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같은 목소리
이자벨라 트루머 지음, 이지혜 옮김 / 여운(주)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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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먼저 읽은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저자가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추리 작가라고 한다면 놀랄 것이다. 이 책이 좀 더 특별한 이유는 저자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그녀의 아버지를 모델로 하여 아버지의 입장에서 담담히 일상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그림자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그프리트 그람바흐라는 80세의 노인이다. 그는 돈은 없지만 먹을 것은 늘 넉넉했던 농가에서 태어나 고작 열일곱 살의 나이에 벨기에 전쟁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전쟁 후에는 철도회사에 취직해 결국 역장의 자리까지 올라간 제법 성공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관계도 원만한 편으로 아내 힐데와 독신의 딸 바바라, 결혼해서 두 명의 손주를 안겨다 주기도 한 미하엘이 있다. 여든이 되도록 각종 수치도 이상적이고 주치의도 뼛속까지 건강하다고 말할 정도로 건강에는 자신이 있으며 외모도 젊어 보여, 이 상태라면 백 살까지도 거뜬해 보인다고 생각했던 2006년 봄, 그 시절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는 2006년 봄, 몸은 완벽하리만치 건강하지만 건망증이 부쩍 심해진 것을 느끼는 그람바흐의 불완전한 심리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해 가을, 이듬해 봄, 그 이듬해 여름을 지나 처음으로 병원에서 알츠하이머초기 증상이라는 말을 듣게 된 2009년 봄, 그 해 가을, 겨울을 지나 결국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지고 가족들까지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2014년 봄까지 이야기는 이어진다. 저자가 그녀의 아버지를 관찰하고 쓴 소설이지만, 관찰자 입장이 아닌 아버지 당신의 관점에서 섬세하게 묘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잘못된 것이 없는데 자꾸 황당한 일이 생기고, 기억의 앞뒤에 구멍이 뚫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생겨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림자 같은 목소리'는 주인공인 그람바흐가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을 앓아가면서 의사소통이 힘들어지는 부분부터 가끔 나오는데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을 표현한 것이다. 자는 그람바흐의 실어 증세가 악화되어 가는 과정을 일부러 철자나 문법을 틀리게 쓴다든지 말줄임표를 자주 사용함으로써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증세가 악화 될수록 틀린 철자나 문법, 말줄임표의 빈도는 잦아졌다.

 

   이 책을 읽어보기 전에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는 환자의 입장에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본인조차 컨트롤 할 수 없는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므로 늘 그런 환자를 돌보아야 하는 가족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앞섰다. 그런데 자신을 잊어가고 소중한 사람들을 잊어가는 이 증상이야말로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나라는 현재 평균 수명 연령 81.3세의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건강 평균 수명 연령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70.65세 정도라고 한다. 이런 고령화 시대에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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