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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도 - 영원한 이방인 사백 년의 기록
김충식 지음 / 효형출판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투쟁과 자존,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슬픈열도>
김충식 저 l 출판사 : 효형출판 l 출판일 : 2006-05-25
북한 출신의 김신락은 일본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한국 출신임을 철저히 숨기고 일본의 영웅 역도산으로 살아야 했다. 두 가지 투쟁이 있다.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생존 투쟁과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자존의 투쟁.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외상으로서 패전 후 종전 작업에서 천황제를 지켜낸 인물로 일본인의 추앙을 받고 있는 도고 시게노리는 얄궂게도 조선 도공의 후예다. 조선인 김윤규로 태어난 대중작가 다치하라 세이슈는 탁월한 중세 일본어 구사로 일본 대중문학 최고의 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역도산, 즉 함경도 출신의 씨름꾼으로 스모 선수로 활약하던 김신락은 전후 프로레슬링계에 투신, 패배감에 젖어있는 일본인들에게 미국 선수들을 링에 메다꽂는 장면으로 승리감을 안겨주었다. 생존을 위한 그들의 변신은 차별의 벽이 얼마나 높았는지 반증한다.
자존을 위한 재일 한국인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법적인 차별 이상으로 '열등한 민족'이라 구박해도 반박 한 마디 대꾸할 수 없던 침묵이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김달수와 이회성은 글을 썼다. 침묵을 깨고 재일 한국인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적는 것만으로도 일본인들의 가슴을 울리는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김달수는 또한 고대 한·일 역사를 파헤쳐 황국사관에 젖어있던 일본인들에게 "일본은 한반도계가 세운 나라"라는 충격을 던져주며 재일 민족문화 운동을 이끌어갔다.
영원한 이방인 사백 년의 기록이라는 부제목 아래에 있는 이 이야기는, 개인적으로는 왠지 모르게
애환이 가득하고 연민의 정까지 불러일으키는 <인간극장> 혹은 <추적 60분>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을 재조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권에 찍혀 있는 국적도 한국이고, 여권의 커버 색도 한국이고, 그저 겉으로 보기에는 한국인의 표번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하지만
결정적으로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 수 없던 그의 이야기.
그러한 영원한 이방인으로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들에 대해 알고 나서부터는, 그들의 주변과 그들의 생활과 또 그들의 가슴앓이까지...
열병을 앓고 있는 ㄷ스한 재일 한국인, 재일교포 등등 관련 서적들이 마구마구 쏟아지는 걸 하나도 놓치기 싫었다.
자신들의 조국과 일본이라는 새로운 나라.. 그러한 자신들의 입장과 그들만의 이야기들을 섣불리 혹은 가볍게
입 밖으로 낼 수도 없고, 또 함부로 입 밖으로 내기도 싫어서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으로 악착같이 살고자 했었던. 그대들의 이야기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그마한 땅떵이가 그나마도 둘로 나뉘어진.. 그들을 영원한 이방인으로 취급했던 그 조그마한 나라인
'조국'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자 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10명이 자아내는 삶의 행보를 따라가다보면, 약소민족의 설움이 개인들 하나하나에게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비루하고 보잘 것 없는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하나하나 개인적인 모습들을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제목처럼 '슬프다'고 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 듯 하다.
하지만 슬픔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혹은 적극적일수도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내맡겨져 있는
그들의 쓸쓸하고 씁쓸한 삶을 나는, 이런 작은 책속에 있는 텍스트들로 인해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까.
알려지지 않았거나 숨겨져 있고, 또 관심밖의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을 발굴해내어 다큐멘터리적으로 책을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저널리스트 입장에서의 작가의 관점이 여실히 실용적으로 와닿기는 하지만. 역시 여러명의 사람들을 재조명하여 다루다 보니
살짝쿵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보도자료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부분에서는 약간 안타까웠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