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운하우스
전지영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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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창비에서 출간한 전지영 작가의 <타운하우스>

아래와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드립니다


1. 스릴러 장르 소설을 선호하는 사람 2.현대사회의 일면을 헤쳐나가는 소설이 흥미로운 사람 3. 너무 자극적이기만 한 소설은 부담스러운 사람 4. 의심과 불안이 안겨주는 몰입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 5. 고요하지만 격정적인 소설이 궁금한 사람




말의 눈 학교폭력 피해자인 딸 서아의 정서 회복을 위해 낯선 섬의 타운하우스로 이사한 수연에게 처음 손을 뻗어주었지만, 자신의 딸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재판을 받게 되자 그의 집으로 찾아와 학교폭력위원회에서 가해 주동자가 아니라는 증언을 해 달라며 압박하는 지희 쥐 해군을 남편으로 둔 아내 윤진의 집에 정체 모를 이가 초인종을 누르고 사라지거나, 쥐를 찾는 '사모'가 민간 어선과 함정의 충돌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가깝게 지내던 '선'의 남편이 갑작스럽게 전역하고 사라지는 등 의문스러운 사건을 연달아 겪으며 고조되는 불안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 갑작스러운 폭우로 둘째 아들 민준을 잃은 윤섭과 혜경 부부가 서로에게 남은 앙금을 지우지 못한 채 살아가다가 혜경의 플라스틱 탄알을 계기로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기미 맹점 제약회사 영업사원 재복, 서류를 통과시키는 보험설계사와 함께 법망의 맹점을 이용하여 돈을 벌어온 어시장 상가 안과의사 은애가 자신의 삶 속에 드리워진 맹점을 직시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첫 발을 내딛는 모습 언캐니 밸리 그림을 전업으로 삼고 싶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한 야간 택시 운전기사 '김'이 과거에 부촌 청학동으로 태웠던 한 손님이 염산 테러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벌어지는 고딕풍 스릴러 소리 소문 없이 예술고등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며 학교에서는 소문을 만들어내는 친구 선화와 거리를 두고픈 혜진이 청한동 저택에서 하숙을 하며 파티가 열리는 날 없는 척 해 달라는 집주인 성 박사의 부탁을 받고 자신의 위치를 서늘하게 자각하는 이야기 뼈와 살 후배 이선이 가진 재능과 열정, 체력 모든 것을 질투하여 한때 그를 모함했음에도 같이 예술 작업실로 들어온 동도 시영아파트에서 함께하며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예술가의 이야기 남은 아이 아들 선우가 학교폭력 가해자가 된 후 자퇴하고 방 안에 스스로롤 가둔 지 일 년, 역시 일상이 무너진 엄마가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 피해자이자 선우의 전 여자친구 태이와의 만남을 시도하는 이야기




