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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의 역사
클로딘느 사게르 지음, 김미진 옮김 / 호밀밭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서평] 좀 더 성숙한 사회를 고대하며 - <못생긴 여자의 역사>( 클로딘느 사게르)를 읽고
인류는 오래전부터 예술을 추구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보며 그 위대한 시작을 어렴풋이 계산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대략적인 추측에 불과하다. 예술은 지역과 시대 따라 조금씩 달라졌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지향점은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일치했다. 미의 기준은 계속 바뀌어 왔지만, 모든 예술은 그 시대가 지향하는 아름다움을 향했다. 아름다운 것을 선호하는 건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이것은 동물적인 본능이기도 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전에 사회적 '동물'이었다. 하지만 본능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게 정당화될 수 없다. 이러한 본능 때문에 칠흑 같은 어둠에 가려져 처참한 삶을 살아간 이들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해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까지 '못생긴 여자'들의 역사를 다룬다. 이들은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외모가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에서 배제되었다. 한 명의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 채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 바탕에는 성에 대한 잘못된 관념과 편견이 있었다. 가톨릭 사제, 철학자, 작가, 의사 등 사회 주류 남성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만들었다. 여성의 존재 이유를 남성의 욕망 대상이자 오로지 출산에만 있다고 주장했다. 오직 여성에게만 아름다움의 의무를 강요하며 욕망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던 추한 여성들을 끊임없이 조롱하고 멸시했다. 여성 혐오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뿌리 깊이 박혀 있었다. <못생긴 여자의 역사>는 그 뿌리를 추적하고 있다.
오랜 기간,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건 그 사람의 성품이나 노력, 능력 등이 아니라 핏줄과 신분, 성별, 외모였다. 지금의 잣대를 드리대면 비합리적이고 잘못된 일이지만, 당시에는 지극히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귀족 집안에서 잘생기고 예쁘게 태어나는 그 순간 화려한 삶이 시작되었다. 반대로 핏줄과 성별, 외모 중 그 어느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삶은 처참했다. 남성 중심, 외모 중심 사회에서 못생긴 여자는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 대해 그 누구도 의문이나 비판을 제기하지 않았다.
인지 혁명부터 시작해 농업 혁명, 산업 혁명, 그리고 과학 혁명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네 번의 혁명으로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을 지독히도 괴롭혔던 먹거리 문제를 해결했다. 평균 수명이 높아졌다.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다양한 사상과 종교가 탄생했다. 반면 인권 문제, 인간 존엄성 문제는 뒤늦게 등장했다. 우리의 시선은 그제야 여태 주목하지 않았던 사회적 약자로 향했다.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욕구들이 대부분 충족된 이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셈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이 아름답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는 건, 어쩌면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귀한 행위에 가깝다.
네 번의 혁명을 거친 우리는 다시금 새로운 숙제를 부여받았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되는 성별과 외모 등으로 차별받고, 구성원에서 배제되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 머무를 수도 있다. 또한 잘못된 편견을 극복하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회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인류는 오랜 기간 전자의 단계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역시 여전히 외모 지상주의가 만연하게 퍼져 있고 성적 대상화, 성차별, 뿌리 깊은 혐오가 남아 있다. 먼 미래 우리의 후손들은 지금의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까.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시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본능을 거스르는 고차원적인 혁명의 첫걸음을 뗀 시대로 기록될 될 것인가. 옳고 그름은 없다. 다만 좀 더 진취적이고 성숙한 선택이 있을 뿐.
우리는 후손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가. 선택은 우리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