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라고 하면 ‘꼭 읽어야 할 고전, 그렇지만 막상 읽을 엄두는 안 나는 책’의 대표작이 아닐까 싶다. 사실 몇 번을 펼쳐 들었지만, 아직도 끝까지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나온 오종우 교수의 <무엇이 인간인가>를 접했고, 이 책이 <죄와 벌>에 대한 막연한 부담을 덜어주었다.
<무엇이 인간인가>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통해 인간 내면의 본질과 인간의 품격에 관해 이야기한다. 단순히 <죄와 벌>의 내용을 해석하는 식의 피상적인 접근이 아니라 인물을 중심으로 그 인물이 벌인 사건과 그를 둘러싼 환경, 그리고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내면의 갈등을 세심하게 읽어낸다. 주인공 로쟈가 보여주는 인간의 극단적인 양면성과 이기심, 자기합리화는 물론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일 것이다.
한편으로 인간의 삶을 이루는 조건들도 살피고 있다. 가난과 극빈은 어떤 점에서 서로 다를까? 대의를 위해 소를 무시하는 공리주의는 과연 옳을까?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서 인간을 숭배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를 먼저 생각하고 우선하여 아끼는 자기중심주의는 혹시 왜곡된 것이 아닐까? 저자는 ‘인격’과 ‘인권’의 개념으로 이런 물음들에 답한다.
인격은 능력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특별하고, 저마다의 가치를 지닌다. 인간을 직급과 신분으로 구분하는 태도는 상대의 인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우리는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서 그 사람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나아가 타인을 이해하고 정의를 이루려면 동정과 베풂이 아니라 ‘고통을 공감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 저자는 현대인이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사는지를 묻는다. 우리가 생각한다는 게 진정한 사유라기보다 계산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계산적인 태도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삶의 자세로 보았다. 그렇다면 계산하며 산다는 것은 왜 문제인 걸까? 그것은 인간이 갈수록 계산의 요소가 늘어나고 셈법은 복잡해져서 이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에 와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고전이 어떤 힘과 가치를 지닐까. 저자는 “인간의 마음이 혼탁해지고 안락이야말로 인생의 핵심이라고 떠들어대는 현대의 사건, 바로 우리 시대의 사건”이라는 <죄와 벌>의 구절을 들어 말한다.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이야기인 것이다. 고전은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에 자꾸 생각해보라고 부채질한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다. 정답을 찾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해결하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야말로 인간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