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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 - 무일푼 하류인생의 통쾌한 반란!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최규석 삽화 / 이루 / 2009년 4월
평점 :
먼저 글쓴이인 마쓰모토 하지메의 흥미로운 약력부터 살펴보자.
그는 1974년 생으로, 작가 아버지와 아나키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적 부터 가난뱅이로 커왔다. 스무살 되던 해 호세 대학에 입학하여 '노숙 동호회'에 가입한다. 동호회에서 갈고 닦은 노숙의 기술로 무전여행을 감행하여 일본 내외를 돌아다닌다. 96년에는 학생식당의 밥값 인상에 반대하여 '호세 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 식당 난입 집회를 열었고 그 후 대학 측의 각종 규제에 반대하기 위한 찌개 끓이기 집회, 맥주 파티 투쟁, 페인트 투척 등을 감행해 학내 운동에 열성을 다한다. 2001년, 그의 이러한 활동에 위협감을 느낀 학교 측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학점을 줘서 졸업시킨다. 그 해 도쿄의 각 지하철 역에서 가난뱅이 집회를 열고 '가난뱅이 대반란 집단'을 결성한다. 크리스마스를 분쇄하자! 롯폰기 힐스를 불바다로! 가난뱅이가 설칠 수 있게 하라 등의 슬로건으로 공공 장소에서 찌개 끓이기, 집회 신고 내놓고 경찰 바람맞히기, 펑크록 틀기 등의 기발한 데모를 지속했다. 05년, 재활용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을 개점하고 그후 분점을 계속해서 냈다. 07년, 스기나미 구의회 선거에 입후보해 선거 운동을 빙자해 이런저런 시끄러운 집회들을 열었다.
나는 처음 이 책을 읽기 전 우스꽝스럽게 쓰여진 저자 약력을 훑어보며 '반체제와 저항 문화를 떠들면서 홍대 놀이터에서 밤새 술이나 마시고 시끄럽게 구는' 아나키펑크 돌+아이들을 먼저 떠올렸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들 중에선 술에 잔뜩 취해 외제차에 벽돌 던지는 X랄을 '저항'이라고 생각하는 한심한 사람들도 꽤나 많다. 마쓰모토 하지메도 단지 퍼포먼스적인 X랄로 '뜬' 사람이 아닐까, 하는게 먼저 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단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켜주었던 것이 한국어 판에 만화가 최규석이 삽화를 맡았다는 것이었다. 최규석은 아기 공룡 둘리에 대한 오마쥬, 습지 생태 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 등의 작품을 낸, 내가 생각하는 한 우리 세대 최고의 한국 만화가이다. 감상적인 정치 의식으로 '가끔' 비판적인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들과 달리 최규석의 만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치열한 사유로 무장되어있다. 최규석은 책 표지 삽화에서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패러디해, 국회 의사당 앞에서 '만국의 듣보잡이여 궐기하라!' '캐백수 연대' '오덕' '키워' 등의 슬로건을 내세운 자유의 투사()들을 그렸다.
자연스럽게 관심이 동한 나는 첫 페이지부터 책을 찬찬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책은 다섯 챕터로 구성되어있다. 제1장은 '여차할 때 써봄직한 가난뱅이 생활 기술'이다. 싸게 주거지를 구하는 법, 노숙, 걸식, 교통 수단 싸게 활용하는 법, 히치하이킹, 싸게 인쇄물 만들기 등의 실용적인 스킬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런 정도는 인터넷 유머로 소개될만한 흥미 본위의 이야기가 되기 쉽지만, 마쓰모토 하지메는 마지막 한 마디를 잊지 않는다.
'앞에서는 이른바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볼 수 있는 일들을 말했는데, 우리 가난뱅이가 돈을 들이지 않고 생활하는 기술을 몸에 익힌다고 낮은 월급과 비싼 방세로 가난뱅이한테 돈을 뜯어내는 사회 시스템이 변하는 건 아니다'
- 가난뱅이의 역습 66p
마쓰모토 하지메는 단지 '싸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상품의 생산과 판매(소비)를 그 원칙으로 한다. 이러한 원칙 하에서 '모든 것은 상품이 된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모든 상품이 팔리는 것은 아니다. 만약 팔리지 않는 상품이 늘어나게 되면, 그 만큼 체제는 위기를 겪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쓰모토 하지메의 '가난뱅이 작전'은, 어떻게보자면 소비 양식의 변화를 통해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존재 양식 그 자체에 구멍을 내는 행위인 것이다.
