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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줄거리
10대 때부터 꾸준히 마약을 해 왔으며, 한때 잘나갔지만 나이로 인해 맡을 수 있는 배역이 제한되자 위기의식을 느끼는 50대 여배우 레베카 라테는 40대 유명 작가 오스카 제이야크(본명 조카르)가 자신의 외모를 폄하한 글을 보고 직접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냅니다
세무 문제, 극우파, 흑인, 유대인, 트위터에 대해서는 겁을 집어먹으면서도 여자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놓고 미투가 매춘부들의 복수라고 비꼬는 오스카는 자신의 책 홍보 담당자였던 20대 페미니즘 블로거 조에 카타나에게 미투 고발을 당한 상황이었죠
짧게 끝날 것만 같았던 레베카와 오스카의 대화는 알고보니 오스카가 레베카의 학창시절 소중한 친구였던 코린의 친동생이었음이 알려지면서 부정적으로라도 계속 이어지게 되고, 둘은 페미니즘 외에도 둘의 공통점인 알코올과 마약 등 그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어주는 중독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는 이상한 사이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판데믹이 발생하고, SNS 교류에 집중하다 오스카를 미투 고발한 후 무차별적인 온라인상 공격으로 인해 불안에 시달려 왔던 조에가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혼자 남겨진 여성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레베카가 그의 집 앞에 음식을 두고 가기 전 짧은 대화를 하면서 셋은 서로 연결되어버리고 마는데…
과연 레베카와 오스카의 랜선 우정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오스카를 향한 조에의 저격과 지지자들의 맹비난은 어떻게 마무리될까요?

느낀점
이 책의 제목인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제 기준 너무 역설적이고 매콤했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개자식'이라는 표현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 앞에 '친애하는'이라는 소중한 표현을 붙이는 건 제 성향상으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물론 그래서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페미니즘/미투 운동이 메인 주제이긴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마약 중독, 코로나로 인한 고립, 사회적 계급, 나이듦으로 인란 세대 갈등, 혐오 논쟁, 공격적인 SNS 환경 등등 전반적인 21세기 사회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비르지니 데팡트의 소설을 읽어본 건 기억상 이번 <친애하는 개자식에게>가 처음인데, 레베카와 오스카가 주고받는 메일 또는 조에의 블로그 포스팅만으로 책의 내용이 흘러가는 게 신선했습니다
읽기 전에는 <친애하는 개자식에게>에 출연하는 세 인물 중 20대+여성+블로거라는 점에서 조에가 끌렸고 그가 어떤 포스팅을 올렸으며 그 블로그는 소설 속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가 궁금했는데, 막상 책을 펴보니 읽으면서 연륜의 지혜가 담긴 레베카가 너무 좋아졌고 50대의 제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면 정말 잘 살아왔을 것 같다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스카는 이걸 어떻게 여자 작가가 만들어낸 캐릭터지 싶을 정도?
미투 고발이 처음 언급된 시점부터 후반부 직전까지도 미투 운동을 비난하며 (혈압주의)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기억이 없다, 예쁘지도 않은 조에를 매력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한 나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는가, 남자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 미디어 속 여자들도 일조하는 바가 있다 등등 이야기하는데 친구들과 교환독서 예정이라 필기하는 내내 그런 대사들에 욕설을 적을 수밖에 없었다네요;;
미투 고발을 당한 이들은 그저 결백하다고만 하고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기 바쁜데 그래도 피해자는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피해자인 조에가 사이버불링을 당하고 괴로워해야 한다는 점은 아직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사회도 갈 길이 멀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여자를 죽이는 남자' 이 문장에서 여자 자리에 직원, 남자 자리에 고용주를 넣으면 언론이 아주 강경해질 거라는 레베카의 메일은 우리가 얼마나 여성 살해를 광범위하게 용인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여자를 선, 남자를 악 이렇게 이분법적으로만 이야기하진 않는 게, 레베카는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동안 분명 남자들도 당한 피해가 있을텐데 언급이 없는 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남자들이 편하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사유까지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음
결국 레베카와 오스카가 지독한 온라인 친구관계가 되고 마는 게 (서로를 자신의 '친구'라고 공식적으로 메일에서 발언함) 지속적인 소통의 긍정적인 의미로든 부정적인 의미로든 무서움을 안겨주기도 함 ㅎㅎ..
