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다른 여성으로
문은희 지음 / 산해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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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던 책을 접고 몇 번이고 생각에 잠겼다. '나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인가?'

 

아이들 세계의 '왕따' 현상도, 어른 세계의 큰 '집단 따돌림'도 결국은 불의에 대한 우리의 무감각 탓이라고 이 책의 지은이 문은희 소장(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은 말한다(4월 이야기). 사랑도 정의감도 메말라 버린 무감각한 마음이 혹 내 마음은 아닌지.

 

나는 "딸아이가 이웃의 아픔을 돌아보겠다고 짬짬이 자원봉사도 할라치면 '그러고 다니면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 한 적이 없는지(마음의 병).

 

"자기 아이가 가진 다른 모든 사랑스러운 특징은 보려하지 않고 학업성적, 그것도 겨우 몇 시간이면 잴 수 있는 그 알량한 학력을 가지고 아무 의심도 없이 아이를 평가하려 하는, 아이들의 숨통을 막는" 그 어른이 내가 아닌지(우리나라에 태어나기 싫다).

 

묻자마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늘 시간을 들여 생각한 뒤 대답하는 아이라, 선생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잠시 미소 짓는 것을, 왜 웃기만 하고 대답을 안 하냐며 다그쳤다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모습과 특징으로 사랑해주지 못한 그 참을성 없는 주일학교 선생이 혹 나는 아닌지(우리가 사는 방식).

 

조는 아이 한 명 골라 때려, 학급 전체가 '정신 바짝 차리게' 하는 체벌 효과를 기대하는 몰인정한 교사가 바로 내가 아닌지(사랑의 매라니).

 

아이를 양육하고 싶어 필요한 기초생활비를 올려달라고 단식투쟁하다가, 아이를 못 보는 괴로움과 이 사회의 냉담함에 질려 항의하며 삶을 포기한 뇌성마비 걸린 한 여인이, 아직 살아있을 동안에는 그 "아파하는 것을 보고, [그] 신음과 절규를 듣고, 그 아픔을 함께 느끼지 않고" 있다가는 그 여인이 죽기를 기다려, 기사거리 취급하는, 중증장애 사회의 중증장애 언론의, 나는 중증장애 기자가 아닌지(우리가 장애인).

 

책을 덮은 내 마음은 왜 이리 저린지 모르겠다.

 

나도,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 '나 혼자라도' 용기 있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소수의 용기 있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나도 때로는 "팔레스타인 사람이고, 보스니아 사람이고, 이라크 사람이고, 북한 사람이고, 정신대 할머니"가 되어, 세상의 약한 이들을 섬길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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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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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호기심이 강렬하게 자극을 받으면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배의 프로펠러를 보기 위해 몸을 낮게 구부리기도 한다. 관심 있는 유조선이 지금 바다 어디쯤 떠 있을까 생각하다 잠이 들기도 한다. 이들의 이런 집중력을 보면, 혼잡한 쇼핑가 한가운데 멈추어 서는 여자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행인들은 옆으로 비켜 가는데 아이는 그 자리에서 허리를 굽히고, 마치 고급 피지로 장정을 한 책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성경학자처럼, 보도에 달라붙은 껌 조각을 주의 깊게 살피거나, 외투 호주머니는 어떤 식으로 닫히는지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다. 사실 이들은 좋은 직업의 요건에 관한 관습적인 관념을 뒤집는다는 점에서도 아이 같은 면이 있다. 그들은 늘 어떤 직업의 물질적 혜택보다는 그 일 자체가 주는 재미를 더 높이 평가한다. 특히 선호하는 것은 컨테이너 터미널의 크레인 조종사 자리다. 배와 부두를 굽어볼 수 있는 좋은 자리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열차의 유압식 문이 여닫히는 ‘쉬익’하는 매혹적인 소리에 반해 기차 운전자가 되기를 갈망하거나, 부풀어 오른 봉투에 항공 우편 딱지를 붙이는 만족감 때문에 우체국 운영을 갈망하는 것과 비슷하다.” (31쪽)

 

