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 전2권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누군가의 회고록을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이의  자서전을 읽게 되는 것은 자기만의 영웅에 대한 경외의 표현일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 
그는 나의 영웅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도 아니다. 
오래전에 읽은 그의 대표작 <이기적 유전자> 또한 인생을 바꾼 책은 아니었다. 

지금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는 책 제목과  사악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DNA 조각들이 자신의 수를 늘리기 위해 온갖 술수를 써가며 서로 경쟁하고 있다는, 그래서 생명을 보는 관점이 개체에서 유전자로 옮겨온다는 다소 SF와 같은 이야기만이 아스라이 뇌의 어느 한쪽에 남아 있을 뿐이다. 

칼 세이건과 더불어 비록 과학 책이지만  그의 글은 쉽게 읽히게 되는 비밀인 그의 필력을 나는 좋아했다.  다음과 같은 구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치 한 편의 산문을 읽는 기분으로 과학을 접할 수 있는 것은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자의 복이다. 

번개는 아름다웠다. 환하게 밝혀진 하늘을 배경으로 산등성이가 까만 실루엣을 드러냈다. 가끔은 거의 논스톱으로 두드려대는 듯한 천주교회가 그랜드오페라의 반주처럼 내내 울려 퍼졌다. - 88쪽  

그가 70 평생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쓸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벽돌 두께의 책을 도전하게 만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이 책을 통해서 찾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40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이기적 유전자>가 탄생한 배경은 
우연과 자극이었다.  
우연은  1973년 전국광부노조의 파업으로 귀뚜라미 연구에 필요한 전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됨으로써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자극은  트러버스의 '부모의 투자개념'에 대한 논문이었다.  이 논문은 책상 서랍에 잠자고 있던 <이기적 유전자>를  다시 꺼내게 된 자극이었고,  그의 논문은 <이기적 유전자>의  8장 '세대 간의 전쟁'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기적 유전자>에 제일 크게 영향을 미친 네 명의 저자를 꼽는다면 해밀턴과 윌리엄스 다음으로 트리버스의 이룸이 추가된다. 네 번째 인물은 훗날 소중한 조언자가 된 존 메이어가 스미스였다. 
메이너드 스미스의 논문들은 나로 하여금 <이기적 유전자>의 먼지 쌓인 첫 장을 꺼내 나머지를 완성하게끔 이끈 또 하나의 중요한 자극이었다. - 349

인생을 바꾸는 것은  우연한 만남,계기 그리고 자극인지도 모르겠다.
자극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독서다.  그리고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교류일 것이다.   융합이란 다른 분야의 사람과의 만남에서도 발화할 수 있음을. 
책에는 이들 외에 그의 인생을 변화시킨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세상에 사람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이러한 이야기들은 앞으로 삶을 살면서 사람에 대한 욕심을 자극한다. 

19세기 사람들은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의문을 얻고 싶을 때 소설을 읽었습니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를 읽었죠. 
그러나 요즘은 누구나 그런 주제에 대해서 소설가보다 과학자에게 들을 말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나는 독서에서 뭔가 진상되고 확실한 정보를 얻고자 할 때는 과학 책을 보고, 가벼운 기분 전환을 위해서는 소설을 읽는 편입니다. -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2. 20쪽

도킨스가 가장 사랑했고 유일하게 책을 읽자마자 처음 페이지로 돌아가서 다시 읽은 책의 저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말을 빌려서 쓴 이 글을 읽고 나면 내년에는 보다 많은 과학서를 독서의 비중에 두고 싶은 욕심이 일게 된다. 


자연선택을 낙천적으로 해석한 이론 중에서, 제대로만 작동한다면 '모든 것이 최선을 추구하는' 낙원이 만들어질지도 모르는 이론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론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 이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설득하는 것이 내가 <이기적 유전자>를 쓴 목표 중 하나였다, - 335쪽  

긴 세월로 펼쳐보면 결국 생물은 진화한다. 이것이 자연선택설이다. 다윈주의자들에게는 오랜 논쟁거리가 있었는데, 자연선택되는 대상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집단인가, 개체인가. 
신다윈주의자들 일부는 둘 다 아니라고 생각했고, 자연선택의 대상은 다름 아닌 '유전자'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디킨스가 자서전을 통해서 <이기적 유전자>를 쓴 목표를 밝혔으니, 이 책은 다시 한 번 불러내어서 지식의 탐구를 떠나야겠다. 


