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피아니스트 나남신서 943
H. 쇤베르그 지음, 윤미재 옮김 / 나남출판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학교 도서관 같은 델 가면 보면대에 사전을 펼쳐놓은 걸 볼 수 있다. 오다가다 궁금한 점 있으면 별도의 대출절차 없이도 누구나 펄럭펄럭 찾아보라는 배려같은 것인데, 그 자리에 놓여도 좋을 만한 책이 바로 <위대한 피아니스트>다. 제목만 보아서는 어느 피아니스트의 평전처럼 보이지만, 바흐 이래의 피아니즘의 변천사를 인물 위주로 엮어놓은 참고서에 가깝다. 피아노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음악의 이해'같은 과목이 있다면 교과서로 채택될만하다(분량이 650페이지가 넘고 책값이 비싼게 흠이다. 할인도 안해준다. 쩝). 나 역시 매일 조금씩 강의듣는 기분으로 틈나는대로 읽었다. 다루는 방대한 내용에 비해 서술이 쉽고 재미있는 일화를 많이 들려주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사나흘에 읽어치울 수도 있다. 하지만 교과서를 속독한다고 해서 그게 다 머리에 들어오란 법은 없고, 필요한 부분을 그때그때 찾는 능력을 키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므로, 시간을 두고 꾸준히 훑어나가기를 권한다.

이 책에서 집어낼 수 있는 중요한 흐름이란 게 있다면 다음의 두가지다 :

1. 연주자와 작곡자의 관계 - 연주자는 악보에 충실해야하는가?
2. 피아노는 타악기인가?

첫번째 물음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당연한 답을 갖고 있는 듯하다. 스트라빈스키가 말하듯이 "여기는 당신 집이 아니"기 때문에, 연주자는 작곡가의 지시를 숙지하고 충실히 잘 따라야 한다,는 것이 소위 현대적 개념이다. 악보를 제대로 읽고 음표와 지시어대로 연주하는 것이 음악원 우등생들의 첫번째 조건인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악보의 절대성이 인정된 것은 근래의 일이라고 한다. 음악에 대한 지극히 낭만적인 해석(표제적 해석)이 허용되었음은 물론이고, 작곡가의 허락 없이도 곡을 수정하는 일이 연주자의 권리처럼 인식되었으며, 심지어는 여러 개의 곡을 짜깁기한 새로운 곡을 만들어 버젓이 연주하기까지 했다. 피아노 연주회는 한바탕의 쇼에 지나지 않았고, 즉흥연주와 쇼맨쉽이 뛰어난 사람들이 대가로 환영받았다. 모짜르트의 순회연주가 '음악회'라기보다는 '재주자랑'일 뿐이었다는 사실엔 할 말을 잃게 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피아니스트와 작곡가가 같은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로 일부 설명된다.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는 자작곡을 연주하는 기교가였고 살롱이나 궁정에 봉사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피아노라는 악기에 종속되지 않고, 과장된 테이스트(개성의 표현 쯤으로 해석하면 되겠다)보다는 진지한 음악적 해석을 추구하는 음악가들이 꾸준히 출현했다. 그들이 오늘날 우리가 음악사적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사람들이다. 현대의 피아니즘은 악보에 대한 충실한 재현을 기반으로 개성을 인정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나 저자 쇤베르크가 지적하는 대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20세기 후반(~21세기 초반)의 시대적 유행일 뿐이다. 이지적인 시대에도 낭만주의는 살아있다. 다만 득세하지 못할 따름이다. 피아니스트 개개인에게서도 음표와 개성간의 충돌과 합의의 험난한 과정을 읽을 수 있다. 생물학의 유명한 명제 "개체 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는 음악에서도 유효한 셈이다. 쇤베르크의 관점에서 보자면, 피아노 분야 뿐만 아니라 바흐 이래의 음악사 전체가 낭만주의와 脫낭만주의 간의 진자운동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음악사를 개괄하는 데에 퍽 유용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번째. 피아노의 정체(?)에 관한 물음.
피아노에는 검고 흰 건반이 있고 그것에 붙은 해머가 줄을 때리면 소리가 난다. 피아노 역시 지금의 모습을 갖추는 데엔 오랜 시간과 기술적 진보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그 기본 원리가 '해머가 줄을 때린다'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포르테 피아노처럼 맑고 다소 빈약한 소리를 내는 종류에서부터 아예 듀엣용으로 두대를 붙여놓은 거대한 피아노까지 그 모습은 다양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피아노는 타악기인가 아닌가? 건반악기라는 애매한 명칭 말고, 소리를 내는 기본 원리에 입각해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결국 타악기라고 시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파생하는 또다른 물음은, 그럼 피아노는 두들겨쳐야 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피아노줄이 심심하면 끊어지고 해머가 망가지기 일쑤였을 때에도 피아노를 두들겨댄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어깨와 팔을 그대로 둔 채 손가락만 매끄럽게 움직이는, 심지어는 손등에 올린 동전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연주를 숭상하던 시대도 있었다. 피아노가 타악기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운지법과 같은 연주기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개성의 폭발에 환호하는 낭만주의와 화려한 타건 사이의 만남 또한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보게 된다. 하지만 높이 들어올린 손을 건반에 쾅!하고 내리찍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에 익숙하다면, 피아노에 매달린 듯이 웅크리고 연주하는 글렌 굴드의 모습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거의 꼼짝하지 않고서도 천둥같은 포르테를 낼 수 있었다는 다른 많은 피아니스트에 대해서도 소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쓰다듬듯이, 기름이 흐르듯이 매끄럽게 - 피아노를 타악기로 연주하기보다는 '하프를 뜯듯이' 다루었다고 해야 할 또다른 기교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것 역시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나에게 건네준 선물이다.

