밭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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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에 들어선다.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 거기에 맞춰 수많은 사람이 열심히 몸을 움직인다. 러닝머신에서 열심히 뛰는 사람, 매트에 누워 스트레칭하는 사람, 이를 악물고 철봉에 매달려 있는 사람, 덤벨 혹은 바벨과 씨름하는 사람 등 제 각자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다. 여기저기 단백질 쉐이크가 담긴 물통이 나뒹군다. 운동은 어느새 건강 증진을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되며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이다. 신체 능력과 생존의 연관성이 그 어떤 세대보다 옅어졌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세대는 운동에 가장 관심이 많고 열광하는 세대임이 분명하다.


운동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것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동안 켜켜이 쌓여온 온갖 성차별과 편견 역시 체육관으로 고스란히 이동했다. 체육관은 기본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곳이고, 그 어느 곳보다 몸이 대상화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탓에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몸에 대한 성적 대상화, 성차별 등이 흔하게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여성 인권과 관련한 목소리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미투 운동을 중심으로 여성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대였지만, 이와는 달리 체육관에선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운동하는 여자』는 이러한 침묵을 깨며 등장한다. 신체활동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저자는 우연한 기회로 운동에 빠져든다. 그저 운동을 통해 체력을 기르고 근육을 만들며 미용과 건강을 얻는 데서만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과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은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끔 만들었다.


1부는 ‘나는 운동하는 여자입니다’는 레깅스, 승모근, 노브라, 싸움 등 개인이 운동을 하며 쉽게 마주치는 소재와 거기에 따른 불편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2부 ‘그라운드에 선 여자들’은 세리나 윌리엄스, 김보름, 론다 로우지, 팀킴, 지소연 등 여성운동선수의 이야기를 다루며 이들이 겪는 성차별 혹은 왜곡된 시선 등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3부 ‘일인칭 운동하는 여자 시점’은 영화, 만화, 음악 등 각종 콘텐츠가 운동하는 여성을 다루는 방식을 지적하며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잘못된 성 관념과 편견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지적한 문제들은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레깅스가 성적으로 소비되는 운동복이라는 지적은 찬반이 나누어 질 수 있는 문제다. 운동 자체에 미용의 목적이 있는 만큼 승모근을 기피하는 모습을 성차별적인 문제로만 바라보긴 어렵다. 여성선수에게 일어나는 출산경력단절 문제는 뚜렷한 대안을 마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며 여성선수에게 종종 쓰이는 악녀 이미지 역시 하나의 마케팅 전략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다만 중요한 건 이러한 문제에 대한 찬반이 아닌, 그동안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당연히 받아들였던 것들을 공론화하는 데 있다. 누군가에겐 과도한 불편함으로 인식되더라도, 오히려 그런 불편함이 축적되면 켜켜이 쌓인 문제들을 수면 밖으로 드러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1부 개인의 이야기와 2부 여성운동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세밀하게 설계된 담론은 3부에 이르러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우리가 예전부터 그 어떤 의문도 갖지 않고 소비했던 콘텐츠들을 찬찬히 뜯어보는 과정에서,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 속에 어떤 것들이 녹아 있었는지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다. 특정 의견에 대해 찬반은 나누어질 수 있다. 다만 개인의 느낀 불편함에 의문을 가지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당연하다는 이유로 의문조차 갖지 않은 것, 혹은 침묵하고 있었다는 것이 곧 그것에 대한 전적인 동의로 간주하여선 안 된다.


『운동하는 여자』는 불편함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먼저 개인의 불편함을 이야기한다. 이어서 타인을 관찰한다. 개인의 문제를 대중적인 인정을 받은 공인의 문제로 확대한다. 더 나아가 사회적인 문제로 공론화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인이 느낀 불편함이 사회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저 운동을 좋아하는 평범한 개인의 생각으로만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변화는 개인의 불편함에서 시작한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그 무언가를 건드렸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회가 만든 관습과 틀을 인지할 수 있다. 페미니즘 운동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변화라면, 이 거대한 담론 역시 개인의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온갖 관습과 통념에 둘러싸여 그동안 내지 못했던 목소리를 비로소 입 밖으로 낼 때, 우리는 변화를 향한 첫걸음을 디딜 수 있다. 저자가 자신의 불편함을 이야기하며 변화의 불씨를 지폈다. 이 불씨를 살리며 점차 키워나가기 위해선 저자가 지적한 불편함에 대해 갑론을박을 주고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저자의 얘기에 공감하지 않아도 좋고,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아도 좋다. 이 주제로 속 시원하게 토론하며 각자의 생각을 다듬고 더 나은 담론을 하나하나 만들어나가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담론을 결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묵직함일지도 모른다.


불편함에 관한 이야기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이를 찬반으로 나누어 토론하는 과정은 더욱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시끄러움이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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