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좋을 그림 - 여행을 기억하는 만년필 스케치
정은우 글.그림 / 북로그컴퍼니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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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은 특별한 여행기를 만났다. 여행지에서 만년필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아무래도 좋을 그림이 바로 그 책이다. 스마트 폰이며 태블릿 등 작고 가볍고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최첨단 기기의 난무에도 불구하고, 저자인 정은우 님은 스케치북과 만년필을 선택했다. 그는 누적 방문객 수 385만여 명을 거느린 파워 블로거로, 이미 많은 블로거들에게 솔샤르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저자의 블로그를 찾아가 책에도 실린 것과 같은 지난 여행기와 현재 진행 중인 여행기들을 읽어보고 있자니 확실히 책은 책대로 종이를 통해 느껴지는 또 다른 맛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여행 에세이라 하면 조금은 왜곡될 정도의 멋진 여행지 사진을 기대하기 마련이라,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흑색으로만 그려진 만년필 그림이 살짝 답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티슈에 물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입이 벌어질 만큼 섬세한 그림 솜씨도 한 몫 했지만 각각의 여행지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저자의 말솜씨가 두세 몫은 한 것 같다. 스마트 폰 따위 넣어 두고 오롯이 그 곳을 향해 집중을 할 수 있게 하는 힘. 이 책에는 저자가 마치 가까이에서 조곤조곤 설명해 주고 느낌을 나누는 것 같은 그런 묘한 힘이 분명 있다.

 

 

    여행을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선지를 정해 두고 그 곳에서 둘러보아야 할 포인트는 어디인지, 맛집은 어디이고 숙소는 어디인지 철저하게 준비를 해놓고 떠난다. 세워 놓은 계획에 맞게 움직여야 하다 보니 여행지를 충분히 보고 느끼는 시간이 부족한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여행을 간다는 것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일정을 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한 자리에 앉아서 스케치북과 만년필을 꺼내어 스케치 하는 즐거움을 충분히 맛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세밀화를 그리려면 한 곳을 보고 또 봐야 할 텐데, 다음 일정이 바빠 사진 찍기에 바쁜 우리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그는 얼마나 많이 볼 수 있을까?

 

 

    이 책은 한마디로 느림과 통찰력의 미학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한 번 쯤 숨 돌릴 시간을 내어주는, 결코 가볍지는 않으나 또한 무겁지 않은.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다녀오지 않은 여행지는 물론, 이미 다녀 온 여행지에 대해서도 다시 새롭게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작가님 덕분에 여러 건축물들에 대한 혹은 역사, 상식 등 앎의 즐거움까지 만끽하였다. 저자의 블로그에 가면 만년필 화 이외에 사진 에세이도 만날 수 있는데 그것 또한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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