내 왼쪽 눈썹 꼬리 부분에는 손가락 반 마디쯤 되는 흉터가 있다. 앞 머리칼이 가려주고 눈썹이 적당히 감춰주어 남들 눈에 (그리고 눈 나쁜 내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이 흉터를 나는 이따금 무의식적으로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이 버릇은 어김없이 몇 가지 회상 작용을 동반한다.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라 했다) 몇 학년 때였는지는 이제 정확하지 않다. (두 살 터울 누나도 초등학생이었으니 아마도 3~4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날이 무슨 요일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수요일이었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나 같은 초등학생도 수요일 저녁 예배에 빠지지 않았는데, 그날 사고 덕분에 나와 아버지는 ‘정당한 사유로’ 수요 예배에서 빠졌던 것이다. 그날 내게는, 상처 난 눈가에서 흐르는 피를 의식하면서도, 틀에 박힌 일과에서 벗어난다는 것과 작은 동네에서 약간의 소동과 주목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야릇한 흥분이 있었다.

 

그날 사고는 우리 동네를 감아 돌아 나가는 철도(경부선 철도가 김천서 분기하여 경상북도의 북쪽으로 가는 지선이 간이역인 청리역을 지나 상주역으로 가는 중간쯤에 우리 동네가 있었다) 위로 굴다리가 놓이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던 현장에서 일어났다. 친구들과 놀다가 못인지 철사인지에 무언가 날카로운 쇠붙이에 눈가가 찢긴 것이다. 이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건널목이 있던 자리였다. 여기서 나의 두 번째 회상이 이어진다.

 

그곳 건널목에는 지금 생각하면 공중전화 부스 네 개를 모아 세워놓았음직한 크기의 작은 집이 있었다. 그리고 건널목지기가 있었다. 검정색 제복과 순경 아저씨가 쓰는 것과 비슷한 각진 모자에 아마도 붉은색 테두리가 흐릿하게 떠오른다. 경상북도 남쪽과 북쪽을 잇는 지선인 이 철도에는 많은 기차가 지나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기차가 다가오면 건널목지기 아저씨는 차단기의 둥근 손잡이를 돌려 노란색과 검은색의 가로대―이걸 정확하게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다―를 내렸다. 신작로(어른들은 그 시절 우리 동네를 지나는 도로를 그렇게 불렀다)에서 이제 막 2차선 포장도로로 변신을 꾀하고 있어 제법 교통량이 늘고 있던 터라 그 건널목은 때로는 여러 대의 자동차를 멈춰 줄 세우는 위용을 부리기도 했다.

 

기차가 건널목을 지날 때 그곳의 주인은 단연 건널목지기였다. 적어도 어린 우리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더구나 건널목지기 아저씨는 기차가 지날 때면 깃발을 흔들면서 기관사와 무언가 교감을 하고, 다소 거만한 동작으로 기관사와 거수경례를 주고받았다. 그때 동네 아이 중에 분명 커서 건널목지기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아이가 있었다. 나야 이미 정해 둔 다른 꿈이 있었기 때문에 건널목지기는 그 친구에게 양보했지만, 어쨌든 내게도 건널목지기는 멋진, 남자다운 직업이었다.

 

아마도 내가 그때 건널목지기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면, 어쩌면 나는 건널목지기의 ‘일’에 대해 더욱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호기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건널목지기는 기차가 오는 것을 어떻게 미리 아는지, 깃발의 용도는 정확이 무엇인지, 내가 ‘가로대’라고 부른 그것의 정직 명칭은 무엇인지, 제복과 제모도 있으니 혹시 계급도 있는지, 기관사와는 무슨 신호를 주고받는지, 그 신호는 어떻게 익히는지….

 

신작로가 고속화도로로 바뀌면서, 건널목 자리에 굴다리가 놓이면서, 그렇게 건널목지기도 어디론가 가버렸다. 버스 안내원(대개 “안내양”)처럼, 이제는 ‘건널목지기’도 내 눈가에 남은 흉터마냥 보일 듯 말 듯 한 직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알랭 드 보통, 나와 동갑이라 가끔 나의 질투를 유발하는 이 ‘친구’(저자가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별난 재주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것들에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해내는 재능이 있다.

 

이번에는 그의 시선에 “항구에 정박한 배 옆에 서서 머리를 뒤로 젖히고 이물의 첨탑들이 하늘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샤르트르 성당의 버팀벽 앞에 선 순례자들과 마찬가지로 말없이 경이감을 느끼고 흡족해” 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으로, 그들의 호기심과 열정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 일터의 지성과 특수성,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노래”한다.

