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러리
사라 스트리스베리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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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해당하는 분들이라면 읽어보시길길

1.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하는 사람

2. 앤디 워홀 총격 사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

3. 기존과 다른 양식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

4. 북유럽 현대문학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

5. 도발적인 인물과 내용의 책에 끌리는 사람


<밸러리>는 다섯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 아래와 같은 시기가 주를 이룹니다



밤비랜드 : 조지아 주 벤터에서 보낸 밸러리의 유년시절. 아버지 루이스(친아버지이지만 그를 어린 시절 내내 성폭행했다는 밸러리 자신의 증언이 있음)와 어머니 도러시와 함께 단란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지만 도러시와는 꽤나 유대감이 있어 보임


바다 : 플로리다주 엘리게이터리프에서 보낸 아마 청소년기?로 짐작이 되어요 '실크 보이'라는 인물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때부터 도러시는 루이스와 헤어지고 다른 남자들과 재혼 내지 연애를 반복합니다


실험실 단지 : 메릴랜드대학교에서 국가장학생으로 심리학을 공부하는 부분이에요 아마 밸러리의 삶에서 가장 빛나고 미래가 창창한 순간이 아니었을지요? '코스모 걸'이라 불리는 앤 던컨과의 대화가 많은데 연인 관계인 듯 보이나 자세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제대로 읽은 게 맞나요?


팩토리 : 앤디 워홀과 예술 활동으로 알고 지내면서 친목을 다지던 시절입니다 읽으면서 이때쯤 사건이 터지려나? 이때쯤인가? 싶었어요 미래의 우리들은 아는 폭풍전야의 시기


밸러리를 사랑하라 : 앤디 워홀과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총을 쏘는 순간부터 사망하기까지, 밸러리의 사망 전 도러시와 코스모 걸 등등과의 만남 (홀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으니 환상이겠죠?)


앤디 워홀 살인미수 사건 이후 재판 과정, 정신병원에서의 상담, 1988년 브리스틀호텔에서 사망하기까지 몇 주에 걸친 독백 이 세 장면은 다섯 챕터에 걸쳐 순차적으로 계속 진행됩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밸러리 솔래너스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으며, 이 소설은 그나마도 충분히 재현해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즉 소설 속 인물들도, 사건들도, 그로 인해 일어나는 대화도 모두 허구의 산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우리는 밸러리 솔래너스가 어떤 가치관 사고 취향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분노를 가지고 행동을 했는지 온전하게 알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그러하듯이요


즉 실화를 바탕으로 좀 많이 각색된 소설이라고 보면 되겠죠?


앤디 워홀을 총으로 쐈던 여성 밸러리 솔래너스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 <밸러리>

두서없이 적어내려간 제 주관적 후기입니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가 사실 페미니즘 단체와는 거리를 뒀다는 건 아시는지? 전 몰랐습니다 SCUM 선언문을 보면 누가 봐도 페미니스트인데 말이죠 확실한 점은 그겁니다 이 소설 속 밸러리 솔래너스는 예의/상냥함/신중함 등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고, 여론과 도덕에 구애받지 않고, 똥멍청이들의 존중 따위는 무시하면서, 항상 냉철하고 야비하고 더럽고 야만적인 괴짜라는 것입니다


매춘으로 생계를 이었던 밸러리가 자신은 영혼을 파는 것이 아니고 그저 몸에 달려있는 구멍을 파는 것 뿐이라며 파괴적이고 독창적인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밸러리의 친구 내지 동성 연인으로 보이는 코스모 걸도 비슷해요 코스모 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던컨은 사형 일정이 잡힌 죄수인데 코스모 걸은 국가로부터 장학금을 받기보다 다른 방법을 통해 학비를 충당합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려는 국가의 돈을 받아먹고 싶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읽기 좀 어렵고 난해했는데 이 구성이 익숙해지면 재미있어요 사건이 직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때로는 나중에 일어날 사건이 먼저 묘사되기도 한답니다


챕터마다 한 번씩 A에서 Z까지 알파벳 한 글자로 시작하는 문장이 있는데요 그 챕터의 주제를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문장들과 단어들의 연속인 건 알겠는데 아직 어떻게 이런 걸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어요.. 배움은 끝이 없고 소설도 그러하네요


다만 맨 마지막 챕터에 나오는 <알파벳의 이면> 에서는 밸러리의 죽음이 가까워지는 만큼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어떤 증상이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을 어떻게 옆에서 보필하는 것이 좋을지 무미건조하게 적혀있는데요 괜히 읽으면서 나와 친밀한 사람들의 죽음을 앞에 뒀을 때 나는 어떻게 될까, 죽어가는 사람들이 정말 무서워하고 호흡이 길어질 것인가.. 그런 궁금증도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 죽어있는 누군가는 봤더라도 죽어가는 누군가를 본 경험은 없거든요



모든 Y 유전자는 실패라거나, 'SCUM' 자체가 남성 근절이라거나 하는 부분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책을 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밸러리 솔래너스를 래디컬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라면 읽지 않을 확률이 더 높겠지만요


수컷 쥐 없이 암컷 쥐끼리만 임신이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거나, 사형 제도로 인해 국가로부터 목숨을 빼앗긴 여성 죄수들을 떠올리는 등등 대학교 입학 후 시점부터 특히 페미니즘적인 경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내내 여자들에게 삶이란 끔찍하게 지루하며 사회의 어떤 측면도 여성과는 무관하지만, 여성들은 세계를 탐구하고 발견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유희를 즐길 줄 아는 능력이 탁월한 자들이며, 모든 여성은 타인을 해하는 일만이 유일한 잘못이고 사랑이 인생의 의미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는 메시지가 계속적으로 반복되는데 이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어요


'권리가 위협당하는 여자라도 왜 총을 쏘지 않지?' '항상 공부하고 항상 글을 읽고 써라' '낯선 남자들이 너희 생각 속으로 억지로 들어오게 하지 말아라'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사람, 네 친구가 될 여학생을 찾아' 등등 소설 중간중간 여자들에게 해주는 수많은 조언은 아마 작가의 가치관과 일맥상통하겠죠?



