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가문이 꽃피운 르네상스
박영택 지음 / 스푼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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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을 이야기하면서 당시 이탈리아의 중심이었던 피렌체의 미술을 빼놓고는 완벽한 조각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피렌체의 예술이 꽃 필 수 있었던 이유가 메디치 가문의 경제력과 자유로운 학문 연구의 지원이 있었던 사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실입니다.

피렌체에서 활동하던 많은 예술가들이 다른 군주들의 요청으로 다른 도시로 이동하게 됨으로써 르네상스 미술이 전 유렵으로 전파되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위의 두 그림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이 그림을 볼 수 있었을까요?

오늘날 피렌체에 남아 있는 걸출한 회화나 조각 작품들은 거의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가 의뢰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보티첼리의 <봄>은 로렌초의 별장 장식을 위해 그린 그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로렌초가 만든 플라톤 아카데미의 후원이 없었다면 이 둘의 만남은 없었겠죠.

보치첼리는 르네상스 미술에서 처음으로 신화를 소재로 삼아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티첼리는 미술의 목적이 정신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것은 가려진 근본적인 실체를 꿰뚫어 보는 것으로 만물의 본질을 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궁극적으로 예술과 철학은 같은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활동이라는 뜻입니다. 보티첼리의 미술은 아름다움은 올바름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플라톤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109쪽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에는 피렌체의 역사를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피렌체는 15세기 후반에는 메디치 가문의 독재 정치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피렌체가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세력 다툼을 위한 싸움터가 되었고 1494년 프랑스의 침입을 계기로 메디치 가문의 피에트로 데 메디치는 마키아벨리에 의해 추방당합니다.

이로써 피렌체는 공화정 시대가 들어서게 되면서 메디치 가문이 이끌던 르네상스의 황금시대가 문을 닫게 됩니다.

그리고 피렌체에는 시민 공동체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다시 등장하였고, 나라를 구하는 애국적인 인물 혹은 영웅의 이미지가 필요했습니다.

이때 제작된 것이 마키아벨리가 바랬던 로마 제국 공화정의 이상을 담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라고 합니다.

어쨌든 이 작품 또한 메디치 가문과 연관돼서 이해하는 것도 무방할 듯합니다.

메디치 가문의 '메세나'를 통한 후원이 없었다면 르네상스 미술이 꽃 필 수 있었을까요?

가문은 사라져도 그들이 남긴 예술 작품에 가문의 이름 또한 함께 하는 영광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기업들도 예술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다양한 '메세나' 활동을 기대해 봅니다.

사회적 가치라는 것에는 시민들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운 행위 또한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니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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