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을 적절히 느끼며, 잘 살겠습니다.- 장류진의 소설 후에1.이거 좀 봐봐.톡으로 전달 받은 링크는 웬만하면 누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자꾸 링크를 전달해준 친구가 ‘그거 읽어봤어?’라고 채근하여 링크는 눌러주는 성의를 보였다. 그러다 이 링크가 ‘짤’이나 ‘유머’, ‘찌라시’가 아닌 ‘단편소설’임을 알았고, 마침 퇴근중이었고 하필이면 보던 너튜브가 끝이나 버렸다. 그래서 ‘지금 마침 짬도 있겠다, 몇 줄 읽어나야 링크를 보내준 친구에게 몇마디 대거리는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2.이거 완전 우리 얘긴줄. 너무 웃픈데 또 너무 현실적이어서 소름끼친다.장류진의 소설은 그렇다. 이거 소설 맞아? 르포아니야? 하면서 맞장구친 내용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당선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소설 속 배경인) 어느 스타트업 회사에서, 아니 어쩌면 현재 모든 회사들에서 자행되는 합리적인 부조리 아래 (이것 역시 사회생활이라는 대원칙 아래, 까라면 까야지라는 성실한 자세로) 기쁨과 슬픔의 가락에 맞춰 장단굿을 하는 회사원인 희노애락 가득한 우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또 이번 출간된 소설집에 수록된 「잘 살겠습니다」는 ‘도대체 어디까지?’라는 명확한 기준선과 계산법이 요구되는 사회생활 속 우리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사회인일 수밖에 없은 우리들은 정말 ‘잘’ 살기 위해 나름의 기준을 정하고 그에 맞는 계산법을 대입한다. 마치 ‘청첩장을 누구한테까지 줄 것인가’와 ‘누군가에게 주거나 또는 받을 축의금 액수’에도 ‘친밀도’라는 X값에 ‘회수’라는 Y값을 곱하고 나누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가끔 그 계산법을 무시한 사람과 상황을 마주했을 때에는 ‘계산법이 틀렸나? 아니면 이러한 계산법과 기준 자체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나는 정말 정말로 ‘잘’ 살기 위해 계산을 ‘잘’ 하고 있는 것인가.3.장류진 작가는 이렇게 우리들에게 ‘기쁨과 슬픔’을 적절히 느끼며 잘 사는 삶에 대한 ‘사유’를 준다.믿고 읽는, 또 한 명의 작가 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