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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멀리 가고 싶은 너에게 - 시인 엄마와 예술가를 꿈꾸는 딸의 유럽 여행
이미상 글.사진, 솨니 그림 / 달콤한책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표지에 먼저 홀딱 반했고, 마치 내 이야기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편안하게 펼쳐지는 이야기에 두 번째로 반해버린 책이다. 표지의 사진은 우선 아래위로 이등분 되어 위치해 있는데, 위의 사진은 유네스코 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는 프랑스의 몽생미셸이다. 눈이 시릴 정도로 청명한 하늘 아래 덩그러니 위치한 수도원인 몽생미셸을 17살 딸이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을 엄마인 저자가 찍은 사진인 듯하다. 아래 부분의 사진을 코발트 빛 해변의 사진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여러 지명들 사이로 Trapani 해변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사진은 이탈리아의 트라파니인 듯하다. 수년 전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다녀왔지만, 표지에 실려 있는 이 두 군데는 아쉽게도 가보지 못했다. 이처럼 이 책은 시인인 엄마와 예술가를 꿈꾸는 17살 딸의 유럽 여행기인데, 여행 가이드 책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곳들 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이 그간 많이 가보지 못했던 곳들의 여행기라고 할 수 있겠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흔한 유럽 여행기이기에 앞서 엄마와 딸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진 여행기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것 같다.
저자인 엄마의 직업이 시인이다 보니 여행 이야기는, 어렸을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처럼 술술 풀려나간다. 또한 엄마의 이야기에 날개를 달아주는, 딸이 여행지에게 직접 그려 온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중학 1학년 때 자퇴를 하고 미국 예술학교로 떠난 17살의 딸, 솨니. 2012년 여름, 예술가의 꿈을 품은 그 딸 솨니와 시인 엄마는 에스파냐, 포르투갈,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서유럽으로 3개월간의 서유럽 미술 여행을 떠난다. 시인은 여행을 하면서 여행지와 예술을 이야기하고, 일상을 이야기하고, 삶을 이야기 하고, 딸과의 소통을 이야기 한다. 멋진 레스토랑과 호텔을 이용하는 호사스러운 여행이 아닌, 대학생들의 배낭여행과 같은 모험과 불편함을 동반한 이야기들이라 한층 가깝게 느껴졌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이야기는 바로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신 안 볼 것처럼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면서 서로 성장해 가는 모녀의 이야기.
책을 덮으면서 엄마와 함께 갔던 멕시코 여행을 떠올렸다. 물론 단 둘만의 여행은 아니었지만, 고작 일주일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곳에서 엄마와 함께 했던 그 시간이 오래 오래 가슴에 남아 있다. 많이 웃었고, 많이 아파했다. 나도 자식을 낳아 키우는 입장이 되다 보니 자유스럽게 시간을 내어 엄마와 여행을 한다는 것이 참 쉽지 않다. 이 책이 더 늦기 전에 엄마와 여행을 많이 하라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라고 채근하는 것만 같다. 이 책의 모녀가 들려주는 여행 일기로 못 가본 유럽의 구석구석을 살펴본 것 같은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했지만, 함께 웃고 때론 안타까워하고, 때론 함께 화를 내면서 결국은 ‘나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더 많이 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