누구에게나 내 욕망이 남에게는 노땡큐인 상황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살면서 한번씩은 겪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짝사랑과 실연 아니겠어요? 다만 그런 상황에서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법을 알아가야 할듯 그게 잘못되면 성추행이 되고 스토킹이 되고 나아가서 보복 살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인용구
어린 소녀는 외모로 인한 결과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거나, 매력적이라는 이유로 주변에서 자신을 깎아내린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어요. 반면 잘생긴 남자아이에게 세상은 모조리 그의 것입니다.
사회적 성공은 그렇게나 허망한 것임에도 정신을 지배해버립니다. 성공은 아기 코끼리 같아서 항상 영양을 공급해주고, 돌봐주고, 바깥바람도 쐬어주고, 즐거움도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내게 입 다물라고 강요한 사람들이 다 남자는 아닙니다. 여자도 있었어요. 그 여자들은 내가 겪은 일이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고, 그동안 다들 잘 넘겨왔다고 말합니다. 우리보다 앞선 세대의 여성들은 지난 몇백 년간 이런 사안을 품위 있게 관리할 줄 알았다고요. 하지만 나는 그 여성들이 자신의 수치심을 갉아먹었으며, 불면을 대가로 미소를 얻었다고 말하렵니다.
당신은 나를 찾아내고 위협하고 모욕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할 겁니다. 우리는 납처럼 무거운 뚜껑을 들어 올립니다. (…) 교수형당할 각오를 해야 하는 쪽은 여자를 끌어내리기 위해 남성 우월론적 특권을 이용하는 이들입니다.
나는 학위를 보유했고, 괜찮은 연수 경력이 있었으며, 부지런하고 정확하며 일을 빨리 배우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그 출판사에 채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또한 젊고 날씬하고, 옷도 센스 있게 입고 손톱 손질도 잘하고, 윤기 나는 긴 머리에 커다란 눈과 새하얀 피부를 가진 탓에 채용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취업 시장에서 내가 뽑힌 이유는 젊음 덕이기도 했으니.
일하러 가기 전에 구토를 일삼았지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웃으며 출근 인사를 했어요. 소리를 지르면 그의 흥분을 가라앉힐 줄도 모르는 히스테릭한 여자가 되었을 테고, 싫은 표정을 지으면 노력할 깜냥도 안 되는 프로답지 못한 직원이라는 말이 나왔을 테죠.
그들은 옛날이 더 나았다고 말하기 위해 죽어서 이미 묻힌 페미니스트들을 소환합니다. 페미니즘조차 그들 소유라는 얘기예요. (…) 강간당한 사람은 침묵하고, 못생긴 여자는 벽에 바싹 붙어 다니고, 레즈비언은 자신을 숨기고, 원치 않은 아이를 밴 하녀는 어디론가 내몰려 죽어가던 시절. 지배당하는 이들이 그러한 지배를 용납하던,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좋았던 옛 시절 이야기.
우리 같은 공인은 인도 위 말뚝 같은 거예요. 사람들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걸어둘 수 있고, 오줌을 싸고, 등을 기대고, 추모하거나 구토할 수도 있습니다. 다들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말뚝이 그들이 지나가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죠. 증오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자연스레 다시 호감 가는 사람의 범주로 이동할 거예요.
저는 허약하고, 새 모이만큼 먹으며, 극단적 건강염려증 환자이고, 트위터에서 제 이야기가 좋게 회자되기를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리느라 잠을 자지 못합니다.
우리가 동경하던 성격적 특징은 왜곡되고, 오만함은 회한으로 변하며, 유머에는 요실금 환자의 지린내가 나고, 매력은 변질되어버립니다. 청소년기의 변화와 비교할 수 있겠으나 더 비참하죠. 목소리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거나 사유의 융통성이 그대로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예술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하지만 다른 이를 거스르거나 위험에 빠지는 상황은 원하지 않는군요. 그 말의 의미는 잉크병에 영감이 고갈되었다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면류관을 원하면서도 이마에 상처가 나서도 안 되고 십자가를 져서도 안 된다는 말과 같아요.
나는 백만 번이라도 홀로 하는 사랑으로 고통받거나 죽는 편을 택할 거예요. 버림받거나 배신당하거나 창피를 당하거나 학대받는 편을 택할 거예요. 권태에 빠지는 것보다 그 어떤 상처라도 받는 편을 택할 겁니다.
보통 온라인 활동은 광신주의 그 자체입니다. 일단 자신이 윤리적으로 옳은 편에 서 있다고 믿는 사람은 반대편 진영의 사람을 처단하는 걸 합당하다고 여깁니다.