전지영 작가의 <타운하우스>는 현대사회의 치욕, 절망, 슬픔, 불안 혹은 불온한 욕망으로부터 삶을 지켜내는 인물들의 애환과 고충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심리 스릴러가 주를 이루는 단편소설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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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앤솔러지 말고 한 작가의 단편소설집은 대부분 작품 중 하나가 책 전체 제목으로 지정되어서 '표제작'이라는 게 있는데 독특하게도 이 책은 표제작이 별도로 없어요! 책의 제목은 이 모든 소설을 아우를 수 있는 키워드를 생각하던 작가가 따로 지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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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캐슬과 펜트하우스와 비슷한 제목이라서 그런 마라맛 소설 모음일까도 조금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현대사회' '적나라' 이런 키워드가 들어가면 요즘은 대부분 자본주의와 계급주의에 미친 사람들의 욕망 때문에 일어나는 미친 사건들을 떠올리거든요.. 하지만 <타운하우스>는 앞서 말한 두 드라마와는 결이 다르게 현실적이라 너무 정신없거나 자극적이지도 않고 적당히 흥미진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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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명쾌하기보다는 찝찝한 기운을 남기는 소설들이 많았고, 평온한 하늘에 불이 활활 타오르는 표지처럼 고요하고도 강렬하게 진행되는 꽤나 어려운 일을 해내는 전지영 작가의 글들이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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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품 <말의 눈>에서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엄마가, 마지막 작품 <남은 아이>에서는 학교폭력 가해자의 엄마가 주요 서술인물로 등장하는데 <말의 눈>의 수연은 이제 좀 안정되어 가는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게 애처로우면서 지희가 자신을 돕는 것에 온전히 고마워하지 못하고 저의를 의심한다거나 감전된 지희의 의식이 돌아왔음을 알고 저도 모르게 실망하는 걸 보며 인간이라면 그럴 수도 싶었는데 왜 <남은 아이>의 주인공에게 저는 관대해지지 못하는지.. 굳이 피해자의 상처를 들쑤시려는 '아들맘'답다 여기게 되는지.. 하지만 결국 내게 주어진 진실은 내가 볼 수 있는 것밖에 없다는 주인공의 깨달음은 저도 그냥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것을 캐내면서 살 필요 없겠다 생각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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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눈>에서 타운하우스 사람들이 지희의 남편에 대해 만들어내는 소문을 즐기는 모습이 <소리 소문 없이>와 겹치더라고요 혜진이 하숙하고 있는 집의 여주인 성 박사가 고 박사와의 결혼이 세 번째라는 이유로 만들어진 무성한 소문도 그렇고... 학교에서 실기 1등 예성에 대해 친구 선화가 만들어내는 소문을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도 그렇고요 하지만 결국 학교에서 돈도 없고 재능도 없고 시기질투만 있는 선화와 다른 급이 되고 싶었고, 집에서도 가정부와 다른 급이라 생각했던 혜진의 생각은 성 박사의 부탁으로 완전히 망가지는데, 그렇게 내 객관적 '위치'가 사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낮았을 때 혜진이 느꼈을 수치심과 불안감이 너무 선명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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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소문 없이>와 같은 배경을 공유하는 <언캐니 밸리>는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구면인데 처음 읽었을 때는 예술을 하고 싶지만 작품이 보편적인 미의 기준과 맞지 않고 여러 이유로 장애인 택시를 운전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예술가의 고충과 의문의 승객에게 집중하며 읽었는데 이번에는 '김승민인 줄 알았지만 장신영이었던' 승객이 청한동에 가서 하고 돈을 버는 일을 생각하며 한 부촌의 폐쇄성과 기이함이 신경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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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등장하는 <뼈와 살>은 소설 막바지에 희망이 없어서 벽에 흡수되어버린 이선을 보고 이거 SF인가..? 싶었음 주인공이 뭐 얼마나 건강하게 질투를 이겨냈는지, 앞으로 남은 작업을 어떻게 이어갈지는 모르겠지만 이선이 평생 자신의 소문을 낸 게 자신을 챙겨준 주인공이었음은 몰랐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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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뼈와 살> 주인공과 비슷하게 '양심에 거슬릴 법한', 더 나아가서 불법인 짓을 한 은애가 결국 지금의 상황에서 더 나아가려는 결말 때문인지 <맹점>도 좀 비슷한 결이라고 느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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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에서 해군 관사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군인의 아내들이 나이 대신, 당사자도 아닌 '남편'의 기수로 서로를 선후배 취급하는 기이한 문화에 점차 적응해나가는 윤진과 상부의 명령을 철저히 수행함으로써 양심과 진실에 다가갈 기회는 잃었어도 관사에 남아 의식주를 보존할 수 있게 된 남편까지 모든 게 위태로워 보였고, 마지막 화재 장면에서 앞으로 더 많은 진실이 타오르면서 내부를 뒤집어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쥐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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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적인 화재로 대표되는 '절정'에서 끝나는 <쥐> 다음에는 서로에게 가진 불편한 앙금을 12년 째 해결하지 못하며 서로를 최대한 안 만나는 것으로 위태로운 결혼생활을 유지하던 윤섭과 혜경이 결국 서로의 감정을 눈물로 한번 터뜨리고, 다시 아무 일 없었던 듯 늦잠을 자고 함께 밥을 비벼먹는 등 어찌 보면 잔잔하고 애걔? 싶은 결말이지만 그 둘의 관계가 조금이나마 희망을 보이는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이 나왔는데 이건 인물들의 감정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달까요? 딱 비교돼서 배치가 좋았음




진짜 위협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다. 소문, 협박, 회유…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에 비하면 고립감쯤은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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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하면 과장해서 드러내고 불리하면 철저히 소문으로 치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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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에게 중요한 덕목은 정의감과 애국심이 아니었다. 명령에 따르고 임무를 완수하며 불의의 변수로부터 동료를 지키는 일. 남편은 살아남는 군인의 조건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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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축하하는 건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을 치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 닥칠 일을 더욱 조심하라는 뜻이었 다. 젊었을 때는 당연히 보장되리라 여긴 노년의 건강하고 안녕한 삶. 나이가 들면 각별히 유의하지 않고서는 그런 삶을 지킬 도리가 없다는 걸 퇴직 후에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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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때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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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꿈의 불일치는 특별한 불행이 아니라 보편적 일상이었다. 삶을 버티게 해주는 건 대부분 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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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배려란 주로 상대편 사정이 급할 때 베풀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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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듣노라면 마치 청한동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완전히 이질적인, 진실에서 점점 멀어지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들의 이야기는 비현실적인 설정의 일일연속극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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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망의 크기로 넘을 수 없는 벽은 필사적으로 현실을 부정하게 만들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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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일반적으로 현명하다고 여겨지는 소비조차 불가능하게 만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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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이선은 이 일을 지나치게 사랑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이 일의 주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일의 운명은 언제나 타인의 손에 달려 있었다. 생애주기에 따른 발달과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치르는 대가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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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부모는 미래에 기대어 아이의 일탈과 방황, 소소한 거짓말과 반항을 인내한다. 기댈 미래가 없다는, 어떤 가능성을 잃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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