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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무아 포트 ㅣ 라가와 마리모 단편집 2
라가와 마리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 읽어주는 남자입니다.
1990년대, 본격적으로 만화책이 대중들에게 많이 읽히기 시작하면서 순정만화와 소년만화의 독자는 명확하게 갈려있었습니다. 남자들은 "북두의 권, 드래곤볼" 같은 소년만화를 여자들은 "별빛속에, 불의 검"같은 순정만화를 주로 읽었습니다. 여성과 남성은 그 취향에서부터 확실하게 구분되는 만큼 만화를 읽는 성향 또한 별반 다를바 없었습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그나마 여성독자들은 남성독자들이 읽는 소년만화풍의 만화책을 많이 읽어 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남성독자들은 "순정만화" 근처에도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죠. 자세하게 만화책의 내용을 들여다보지도 않은채로 그림체만 보고 "순정만화다!"라고 판단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얘기 입니다.
그 와중에 1990년대 초반, 남성과 여성 모두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눈물샘을 자극한 전설적인 "순정만화"가 있습니다. 여성취향의 그림체에는 근처도 가지 않던 남자들도 입소문이 돌기시작하면서 "너도 나도" 이 만화책을 한번씩은 꼭 읽어보았고 필자 또한 이 작품을 계기로 "순정만화"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졌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만화책의 제목은 "MARIMO RAGAWA"의 "아기와 나" 입니다.
순정만화에 대한 선입견을 한방에 날려버려준 "아기와 나". 사실 이 만화는 정통 "순정만화"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하지만 남자들의 경우에는 조금이라도 여성적인 그림체의 만화를 모두 "순정만화"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확실히 "아기와 나"는 그런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순정만화"였다.
"아기와 나"라는 작품으로 인해서 국내에서도 인지도를 넓혀간 "RAGAWA MARIMO"는 이후에 "저스트 고고, 뉴욕뉴욕"같은 걸출한 차기작들을 국내에서도 히트시키면서 왠만큼 만화좀 읽는다 하는 독자들에게 "신간"이 발간되면 그 어떤 작가들보다도 기대하게 만드는 만화가로 자리매김합니다.
테니스만화이지만 테니스만화같지 않았던 "저스트 고고"와 출간당시 "게이"를 소재로 하여 국내에서도 "18세 미만 구독불가"였던 "뉴욕뉴욕".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을 기본으로 한 만화인 만큼 책을 덮는 순간 나도모르게 눈물을 한방울 떨어뜨릴 것임에 틀림없다.
본디 사람의 마음을 진하게 진동시키는 내용과 수려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림체로 정평이 나있는 "RAGAWA MARIMO"의 작품들은 대부분이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슬픕"니다. 하지만 그 어떤 만화들보다도 따뜻한 만화를 만들어내는 "RAGAWA MARIMO". 그의 최신작이 두권의 단편으로 묶여 출간되었습니다. 제목은 "아침이 또 오니까"와 "치무아 포트". 평소 "RAGAWA MARIMO"의 만화를 좋아하던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 될것이며 이 작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차가운 겨울밤,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신간 만화책 소식임에 분명합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동화같은 이야기, [아침이 또 오니까] 와 [치무아 포트]". 지금 부터 시작합니다.
▶ 아침이 또 오니까
두권의 단편만화책중 그 첫번째인 "아침이 또 오니까".
"갈대의 이삭, 삼백초, 겨울안개"라는 제목의 3편의 단편이 한권에 묶여 있으며 3편 모두 짧은 단편이기는 하지만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게다가 약간의 "여운"까지 남겨줌으로 인해 "감동과 눈물"을 전해주는 굉장히 "슬픈"이야기들입니다. 단편마다의 상관관계는 없으며 각각의 단편이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됩니다.
[단편 첫번째, 갈대의 이삭]
"아라타 스즈, 스무살. 사랑에 빠졌습니다."
방학을 맞이하여 동네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된 "아라타 스즈". 어느날 우연히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펑크가 나는데 그때 그녀를 도와준 청년은 다름아닌 길 건너편 "바이크 숍"에서 일하는 "코우". 깔끔하고 매너있게 생긴 얼굴에 훨친한 키까지... 그녀는 "코우"를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하고, 어떻게 하면 그와 가까워질수 있을까 하루종일 고민하는 첫사랑에 빠진 소녀가 되어버린다. 그런 그녀가 "빵집"에서 직접 만든 "과자"를 그에게 선물하면서 가까워지려고 시도하는데 그런 그녀의 마음과는 달리 차갑게 답변하는 "코우".
"저는 과자를 먹지 않습니다."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갑고 냉정하게 자신을 대하는 "코우"의 모습에 그녀는 순간 깜짝놀라긴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듯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포기하기는 커녕 더욱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 우연히 "코우"와 이야기를 나눌수 있게 된 "아라카 스즈"는 그에게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자신의 소망을 서슴없이 얘기하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돌아온 말은 또다시 너무나 얼음같은 한마디.
