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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 소중한 것은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정철 지음, 어진선 그림 / 허밍버드 / 2014년 8월
평점 :

아주 참신하고 획기적인 책을 한 권 만났다. 무려 262개의 한 글자 말을 추려, 글자 하나에서 생각 하나를 끄집어내고 또 마음 하나를 끄집어내어 엮었다는 카피라이터 정철님의 ‘한글자’가 바로 그 책이다. 책을 넘기니 첫 부분에 작가의 재미있는 부탁이 실려 있다.
부탁입니다. 느려 터져 주십시오.
5초에 읽을 수 있는 글을 5분에 읽어 주십시오.
하루에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씩만 토막 내서 읽어 주십시오.
작가가 활자화하지 않고 행간에 넣어 둔 이야기를 당신이 꺼내서 읽어 주십시오.
자, 이제 느림보가 되는 겁니다.
작가님의 거듭 되는 부탁이고 보니 왠지 이 부탁은 꼭 들어야 될 것 같아서, 이 책은 다 읽으려면 30분도 안되어 뚝딱 읽어 낼 것 같아서 천천히 느리게 조금씩 아껴서 보았다. 그리고 읽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에 많이 할애하고, 작가님이 남겨 놓은 여백에 내 이야기를 넣으려고도 애 써 보았다.
페이지의 귀퉁이에 한 글자를 적어 두고 페이지 가운데에 그 글자를 풀어 놓은 형식이다. 삽화도 참 감각 있고 재미있고 참신하다. 책과 아주 잘 어울린다. 한 음절 글자들만으로 책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획기적이고 독창적인가? 그의 이야기 풀어내는 솜씨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때로는 언어유희로 또 때로는 역발상으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아!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깨달음의 끄덕거림을 선사하는 책.
마음에 남는 이야기가 많다. 그 중 딸아이에게 전해 주고 싶은 이야기 바로 숫자 ‘2’이다. 2의 생김새에서 사람의 무릎 꿇고 고개 숙인 모습을 유추해내고 ‘겸손’을 이야기한다. 늘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사는 1은 괜스레 비교도 당한다. 바닥에 길게 몸을 붙이고 있는 것은 ‘안정’됨으로 이어져 늘 다리 하나로 언제 쓰러질지 모르고 서 있는 1이 갖지 못한 좋은 자세라고 칭찬받는 숫자 2. 그리고 그는 쐐기를 박는다.
꼭 1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한 걸음만 뒤로, 조금만 더 천천히
1등이 중요한 건 아니야, 최선을 다 했으면 그걸로 됐어. 아이에게 자주 하게 되는 말이다. 이 책을 보고 숫자의 생김새만으로도 이렇게 참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구나! 아이에게 보여주며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아이가 큰다면 더 많은 것을 공유해 볼 수 있으리라.
우리는 너무나 바쁘다. 매일 스마트 폰으로 기사를 검색해서 읽을 시간은 있으면서도 책 한 자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한글자’는 이런 바쁜 현대인에게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으면서 더불어 생각 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책이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