 

이 책 몇 군데(진짜 몇 군데 안 된다)에 ‘소외’라는 말이 얼핏 얼핏 나오는 것을 보아서 짐작 하건대, 알렝의 지적 사유의 근저에는 이른바 ‘노동소외론’에 대한 그 나름의 질문이 깔려있을지 싶다. 아주 간단하고 거칠게 말하자면, 현대 사회의 분화와 직업의 전문화, 노동 분업화는 노동하는 인간을 그의 노동의 산물 및 의미로부터 떨어뜨려 놓는다는 주장 말이다.

 

그렇지만 이 주장은 너무 일방적이지 않을까? 이 주장에는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않을까? 직접 표현을 안 하고 있지만, 알랭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문제제기에 나도 공감한다.

 

좀 길지만 인용할 가치가 있어 보이는 대목이 있다.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 우리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66쪽)

 

갑자기 알랭이 진지한 도덕주의자가 된 건가? 물론, 그럴 염려는 없다. 그의 명민함이 발휘되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그는 ‘노동 소외 현상’의 일반화의 오류를 ‘그렇지 않는 일도 있다’는 반증으로 뒤집는데, 그가 제시하는 바로 그 ‘그렇지 않은 일들’이 참 가관이다.

 

그는 비스킷 공장을 직접 찾아가서 ‘스위트 비스킷 브랜드 감독 코디네이터’를 만나고, 이 송전탑에서 저 송전탑으로 옮겨 다니면서 ‘철탑 사이의 길이’와 ‘길이 단위가 효과적인 무게’와 ‘송전선에 따른 상수’ 같은 단위로 이루어진 방정식을 계산하는 ‘송전 엔지니어’―나는 알랭이 이 송전 엔지니어를 만나는 대목에서 특별히 더 흥분했고 또 공감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늘어선 송전선로를 보면서 나는 구릉에 늘어선 송전탑들과, 그 송전탑들 사이에 길게 늘어선 고압 케이블의 그 맵시 있게 흐르는 우아한 유선미에 감탄하곤 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알랭을 빼고는 이 거대한 설치 미술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 아쉽다―를 만나고, 인도양 섬나라 몰디브로 날아가 낚시로 낚아 올린 참치를 몽둥이로 때려잡는 어부를 만난다. 또 알랭은 물류 창고와 비스킷 공장, 직업 상담소, 로켓 연구소, 화가의 작업 현장, 송전탑, 회계 사무소, 창업 컨설턴트, 항공 박람회에 들러, 우리의 일상의 관심 밖에 있던 수많은 일(직업)들과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다시 말해, 알랭은 “의미 있는 일이라는 개념을 너무 좁혀서, 의사나 콜카타의 수녀와 과거의 거장들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경계”한다. 테레사 수녀처럼 사람들에게 추앙받지 않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일은 많다는 것이다. “아홉시부터 정오까지 길고 긴 아침나절의 공복감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는, 매끈하게 빠진 줄무늬 초콜릿 서클을 만드는 것도, 존재의 짐을 덜어주는 혁신들의 만신전에서 비록 보잘것없을지 모르지만, 그 나름의 자리를 확보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알랭의 이 책을 나는 부산의 어느 서점에서 샀다. 이틀간의 부산 여행을 마무리하는 늦은 저녁에 기차 안에서 읽을 요량으로 산 책이다. 전날 나와 가족들은 ‘태종대 등대’, 공식 명칭 ‘영도 항로표지 관리소’에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정서적 호감을 느낀 것은 ‘등대’였지 ‘항로표지관리소’가 아니었다. 솔직히,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무미건조한 그 명칭에 대한 내 감정은 비호감에 가까웠다).

 

이제 알랭이 나에게 각성을 촉구한다.

 

‘너에게 ‘등대’ 또는 ‘등대지기’는 그 일(항로표지관리)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막연한 낭만적 운문, 자기도취에 지나지 않았다.’

‘항로표지관리소’의 일상에, 그곳에서 일어나는 정교하고 전문적인 일의 의미와 그 일의 기쁨과 슬픔에, 제대로 관심을 가져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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