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 진경산수를 개척한 우리나라 화성 ㅣ 새로 쓰는 화인열전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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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는 오랜 시간 고전을 묵묵히 방작(倣作)하며 선배 화가들의 필법을 몸에 새겼다. 방작이란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고전의 정신과 기법을 철저히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손끝으로 체득해 가는 과정이다. 유홍준 작가님은 이것을 이렇게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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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가 섣불리 자기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이처럼 고전을 차근차근 방작하는 중년의 겸손과 성실성을 거쳤기 때문에 자신의 개성에 힘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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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1

이 문장을 읽고 잠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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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예술가의 독창성을 이야기할 때 '영향을 받았다'는 말로 가볍게 넘긴다. 마치 독창성이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하지만 유홍준 작가는 그것을 훨씬 더 정확한 언어로 부른다. 화가로서 수업기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장인적 수련과 연찬(硏鑽)이라고. 연찬이란 갈고 닦는다는 뜻이다. 재능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개성은 무(無)에서 솟아나는 게 아니라, 철저한 고전 학습과 성실한 반복 위에서 비로소 힘과 자신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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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쌓인 기반 위에서, 60세 이후 겸재는 폭발한다. 수직의 암봉과 부드러운 토산이 극적으로 대비되는 금강전도, 76세의 노화가가 비 갠 뒤의 인왕산을 오직 먹으로만 압도적으로 담아낸 인왕제색도. 이 그림들이 뿜어내는 힘과 자유로움은 결코 타고난 천재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누구도 모르게 쌓아온 길고 느린 수련의 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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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는 대기만성의 거장이었다. 그리고 그 대기만성은 운이나 기다림이 아니라, 겸손하고 성실한 장인적 연찬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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