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맨 The SandMan 7 - 짧은 생애 시공그래픽노블
닐 게이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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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닐 게이먼의 The Sandman 라이브러리도 벌써 7권째다. 우선 말해두고 싶은건 이 정도의 시리즈를 아직도 단순한 마이너 텍스트로 치부하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이란 거다. 그러니까 이건 훌륭하신 어른들이 한 손에 무라카미와 별다방 커피를 들고 벤츠에서 졸고 있을 때 혹은 팍스 아메리카나에 찌든 변신로봇과 헐리우드 여배우의 앙상블을 감상하고 계실 때, 설익은 청소년들과 우울한 청춘들만이 제 방구석에 앉아 뒤적거리는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이들은 정말로 훌륭하고 정교하며 깊이있는 "이야기들"이다. 나는 물론 The Sandman이 다른 어떤 이야기들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 이야기들이 실제로 매우 재밌다는 것, 그래서 동료에게 한번쯤 진지하게 읽어보길 권할 수 있으며, 문화 연구에서 자료로 쓰일 수 있고, 소개팅 상대가 취미를 물어온다해도 부끄럽지 않게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들이란 점은 확신한다.   

  다음으로 말해두어야 할 것은, 여지껏 국내에 발매된 The Sandman 라이브러리 가운데 이 "짧은 생애"를 최상의 것으로 고르는데 주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이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닌데, 왜냐면 우리는 이미 "서곡과 야상곡"의 후반 이슈들에다가 "안개의 계절"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시 발매된 8권을 읽고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제기랄. 아무튼 "짧은 생애"는 국내 발매된 시리즈 가운데 가장 분량도 많고, 번역도 나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영원'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서 구성원 전체가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매우 환영할만 하다. (그래, 나도 '죽음death'이 생각보다 적게 등장하는 게 불만이긴 하다) 나아가 여기엔 "인형의 집"이나 "안개의 계절"의 그것을 뛰어넘는 '영원The Endless' 자체에 대한 이야기, 즉 그들이 대표하는 세계의 본질적인 측면들에 대한 서사적인 관찰과 드라마가 담겨있다. 요컨대 이것은 The Sandman 라이브러리가 내포하는 세계 전체에 대한 묘사이자 현실에의 비유이며, 닐 게이먼의 정신 세계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미쳤고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는 확실한 증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짧은 생애"는 '분열delirium'과 '꿈dream'이 자신의 오빠이자 동생인, 그들과 같이 '영원' 가운데 한 명이면서도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버리고 잠적한 '파괴destruction'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사실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가는 여정은 샌드맨 이야기에서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여정은 "서곡과 야상곡"에서 모르페우스(꿈)가 자신의 도구들을 찾는 과정과도, "당신의 게임"에서 포텐틴을 운반하는 공주의 은밀한 행로와도 전혀 다르다. 여기엔 감금당하고 나약해진 샌드맨의 육체도 없고, 연쇄살인범들에게 둘러쌓인 소용돌이의 놀라움도 없으며, 뻐꾸기와 배신자들에 의해 계획된 서툰 결말도 없다. 형성자의 모래와 목걸이, 꿈결의 안정, 오랜 연인의 해방과 같은 여정의 결실이 있는 것도 아니며, 닥터 데스티니나 루시퍼처럼 그들을 위협할만한 방해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도 그럴것이 '영원' 둘이 모여있는데 무슨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꿈'은 여정 자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며, 그들의 목적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분열'의 경우는 꽤 진지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하나의 무언가를 쫓기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그녀를 스쳐지나간다.  

  결론인즉, 여기서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탐색과 모험이 갖는 근본적인 형식, 즉 "지금 이 여정의 궁극적인 목적이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인가"를 풀어놓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분열'과 '꿈'의 이 여정은 지금까지의 어떤 모험보다도 의문투성이며, 비할 바 없이 복잡하고 심각하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그들이 지나치는 모든 여정의 과정 자체가 문제시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여정은 표면적으로는 '파괴'가 어디 있는가에 대한 것이지만, 실상은 '파괴'를 찾는 그들의 여정 자체가 왜 일어나는지, 그것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것이다. 애초에 그들은 왜 '파괴'를 찾고자 하는가? 그들이 '파괴'를 찾는 여정을 시작해도 되는 것인가? 그들의 여정 자체가 사람들에게 분명한 슬픔과 죽음을 불러옴에도 그 여정을 지속해야만 되는가? 이것은 단순히 '분열'의 일시적인 변덕, '꿈'의 개인적인 관심과 가족에 대한 반성의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여기엔 '영원'들에 대한, 그들이 갖는 세계 자체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얽혀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닐 게이먼은 그다지 불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훌륭한 메타포와 이야기 구조로부터, 일견 복잡하고 연약하게 연결된 것처럼 보일 이슈 전체의 흐름으로부터, 대부분의 수수께끼를 놀라울 정도로 잘 풀어놓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작품의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매우 극적이고 아름다운(더 나은 수사를 가할 수 없음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방식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려면, 전체의 세밀한 부분들을 지나치지 않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분열'의 두서없는 혼잣말을, '운명'에 대한 그녀의 충고를 들으시라. 비행기에서 만난 꼬마와 모르페우스의 대화에 귀기울이라. 호박대가리 머브의 불평과 고양이를 향한 기도까지도 손쉽게 지나치지 마시라.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이어보고 모든 인물들과 사물들의 공통된 반향들을 찾아보시라 ―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번 읽으시라. 물론 거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언제나 유사한 결과를, 동일한 현실을 낳을 것이란 생각은 하나의 착각이요 오만이다. 그것은 언제나 끝나지 않는 꿈의 이야기 자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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