'(위에 이어) 오히려 돈이 들지 않는 기술을 너무 잘 습득해서 한 달에 5만엔만 줘도 돈이 남는단 말이지! 하는 소리까지 나오면, 임금이 5만 엔으로 깎일 염려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맥, 지연등을 활용하여 광범위하게 살기 좋은 공간을 만드는 작업에 돌입해보자. 지역 전체, 가난뱅이 전체의 자급자족 작전!'
- 가난뱅이의 역습 66p
제2장은 마쓰모토 하지메 본인이 세운 재활용 가게인 '아마추어의 반란'에 대한 소개와, '가난뱅이가 세상을 거스르는 작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마추어의 반란'은 대형 마트나 소비 중심지의 등장으로 인하여 쇠락하가는 지역 상점가에 세워진 재활용 가게다. 단순히 재활용 가게일 뿐만 아니라, 인터넷 라디오 스튜디오, 음주 행각, 클럽, 각종 이벤트의 장소로 혼란스럽고 즐거운 공동체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재활용 가게였을까 그는 먼저 하루가 멀다하고 신상품이 나오고, 이 것이 무절제한 소비를 유발해 신용불량의 대군이 발생하게 되는 현대 사회를 꼬집는다. 그리고 그 대안적 소비 방법으로 '부자들을 때려눕히고 우리들 별 볼일 없는 계급이 활개를 치기 위한' 재활용 가게의 역할을 역설한다.
'회사에서 눈이 핑 돌도록 일하고 시간이 없어서 일손 더는 세탁건조기를 갖고 싶다고 일에 쫓겨 생활이 불규칙해지니까 건강기구를 산다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쾌적하게 음악을 듣기 위해 아이팟을 마련한다고 이것저것 물건을 사들여 방이 좁아지니까 이번에는 PDP가 갖고 싶다고 결국 생산자는 필요 이상으로 생산해야 하니까 잔업이 줄어들리 없지. 이거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 우리는 바가지 씌우는 경제 시스템에서 밀려난 것, 즉 중고품을 모아서 가난뱅이의 재산으로 돌고 돌게 하면 된다구.'
- 가난뱅이의 역습 75p
재활용 가게는 온갖 잡화를 싸게 판다. 꼭 사고 싶은 물건이 따로 있다면 새 것을 사겠지만, 쓰는데 아무 문제 없는 물건을 하나하나 새것을 살 필요는 없지 않는가 일단 싸게 살수 있다는 점에서 재활용 가게가 좋다. 뿐만 아니다. 재활용 가게는 물건이 필요 없게 된 사람과 물건이 필요한 사람의 연결 센터가 된다. 지역에서 바로 물건을 사고 팔게 되면 중간에 유통 비용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일반적인 관점에서 '못 쓰게 된' 물건을 수리하고 개조해서 팔기 때문에 쓰레기 양산을 줄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무언가 신나는 이벤트를 열자는 생각이 들 때 필요한 물자를 바로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마쓰모토 하지메가 벌인 축제, 이벤트들에 쓰인 물자는 재활용 가게를 통하여 자체 조달했다고 한다. '행동'에는 생각보다 수반되는 물자가 많은 법이다. 반세계화 시위를 한다면서 대형 마트에서 필요 물자를 사는 것 만큼 우스꽝스러운 얘기도 없다. 재활용 가게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 것이다.
