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도, 잘하지 못해도 돌아오는 것이 적의뿐이라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은 최대한 잘하고 싶었다.
진짜를 영위하는 삶은 가치가 없지만 진짜를 전시하는 삶은 가치가 있었다.
여자 팬들은 이채를 어린 창녀쯤으로 여기는 여성 대중과 어린 창녀로 만들고 싶어 하는 남성 대중 모두를 미워했고, 이채는 어디까지나 순수하고 선량한 여성 청년이라고 변호했다. 서울 출신 여성이라고 해서 성적으로 문란하다거나 만만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지역 차별이며 이채의 품위를 깎아내리는 악의적인 폭력이라는 논지였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이채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한 아기였다.
어른들은 그저 같은 반에 소속된 아이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친구 사이라고 규정했다. '같은 반 친구'라니. 그 안에서 적과 원수와 일시적 동맹과 배신자와 중재자와 아웃사이더가 촘촘하게 나뉘는데.
타인의 귓속말을 들었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의 음모에 공모했다는 뜻이 되니까. 게다가 그 공모의 현장을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목격당하게 된다.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가 있고 그중 많은 것이 이채에게는 다분히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이런, 타인의 위력에 취약한 연주가 연주일 수 있지? 심지어 저 연주는 이채의 위력을 손짓해 부르기까지 하는 듯했다. 타인의 모든 영향력이 차단되는 견고하고 완전한 가상현실과는 달랐다. 연약함이란, 불완전함이란 폭력에 맞설 힘이 없는 것을 넘어서 차라리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성질 같았다.
당연하게도 이채는 칭찬을 좋아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마치 음식과도 비슷해서 중독적이었고 들으면 기분이 좋았지만, 얼마 못 가 효과가 떨어졌고 너무 많이 들으면 심드렁해졌다. 그걸 알면서도 늘 원했다.
선배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사람이 이런 시궁창에서 건져낸 행복의 의미를 뭐 하러 알아야 하겠어요? 저는 선배의 빛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선배가 어떤 연료로 어떻게 타올라 빛을 발산하는지 지켜보고 싶어요. 그 빛에 얼굴과 손을 찍고 싶어요.
사랑과 미움은 서로를 상쇄해 주지 않았다.
너를 사랑한다면서 왜 네가 살찌면 그만 사랑하는 거야?
"동정심과 애정을, 호기심과 사랑을 구분할 줄 알아?"
여돌은 흔히 케이팝 산업의 피해자라고 합니다. 그들은 무리한 다이어트와 미용 시술과 성형 수술을 감내하며 대중의 가혹한 외모 평가에 시달립니다. 충분히 먹고 놀고 자고 공부하며 자라야 할 청소년 시기에 성인도 소화하기 어려운 스케줄을 감당하며 노동하고, 카메라 앞에서 끊임없이 대상화되며 온갖 악의적 소문과 여론에 노출되지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