그의 70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기뻤다.
그와의 나의 공통점을 발견했기에 ... :)  그의 아래 글과 만나면서 멘델스존과 슈베르트의 음악과 함께 그의 글을 읽었다. 마치 그가 음악에 취한 것처럼... 

시를 읽다가 감동하여 눈물을 글썽이는 일은 흔하고, 음악도 마찬가지다. 가령 슈베르트 현악오중주의 느린 악장, 혹은 주디 콜린스는 존 바에즈의 노래를 들으면 그렇다.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71쪽) 

그는 시를 사랑한다.  나도 시를 사랑한다.
그는 음악을 좋아한다. 나도 음악을 좋아한다. 
그는 멘델스존과 슈베르트를 좋아했다.    
그는 존 바에즈와 주디 콜린스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나도 존 바에즈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덕분에  주디 콜린스의 음악도 좋아하게 되었다. 

청년 시절의 내가 감동했던 시 몇 편을 이 자리에 발췌해보겠다. 이 시들은 나라는 인간을 만드는 데 중요하게 기여했다. 나는 이 시들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외웠다. - 223 쪽 

그가 외운 시 한 편을 옮긴다. 

마음과 마음을 맞잡은 채 그들은 서 있었네. '저기를 봐요', 
그는 속삭였던가? 꽃이 아니라 저 멀리 바다를 봐요.
장미의 꽃은 지고 가벼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어도
포말의 꽃은 영원할 테니까 - 그러나 우리는 어떨지?
바람은 여전히 노래하고, 파도는 여전히 부서지고, 
정원의 마지막 꽃잎은 떨어졌네.
한때 속삭였던 입술 위로, 한때 반짝였던 눈동자 위로.
사랑은 죽었네

- A.C. 스윈번 


시적 운율에 대한 감각은 내가 글을 쓰는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 374 쪽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난해한 생물학과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시적 운율에 바탕을 둔 탁월한 그의 글 솜씨 때문인 것을 알 수 있다. 


인생에서 나를 만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곳은 바로 옥스퍼드였다.

그를 만든 곳이 옥스퍼드였다면 그가 후배들을 만드는 곳 또한 옥스퍼드인지도 모르겠다. 

이기기 위해서는 지식 자체가 아니라 어디에서든지 무언가를 배우고 간직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 필요한데, 대학에서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사고방식입니다. -자서전 2권 33쪽

그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엿보고 있노라면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하면 마치 나도 새롭게 탄생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언가를 배우고 간직할 수 있는 사고방식. 
그것은 다름 아닌 질문이었다. 
학생 면접에서 묻는 몇 가지 질문들을 보고 내가 그 자리에 있으면 과연 창의적,논리적으로 대답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 거울은 왜 왼쪽과 오른쪽을 뒤집어 보여주지만 위아래는 뒤집어 보여주지 않는가? 그리고 이것은 어떤 분야의 문제인가? 심리학, 물리학, 철학, 아니면 또 다른 분야?
- 당신이 지금 이 순간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한 걸 어떻게 압니까? 

대학에서 배운 것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한탄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시간이 변했음에도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쉽게 찾아보기 아직도 어렵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2권의 많은 부분은 그가 쓴 책에 대한 내용들이 있어서 그의 책을 읽지 않은 상태라 아쉬웠다. 
그러나 아쉬움은 그의 다른 책으로의 여행을 안내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었다.

그의 70 번째 생일에  초대된 100명의 사람들 앞에서 그는 짧은 시 한 편으로 말을 맺었다. 

이제 나는 60년하고도 10년을 더 살았으니
70년이 또다시 오진 않으리.
그리고 70번의 봄에서 내 운명을 빼면...
내게 얼마나 남았는지를 뺄셈이 알려준다. 

(---)

아직은 내게 어두운 밤을 순순히 길들일 시간이 있다. 
세상을 환희 밝힐 시간이  있다. 
또 하나의 새 무지개를 풀어버릴 시간이 있다. 
영원한 안식이 들기 전에. 

75살인 지금의 그에게서 여전히 최고의 지성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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