"시시하지 않아요. 스즈씨 다워요. 하지만 나는..........가족을 만들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눈에 띄는 진전없이 가슴앓이만 하는 "아라카 스즈"는 동네에 돌고 있는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되고 그 소문의 중심에 자신이 좋아하는 "코우"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 "슬픈"이야기를 듣고 나서 더욱더 "코우"를 좋아하게 된 "아라카 스즈". 결국 "코우"는 동네사람들의 손가락질때문에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코우"가 마을을 떠나기직전 "아라카 스즈"는 쌓아두었던 자신의 마음을 "코우"에게 전달하면서 막을 내린다.
"그의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 오지 않는다. 그가 걸어갈 길이 그저 평온하기를.....기도합니다...."
[단편 두번째, 삼백초]
"어른아이란....어른이란 뭘까? 책임이란 뭘까?"
염원하던 카메라맨 사무실에 입사하게 된 "코즈카 리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뜨거운 정열만으로 성공할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공허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을 무척이나 괴로워 하기 시작한다. 그녀에게는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으며 결여된 것을 찾을수 있는 사물도 없었다. 그녀는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의 사진기로 "찍고" 싶은 것이 없는, 찍을 것이 없는 카메라맨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한 전시장에서 눈을 의심할정도로 아름다운 체형과 모습을 지닌 여성모델을 발견하고는 그 모델을 쫒아 가는데.....
"아름다운 옆얼굴과 아름다운 체형에 숨을 멈춘다. 자...잠깐....너..... 같은 맨션에 살고 있는 케이고니?"
그 모델은 다름아닌 2년전부터 매일아침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던 "케이고"라는 남자 고등학생. 깜짝놀란 "코즈카 리오"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느꼈던 사진에 대한 열정과 감성을 참지 못하고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인 "케이고"와 거래를 한다. 그 거래란 시간이 날때마다 몰래몰래 "여장"을 하도록 "케이고"를 도와주고 그 모습을 자신의 사진기에 담아놓자는 것. 둘 모두에게는 적절한 거래였다.
"찌..찍고 싶어. 작품으로 출품하고 싶어. 너무 아름다워. 내 사진만으로 남겨 놓기에는..."
그렇게 둘만의 비밀은 1년이 넘도록 지속이 되고 어느날 "코즈카 리오"는 어른으로서 미성년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게 된다. 서로 좋아하는....아니,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케이고"의 부모님이 이사실을 알게되고 결국 그들의 비밀과 행복은 더이상 유지할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그런 "코즈카 리오"는 형용할 수 없는 죄책감에 몸부림치는데...
"멈춰줘. 제발...누군가가 나를 멈춰줘. 멈추는 것으로는 안돼. 끝내야 해. 케이고에 못된 짓을 했어. 난....어른이 아닌걸까?"
[단편 세번째, 겨울안개]
"짙고 짙은 어둠속. 우리는 이 어둠밖에 모른다. 누군가 분명히.....열어 줄거야..."
쌍둥이 남매인 치카와 리카. 이 아이들은 태어나자 마자 부모님의 학대속에서 출생신고도 안된채 지금껏 햇빛이 내리쬐는 집밖으로 단 한번도 나가보지 못한 불행한 아이들이다. 어린나이에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치카와 리카"에게 어느날 낯선손길을 내미는 남자가 나타났고 남매는 그 남자의 손을 잡고 집밖으로 나서게 된다. 남자의 이름은 "쿄이치". 왜 "쿄이치"는 이 남매의 손을 잡고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아저씨가 아니야. 형이나 오빠라고 불러라."
그렇게 시작된 셋만의 여행. 때로는 형이라고 때로는 오빠라고 때로는 아빠라고 불리며 "쿄이치"는 두 남매를 정성스럽게 보호하며 전국방방곡곡을 누빈다. 마치 누군가에 도망치듯이 하루하루를 불안속에서 지내는 "쿄이치"에게 "치카와 리카"남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의지"할수 있는 존재였다.
"형아는 가끔 무서운 얼굴을 한다. 형아는 천사날개를 갖고 있어서 누군가에게 잡히면 죽는걸까? 그래서 도망다니는 걸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들에게 따뜻함과 사랑을 선물해 주고 있는 "쿄이치"는 "치카와 리카"에게 형아였다. 오빠였다. 아빠였다. 그렇게 그들에게 행복한 여행이 계속되는가 싶더니 어느날 "쿄이치"는 "치카와 리카"를 앞에서 길가 한복판에 쓰러지고 만다. 결국 "쿄이치"는 병원으로 실려가게 되고 "의사"는 "쿄이치"의 정체를 의심하게 된다. 할 수 없이 "쿄이치"는 자신의 과거와 죄를 "의사"에게 모두 털어놓는 대신에 "치카와 리카"를 "의사"에게 부탁하고 혼자서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너희는...................나처럼 되지마라....치카...리카...."