재활용 가게는 지역 상점가에 입주해 있는 만큼 지역 상점가와 연대가 매우 중요해 진다. 지역 상점가의 쇠퇴는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인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도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 여러 업종이 입주해 있는 상점가는 기본적으로 뭐든지 구할 수 있고, 그만큼 뭐든지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들과 관계를 잘만 쌓아나간다면, 기본적인 의식주 뿐 아니라 활동의 가능 범위도 훨씬 확장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지역 공동체의 문제와도 연결되는 일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은 보통 진학이나 취업 등의 이유로 고향을 떠나게 되고, 그만큼 고향이나 자신이 실제 거주하는 지역과의 유대가 희박해지게 된다. 이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진보 정치에 대한 요구가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의 생활 공간과 연관을 가지는 지역 의회나 자치체에서는 그런 요구가 전혀 반영되고 있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동네 회의에 기웃거리기를 추천한다. 우리의 감각으로는 아줌마들이 나오는 반상회 따위 나가봤자 뭐하겠나 싶지만, 사실 반상회야 말로 지역 자치의 가장 기본 단위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역사적 기원을 따져나가자면 반상회는 일제 시대부터 지속된 정부의 국민 통제 수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본래적 의미에서는 자기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스스로 운영한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반상회에서 결정되는 일은 사실 쓰레기 분리 수거나 주차 공간 문제 등의 시시콜콜한 것들 밖에 없긴 하지만, 어쨌든 모든 가구의 주민들이 모이는 것이니 잘만 하면 버리는 가구나 도서를 얻는다거나 하는 득템의 기회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게 동네 주민들과 친해지다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일이 생기고, 이를 통해 '무언가 해 볼' 기회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구립 도서관과 아파트 주민회가 결정한 이동 도서관을 통하여 진중권을 처음 읽었다. 이동 도서관을 통해 레드 바이러스를 확산시키자!
그는 구경거리로 전락한 전통 행사, 지역 축제를 쇄신하고 진정으로 즐거운 마을 축제를 만들어보자는 주장도 함께 펼치고 있다. 물론 형식 상의 지역 축제 문화라도 남아있는 일본의 경우이긴 하겠지만, 후지산에서 열리는 록페스티벌에 가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은 제군, 아직 뭘 잘 모르는구먼! 주머니 털리는 이벤트에서 놀기보다 자기 손으로 만든 축제가 훨씬 더 재밌다구! 라는 구절은 마음에 뜨끔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펜타포트나 GMF나 물론 좋은 기획이고, 음악 팬 입장에서 신나는 공연들이긴 하지만 티켓 값을 제외한 부가 비용만으로도 '주머니 털리는 이벤트'인 건 사실이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협찬 기업들의 홍보 러시는 정말로 쓰레기 같다!!
여러모로 깊게 생각할만한 구석이 많은 가난뱅이의 역습은 즐겁고 통쾌한 집회, 선거 운동 이야기를 들려주는 후반부에 가면 물론 더 재밌긴 하지만 일단 시간 관계상 글을 이정도에서 끊기로 하겠다.
봉사활동(무보수)으로 잔업을 해줘 PC방 난민 변리사를 고용해서 자기가 낼 세금을 계산해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면 벌금 과로사 우울증 30년 대출상환으로 변두리 주택가에 집을 사 할아버지, 할머니는 죽기 전에 남은 돈으로 자기 무덤을 사고 좋아들 하셔 바보들 같으니라구! 이보쇼, 정신차리쇼! 일본에서 태평하게 착한 애들처럼 말 잘 듣고 살면 다요?
마쓰모토 하지메의 이런 메시지는 '좌파들도 모범생인'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일상을 때려치우고 당장 즐거운 반란에 동참하자는 무책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장소나 상황을 조성하는 일도 아주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느냐'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일단 마음을 고쳐먹자는 거다. 마음만 고쳐먹으면 노숙도 할 수 있고 자동차를 얻어타고 밥을 얻어먹으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동네에 불만이 생기면 데모를 한다. 이러다가 회사에서 해고당해버릴지도 모르지만, 상점가 사람들과 잘 사귀어두고 조금만 돈이 있다면 가게를 열면 된다. 이런 짓을 하는 패거리가 계속 모이면 적어도 언젠가 해방구라 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 둘은 생겨나지 않을까
저자 후기의 맨 마지막에는 '이 책을 빨리 읽고 친구에게 빌려줘서(- 이 점이 중요)'라고 쓰여있다. 이 얼마나 유쾌한 책인가! (미안하지만 저자의 뜻을 이어 받아 나 역시 친구에게 '빌려' 봤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