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끌로이
박이강 지음 / 북다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여성 인물들이 이야기를 주도하는 소설이 취향인 사람

2. 피아노, 재즈, 타투 등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

3. 겁 많고 신중하지만 자유로움을 남몰래 추구하는 사람

4. 삶을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봤던 사람

5. 소중한 사람에게 더 많이 사랑받길 바라본 적 있는 사람

6. 지금 곁에 없는 사람과의 영원을 꿈꾼 적 있는 사람

7. 친구의 망한 사랑을 말리다 그 친구와 멀어져 본 사람

8. 인간관계의 허울과 허상에 현타를 느낀 사람

9. 책을 고를 때 표지 미감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10. 다양한 장르와 급전개가 들어간 장편을 좋아하는 사람

​


[줄거리]


여기 몸은 성인이 되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엄마에게 종속되어 살아온 대치동 마마걸이자 뉴욕의 외톨이 유학생 지유가 있습니다


또 여기 그와는 반대로 감정에 솔직하고 행동에 적극적인,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미국인 대학생 끌로이가 있죠

​

성인이 되고 능동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지유는 끌로이와 단기간에 친해지게 되고, 그에게 끌리면서 둘은 룸메이트가 되기까지 합니다

​

모든 게 완벽하다고 되뇌이며 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끼는 것도 잠시, 서로에게 유일하고 영원한 존재가 되길 바라는 자신과 달리 끌로이는 자신을 좋은 친구들 중 하나로만 여긴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고 지유는 괜한 질투를 느끼게 됩니다

​

게다가 끌로이가 불법체류자에 열 살 많은 남성 멘도와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찔한 불과 같은 사랑을 시작하게 되자 지유는 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고, 지유의 염려와 질투가 점점 선을 넘기 시작하고..

​

지유와 끌로이는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

애증의 존재였던 엄마의 병세가 위중해 한국으로 잠시 귀국한 지유는 끌로이와의 관계 회복에 노력하지만 끌로이는 단 한 번도 답을 보내지 않습니다

​

지유는 한국에서 방황하던 중 우연히 끌로이와 닮은 미지라는 타투 시술점 직원 미지와 얽히게 되고 둘은 점점 친해집니다

​

지유는 끌로이와 형성하는 데 실패했던 완벽하고 유일한 관계를 미지와 만들어내려고 하지만 위험하고 매력적인 지유는 어딘가 이상한 면이 있는데...

​

과연 지유는 엄마의 딸, 끌로이의 룸메이트, 미지의 친한 언니가 아닌 지유 자신이 될 수 있을까요?

​


[느낀점]


모녀, 친구, 연인 등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다양한 관계에 처했을 때 수시로 맞닥뜨리는 갈등과 모순이 담겨 있는 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단순하게 '헤짝레(헤녀를 짝사랑한 레즈비언)' 스토리가 아닌가 싶었지만 비록 여성들끼리 서로 사랑하기도 하고 소유하고 싶어하기도 하는 소설일지라도 여기서 성적 지향성이 뭐가 중요한가요? 결국 작가가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관계의 한시성과 그로 인해 필요한 자기 내면의 강인함인데 말이죠


문제 푸는 기계로 자라 단순히 숫자로 나타나는 점수로 뉴욕 대학에 편입 성공했을 뿐, 내면은 아직도 소심하고 미숙한 대치동 마마걸 지유는 조심스럽고 방어적이면서도 완벽하되 유일한 관계를 원하면서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수많은 실수를 합니다만.. 그것은 지유와 반대인 끌로이, 미지도 똑같습니다 끌로이도 불법체류자와 같이 살 생각을 하고 원래 했던 약속도 어기는 등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망한 사랑'을 이어나가고 미지는... (자체검열)

​

이게 스포일러라 말할 수 없지만 이 <안녕, 끌로이>는 미지가 등장하는 챕터 4 부분부터 급격한 장르의 변화를 걷는데요 소설이라서 전혀 시각적인 요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유가 끌로이와 함께하던 부분은 파란색(끌로이가 파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이후로 눈에 띄었다는 초반 묘사가 있음), 미지와 함께하던 부분은 검은색으로 읽히는 뭔가 공감각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