▶ 치무아 포트
인간과 다른자. 그것을 "치무아"라고 부른다. "치무아"의 존재는 인간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다. "치무아"들이 인간들에게 딱히 해를 끼치거나 피해를 입히는 것도 아닌데 "인간"들은 자신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조그맣고 연약한 존재인 "치무아"를 괴롭히고 때리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 이런 "인간"들의 모습과는 달리 "인간"과 친해지고 "인간"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치무아"들은 아무런 힘도 없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수밖에 없고 세계각지에 살고 있는 "치무아"들은 언제 "인간"이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수밖에 없는 것이다.
"치무아는 인간보다 연약한 존재이지만 한가지씩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불행중 다행일까? 단 한명이라도 "인간"이 자신을 돌봐주고 친구로 인정해준다면 적어도 "인간"들의 손에 잔인하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은 없다. 그렇게 "특정한"인간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목숨을 부지할수 있는 "치무아". 이것이 바로 인간과는 다른존재인 "치무아"들의 기구한 운명이다.
"인간에게 언제나 무시와 괄시를 당하는 치무아."
"자자마을"에 살고 있는 한마리의 "치무아". 그 "치무아"의 이름은 "포트". 그래서 "치무아 포트". 이 "치무아 포트"에게는 친구가 있다. "자자마을"의 유명한 인간전사인 "쟈바우"가 바로 그 친구인데 유일하게 "자자마을"에서 "치무아 포트"와 친하게 지내는 인간이다. 하지만 마을에 돌아와도 얼마안되어서 계속해서 전쟁터로 향하게 되는 "쟈바우"이기 때문에 "치무아 포트"는 "쟈바우"대신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돌봐주며 "쟈바우"가 전쟁터에서 돌아오기를 매번 기다릴수밖에 없다.
"치무아 포트에게 쟈바우는 유일한 친구"
"인간"들에게 끊임없는 괴롬힘과 무시, 괄시를 당하는 "치무아"라는 존재는 도대체 어디에서 태어난 존재일까? 그들이 진정 원하는 "인간"과의 소통과 행복은 언제쯤 이루어낼 수 있을까? "치무아 포트"의 유일한 친구인 "쟈바우"는 항상 죽음의 유혹이 함께 하는 전쟁터에서 매번 무사히 살아 돌아올수 있을까? 너무나 아름다워서 숨이막혀 버릴정도의 슬픈 동화이야기인 "치무아 포트"는 어쩌면 이기적이고 자기자신만 아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내면속에서 태어난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간들의 이기적인 시선이 없어지지 않는한 치무아들은 언제나 눈물속에서 살아갈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다른 단편만화책인 "아침이 또 오니까"와 같이 3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치무아 포트"이기는 하지만 "아침이 또 오니까"와 다른점은 "치무아 포트"와 "쟈바우"라는 인물을 3편의 단편속에 모두 출연시킨다는 점이다. 결국에 이 단편만화책은 "치무아 포트"와 "쟈바우"의 사랑과 우정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을 수도 있지만 "치무아"라는 인간과 다른 존재가 자신들의 "존재의미"를 찾는 내용의 이야기가 주제라고 말 할수 있다.
"치무아 포트는 유일한 인간친구인 쟈바우를 위해서 항상 소원의 구슬을 문지른다. 구슬이 잘못해서 깨진다면 그 염원을 담은 대상도 없어지고 말기 때문에 치무아포트는 언제나 정성스럽게 쓰다듬는 것이 하루일과중의 하나이다."
가상의 공간속에 살아가는 "치무아". 만화책을 읽는 독자들은 "아이~ 귀여워~"라고 할수도 있지만 만화책속 세상에서는 차별받고 괴롬힘 당하는 존재가 바로 "치무아". 우리들도 실제 인간생활속에서 "아이~ 귀여워~"라고 얘기는 하면서도 나와는 관계 없는 사람이나 존재라고 어떤 대상을 괴롭히거나 무시하거나 괄시하지는 않고 있을까? 만화속의 "치무아"는 어쩌면 만화속에만 존재하는 "치무아"가 아닐런지도 모른다.
"치무아는 인간들과 잘 지내고 싶을 뿐인데....."
▶ "죄"를 테마로 한 두권의 동화같은 단편만화책
"아침이 또 오니까"와 "치무아 포트"는 만화책의 띠지에도 적혀있다시피 "죄"를 테마로 한 단편만화입니다. 그렇지만 이 두권의 만화책은 "MARIMO RAGAWA"의 여느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아름답고, 동화같으며, 감동적입니다. "죄"와 "감동", "죄"와 "동화", "죄"와 "아름다움"은 얼핏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결국 "죄"가 있기 때문에 이 만화책속에는 "따뜻함"과 "눈물"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슬픈 이야기이기도 한 이 두권의 단편만화책. "나는 배드엔딩이나 새드엔딩은 너무 슬퍼서 싫다."라고 하는 분들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MARIMO RAGAWA"는 아무리 슬픈이야기이더라도 "배드엔딩, 새드엔딩"으로 만화의 끝을 맺지는 않으니까요. 그게 바로 필자가 "MARIMO RAGAWA"의 작품들을 좋아하고 그가 더 많은 만화를 그려주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