이 책이 씌어진 것이 1970년대 후반이므로, 현재 각광받는 젊은 피아니스트에 대한 평가는 거의 전무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부터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꼽힐만한 사람들은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고, 앞에서 꼽은 두가지 관점에 의해 친절히 설명된다(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미국 피아니스트에 대한 설명이 의외로 장황한 점은 '미국인이 쓴 책이기 때문에' 이해해 줄 수 있다). <위대한 피아니스트>는 현대에 이르는 피아노 음악의 흐름을 개괄할 수 있는 기초적 레퍼런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적당한 책이다. 집에 보면대가 있다면 펼쳐놓고 싶다. 피아노도 있으면 좋겠고. 음반? 그건 물어서 뭣하나?

 

ps 1. 여느때처럼 시비걸기
다른 책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인물 위주의 책을 번역할 때에는 인명을 표기하는데 신경을 많이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편집이 덜 된 부분이 적지 않은 것 역시 감점 요인인데, 인명 읽기가 어색한 점은 그 이상으로 눈에 거슬린다. 영어식으로 통일하든지, 아니면 원어의 발음을 조사했어야 한다(후자가 더 적당하다고 본다).  Korngold는 '콘골드'로, Curzon은 '쿠르존'으로 써놨는데, 내가 듣기로는 각각 '코른골트'와 '커즌'으로 발음한다. 이도 저도 아닌 이름표기 때문에 괄호 안의 원어를 보느라고 좀 어지러웠다. 저자 Harold C. Schonberg를 '쇤베르크'로 쓴 것은 원래 그렇게 불리기 때문인가? 미국인이라니 나같으면 '숀버그'로 읽겠는데 말이다.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와 헷갈리기도 한다.

ps 2. 리스트에 관해서
피아노 쇼의 대마왕이라면 단연 리스트를 꼽을 수 있다. 제멋대로 낭만성과 나잘났다 쇼맨쉽의 최고봉이라 하겠다. 그런 그가, 브렌델과 같은 '지적인' 피아니스트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발견되고 재평가되는 건 참으로 흥미롭다. 리스트에 관심없어하던 나같은 사람을 동하게 할 정도면 이 책은 '뽐뿌'에도 제법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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