소설의 원제는 <Drömfakulteten> 스웨덴어로 꿈의 학부라는 뜻인데요 무엇이 '꿈'이었을까요? 이 소설 자체가 허구의 산물이기 때문에 꿈인 걸까요? 밸러리의 메릴랜드대학교 시절이 앞으로 밝은 미래가 보일 거라는 꿈이 어느 정도는 담긴 학부생활이었기 때문일까요? 밸러리가 숨을 거두기 전 도러시와 코스모 걸의 환영이 꿈이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역사의 뒤안길에 있게 된다 해도 이의는 없어요.


세상은 언제나 회귀를 향한 기나긴 갈망이긴 하지만.


그들에게 우린 곧 다시 나갈 거라고 말해. 내가 바다 소풍을 기획할 거라고 말해. 죽어가는 창녀들을 위해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파라솔 아래에서 여름 음료를 마시는 하루.


서술자 네가 죽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다른 결말들, 다른 이야기들이 반드시 있을 거야.

밸러리 죽음은 모든 이야기의 결말이야. 해피엔딩이란 없어.


호텔의 침대는 네가 끝내지 않은 모든 일, 잘못한 모든 일로 이루어진 불타는 사막이다. 네가 잊어버린 모든 것과 작별하지 않은 모든 시간으로 이루어진 천길만길 바닷속이다.


포기는 답이 아니고 지랄이 답이야.


누구나 죽어요. 이 나라 사망률은 100퍼센트예요. 우린 모두 사형선고를 받았고, 유일하게 영속적인 건 소멸뿐이에요. 우린 모두 사라질 테고, 죽음은 모든 이야기의 결말입니다. 죽음은 당신도 이깁니다, 의사 선생.


옳은 질문은 이거죠. 그 여자는 왜 총을 쏘지 않지? 도대체 왜 총을 쏘지 않지? 그 여자의 모든 권리가 공격받고 있었어요. 강간당한 여자 아기나 강간당한 여자 동물과 같은 상태. 그런데 왜 그들은 총을 쏘지 않나요?


그건 그렇게 일어났다. 누구에게나 배경이 있다. 무엇에든 시작이 있다. 모든 것은 결말에 이른다.


죽음은 되돌릴 수 없어. 성별은 되돌릴 수 없어. 배경은 되돌릴 수 없어. 운명도 마찬가지. 사랑도 마찬가지. 처형된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아.


혼자 있으면 유토피아죠. 같은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이 현실을 이루고요.


언제나 학생이어야 해. 주부가 되어선 안 돼. 남자의 똥이나 닦아주고 수음한 팬티를 빨아주진 마. 항상 공부해. 항상 글을 읽고 써. 최종 발언권을 남자들에게 넘기지 말고, 낯선 남자들이 너희 생각 속으로 억지로 들어오게 하지 마. 연구를 하고 교수가 되고 작가가 돼. 늘 정신을 바짝 차려. 절대로 마약에 손대지 마.


단지 건물이고, 책이고, 피와 눈물로 이루어진 사람일 뿐이야.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 학교에서 읽으라고 하는 책은 전부 두 번 이상 읽어. 교수들에게 질문하지 마. 겁이 나도 절대로 내색하지 마. 이방인처럼 행동해선 안 돼. 사람들이 너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알도록 하지 마.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사람, 네 친구가 될 여학생을 찾아.


태양이 빛나고 하늘이 파란 동안은 약속을 지킬 거라고 말해.


여자의 유년기를 보지 말고, 욕망의 체계 속 그 여자의 자리를 보세요. 가학 성애자와 여성혐오자들 사이에서 보낸 여자의 불행한 유년기를 보시라고요. 어떤 형태나 형식으로든 욕망이라는 선택지는 없죠.


모성은 사회 변화의 잠재력이에요. 가치 있는 모든 건 어머니들이 이루었죠.


교외와 담보대출과 대걸레와 아기 똥으로 이루어진 어른의 세계에 편입하기엔 너무 유치하고, 자식과 남편을 돌보기엔 너무 이기적이고,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보기엔 너무 개화한 사람들.


여자는 본능적으로 알아, 타인을 해하는 일만이 유일한 잘못이고 사랑이 인생의 의미라는 걸.


이곳은 피의자가 살고 싶은 세상이 아니지만, 자신의 행동을 온전히 책임지기를 원하며, 그 점이 기록에 남겨지기를 원합니다.


밸러리 내가 죽을 때 손 잡아줄 거야?

도러시 잡아줄게. 네가 잠들 때까지 옆에 있을게. 지금이 밤중이라고 하자. 밤은 엄마의 품속처럼, 일식처럼 컴컴하지.


네가 물속을 지나갈 때 내가 네 옆에 있을게

물은 널 삼키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네가 불속을 걸을 때

불길은 널 태우지 않을 거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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