폭력과 마약은 비슷합니다. 국가의 손에서는 합법적이지만 개인의 손에서는 범죄가 되죠. 의사가 처방한 마약을 복용하면 나는 합법적인 마약중독자가 됩니다.
모든 게 붕괴한 상황에서 나는 또 하루의 잠 못 이루는 밤, 휴가를 축내는 존재, 어딘가에 끼워 넣어야 하는 침대, 준비해야 할 학용품, 챙겨야 할 식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여성에게 약함과 고통과 섬세함의 속성을 부여한 반면, 여성은 골반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출산을 감당하고 폐허가 된 도시에 홀로 남겨져 전쟁에서 살아남습니다.
불쾌할 만큼 무식한 최악의 프티부르주아들, 지적으로 가장 열등한 백치들, 부패한 상속자들, 멍청한 콤플렉스 덩어리들. 영화가 진행되는 단계마다 승인을 내리는 건 전부 그들입니다. (…) 오래지 않아 영화는 이제 다음과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카우보이, 슈퍼히어로, 군인, 전사, 부유한 유혹자 같은 것들요. 빌어먹게 예쁘장한 여자는 목적 보어일 뿐 결코 동사는 못 됩니다.
스크린에는 뚱뚱한 여자, 늙은 여자, 똑똑한 여자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십 년에 한 번 딱 한 편의 영화에나 이런 여자들이 등장합니다. 백인이 아닌 여자, 힘이 세고 잘 싸우는 여자, 유머러스한 여자가요.
여성의 용도는 욕망 혹은 강압의 대상이 되는 것, 흑인의 용도는 가사 일을 하거나 춤을 추는 것, 뚱뚱한 사람의 용도는 사람을 웃기는 것, 혁명가의 용도는 처단당하는 것, 가난한 사람의 용도는 배곯아 동정받다가 친절한 부자에 의해 구원받는 것, 외계인의 용도는 제거되는 것 등등.
나는 기생하는 존재가 아니며, 내가 바로 메인 요리입니다.
감정은 오존층에 뚫린 구멍이고 기후변화이며 변함없는 화산 용암이자 바이러스의 폭격입니다. 공장이나 극장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습니다. (…) 우리 세대에 급격히 퍼진 감정은 절망입니다.
미투 논쟁이 일어나는 동안 그런 남자들의 고백이 왜 들리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피해자인 여성들에게 발언권을 넘겨주려는 배려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공개적으로 말한 뒤에 엄청난 대가가 따른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겠지요.
온 세상이 극도의 혼란으로 미끄러져가는 와중에 우리는 서로 모여 저녁식사 자리나 SNS에서 사람들이 하는 것과 정반대의 행동을 합니다. 자신이 패배자이자 나약한 사람임을 고백하고, 가장 망가진 사람에 속한다는 걸 드러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관대합니다. 남자들에 대해, 우리는 낙태를 시키지 않을 것이며,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지도 않을 것이며,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시키지도 않으며, 거리에서 죽이지 않을 것이며, 조깅할 때 죽이지 않을 것이며, 숲속에서 죽이거나 집으로 데려와 죽이지도 않을 것이며, 그들의 태생적 성별을 들어 수치를 주지 않을 것이며, 허기지게 만들지 않을 것이며, 강간하지 않을 것이며, 테이블 아래로 더듬지 않을 것이며, 섹스하고 싶어한다 해서 비난하지 않을 것이며, 공공장소에 나가지 못하게 금하지도 않을 것이며, 권력의 서클에서 배제하지 않을 것이며, 신체 일부를 난도질하지 않을 것이며, 원하는 대로 옷 입는 결 금지하지 않을 것이며,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지 않을 것이며, 열정을 품고 집을 떠날 때 죄책감을 심어주지 않을 것이며, 좋은 배우자 역할을 못 한다고 미친 사람 취급하지 않을 것이며, 성생활을 빼앗지 않을 것이며, 우리 소유인 양 모든 행적과 선언을 감시하지 않을 것이며, 머리모양 좀 신경 쓰라고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순종하지 않을 때 치욕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페미니즘은 모든 여성의 집이에요. 같은 적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집. 동일한 고문자, 동일한 학살자, 동일한 강간범. 그들 편에서 보호받는 동일한 스토커와 대항하는 곳.
이전에 여자들이 패션위크와 다이어트를 다루는 여성잡지를 읽었다면, 지금의 여성들은 페미니스트 계정을 구독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아름다운 순간, 내가 성취한 욕망, 때로 균열을 일으카고 때로 나를 채운 열정, 부드러운 충돌 같은 만남과 호기심. 그 모든 순간이 내 안에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