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
최철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존엄한 죽음. 최철주

 

죽을 때까지 살까? 살 때까지 살까?”

수련을 받던 시절에 죽음 직전에 있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소위 하는 말로 구멍 구멍에 다 호스를 끼워두고 각종 기계들에 의지해 살아가시죠. 그런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내가 만약 저런 상황이라면 어떨까? 잠시나마 철학자가 되었던 시기입니다.

 

저자는 웰다잉전수자입니다. 바르게 죽는 법을 널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죽음에 대해서는 쉬쉬하는 분위기에요. 이 상황에서 불편한 이야기를 자꾸 꺼내니 주변 사람들이 싫어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저자는 딸과 부인을 먼저 떠나보냈어요.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봤겠습니까. 평범한 우리는 마치 평생 살 사람처럼 행동하고 생각하잖아요. 최소한 죽음에 관한한 저자와 같은 전문가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 먹고 자는 자립 생활과 봉사가 자신의 존엄한 삶이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한다.’ 이 말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저도 환자분들에게 CPCR 거부 동의서를 설명하고 사인까지 받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응급구조 거부죠. 이런 환자가 있다고 생각해봅싯다. 식사도 코줄로 겨우 하고, 침대에 누워서 대소변을 기저귀에 해결하십니다. 중풍은 이미 세 번이나 왔으며 자주 넘어져서 골절도 자주 입으셨습니다. 이분이 80세가 넘으셨습니다. 이런 분은 어느 순간에 갑자기 심정지가 올지 모릅니다. 이런 분에게 응급구조 CPCR을 시행할 경우 일단 갈비뼈 서너 개쯤 부러뜨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만약 응급구조로 이 분을 겨우 살렸다 칩시다. 겨우 숨만 붙어 있는 환자는 말할 힘조차 없어서 아프다고 항의는 안 하시겠죠. 그러나 왜 다 꺼져가는 목숨 갈비뼈 부러뜨려가며 다시 살려놨느냐고 마음속으로 따지실지도 모릅니다.

 

웰다잉을 막는 사람이 있습니다. ‘먼 친척이죠. 갑자기 나타나서는 이렇게 부모를 방치해서 어쩌냐며 툭 한 마디 던지고 갑니다. 남은 자녀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괴로워하죠. 먼 친척이 던진 한 마디에 직장도 그만둔 보호자가 생각나네요. 그 환자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환자에게 남은 혈육은 아들이 유일했죠. 이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며 치료비를 마련했습니다. 직장도 그만두고 돈을 빌리러 다녔습니다. 급기야 부인과는 이혼해버렸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아무리 돈을 빌려도 아버지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죠. 생각 없이 한 마디 툭 던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야 합니다.

 

죽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쉬쉬할 일이 아니에요. 나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니 혹시나 내가 의사 판단을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나의 뜻을 따라 다오. 이렇게 이야기를 해둬야 합니다. 죽음을 바로 볼 수 있는 사람만이 바른 삶을 살아갈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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