그런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알고보니 <안녕, 끌로이>는 원래 지유가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미지를 집에 들이면서 발생하는 악몽 같은 하룻밤을 보내게 된 이후 벌어지는 나비효과를 통해 누군가와 잘 알고 지낸다는 허울, 누군가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시사하는 책이었다고 합니다 첫 기획에서 겹이 더해지고 방향이 바뀌면서 만들어진 장편인지라 끌로이, 엄마 등 다양한 인물과 서사가 발생하고 결국 굴러온 돌 끌로이가 박힌 돌 미지 캐릭터를 밀어냈군요.. 솔직히 흥미로우면서도 조금은 급전개 같다 생각했는데 읽고 나니 이해가 갔습니다

​


저번 주에 읽었던 프랑스아주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제목이었습니다 <슬픔이여 안녕> 의 '안녕'은 처음 마주했을 때 인사, <안녕, 끌로이>의 안녕은 작별인사더군요


지유는 비록 수많은 사건을 겪고 다양한 실수를 하지만 그로 인해 성장해가며 마지막에는 끌로이에게 용서받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고 끌로이도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에게 이메일로 인사를 남깁니다

​

누구나 인간관계에 최소 한 번은 실패와 좌절이 있지 않았나요? 저 역시 당장 1-2년 전만 해도 원치 않는 방향으로 마감된 수많은 인연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아직도 가끔 되새김질하고는 합니다

​

얘랑은 영원히 친구로 남을 거라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기도 했고, 어긋나고 나서도 한동안은 얘가 이런 면에서는 정말 진국이었는데(진국이면 애초에 절연했겠냐?) 싶어서 왜 나를 버렸는지 원망하기도 하고, 내가 버렸는지 이미 저지른 일이면서 고민하기도 하고 애초에 처음부터 거리를 뒀더라면 이런 걸로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생각한 적도 많았더랬죠

​

하지만 저는 'OO의 친구'만으로 정의될 수는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 너무 얽매이지는 말고 때로는 안온한 둥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경험으로 성장해서 결국에는 견고한 자아를 형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또 저번 주에 읽었던 박상영의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이 생각나는데요.. 거기서 '감정의 경제성'이라는 단어를 접했거든요 항상 그 관계에 최선을 다하되 그 관계의 유효기간이 종료되면 너무 목매이지 않고 돌아설 수 있는 성질을 말하는 것이었는데요 정작 박상영 작가(본인 피셜)와 저는 감정.. 보다는 분노와 증오라는 괴물에 붙잡혀 있어서 쉽지는 않겠지만요

​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나와 완벽하게 맞을 수 없는 불가해한 생명체일지라도 두 생명체가 소통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수많은 불완전을 통해서 삶을 이겨내고 지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박이강 작가의 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안녕, 끌로이> 인간관계의 허울과 허상을 넘기고 서투르지만 단단해진 여성이 보고 싶다면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인용구]


은신할 공간은 없지만 절대 내쳐질 일도 없었던 그 안온한 새장 속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피가 뜨거워야 하는데, 우린 그렇게 타고 나질 않았어. 좌절에 강한 내성만 타고났지."


"도미노의 완성은 잘 쓰러뜨리는 데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쓰러져야만 성공인 거야.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지난번 같은 실수가 가장 바보 같은 것이야. 알겠니?"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다 보면 인생의 달콤한 면도, 고약한 면도, 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제삼자의 눈에는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관계인지 똑똑히 보이는데 당사자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을 때, 얼마나 답답한지 알아?"


무모함은 절대 용납하지 않으면서 실전을 강조했던 엄마의 아이러니.


어쩌면 이방인과 친한 친구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닐지 모른다. 시간과 추억의 축적이 있어야만 관계가 깊어지는 것도 아닐지 모른다.


세상엔 애초부터 실패가 예견된 일들이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잘될 거로 생각하는 자체가 착각이고 욕심인 일들 말이다.


"앞으로 살면서 언니가 이길 때마다 그게 언니 힘으로 이긴 거라고 착각하지 마. 알량한 상처를 받았다고 진 거라고 착각도 말고."


너는 내게 세상에 유일한 사람이자 모든 이를 합쳐 놓은 사람이었어. 절대 잃어버리거나 빼앗겨서는 안 되는 삶의 전제였어. 너와 나의 삶이 교차하는 시간이 그렇게 짧게 끝나 버리는 건 용납할 수 없었어.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