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시요일
강성은 외 지음, 시요일 엮음 / 미디어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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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의 난해함은 이제 그 의도마저 의심케 한다는 것이 대중의 통념이 되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작위적인 비유와 상징은 마치 그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는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처럼 보일 때가 있다. 더욱 나아가 그것이 작가의 시적 재능의 한계와 성실의 부족이 만들어 낸 타협의 산물과 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결국 그 난해함은 문학을 대하는 우리의 호흡을 짧게 만들었다. 거친 호흡은 문학으로부터의 도피를 부르거나, 맥락이 소거된 문학 소비로 이어지곤 했다.

물론 2000년대 이후 현대시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난해함과 모호성의 조류를 마냥 문학 대중화의 적으로 치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삼십년 전 극복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난해시의 대두는 전통 서정 양식의 해체와 탈근대에 대한 시도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계몽과 통합의 시녀로만 존재했던 문학을 오롯이 돌려 놓는 데 기여했을 수도 있다. 더 이상 명쾌한 적대의 대상이 사라진 민주화의 유산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 독자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옅어졌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분명 대중은 난해함으로부터 도피했으나, 그 빈틈을 새로운 형식의 문장들이 메웠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지금도 그러한 새로운 시도는 소셜 미디어와 같은 변방에서 솟아 오르고 있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베스트 앨범이다. 주류 문예와 새로운 시도의 경계에서, 대중적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비교적 어렵지 않은 시들이 담겼다. 다양한 문인들의 작품이 고루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큐레이션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패스티시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문인의 일관된 정서와 문체를 소거하고, 때로는 한 작품 내에서도 특정 문장만을 도려내었다는 점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처음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를 손에 쥐게 되었을 때는 그런 감상이 먼저 들었다. 페이지의 왼편에는 작품을 조각 낸 문장이 들러 붙어 있었고, 책을 읽으며 작가가 바뀔 때마다 호흡은 짧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까지 책을 읽어 내려가며, 그것이 이 책을 깎아내릴 준거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삼키기에 어렵지 않은 시를 모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현대시로부터 멀어진 대중 독자들의 관심을 환기하고, 더 잦은 문학과의 마찰을 기대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자신의 삶과 깊게 조응하는 문인과 만날 수 있는 폭 넓은 자장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책을 읽은 후에 만날 또 다른 책을 상상하게 한다.

현대시의 난해함과 모호성에 지레 겁을 먹고 책을 덮어버렸던 나와 같은 대중 독자들에게는 기성의 시집은 멀게만 느껴질 수 있다. 어려운 문제에서는 친절한 선생님이 필요하다. 부디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가 현대시의 난해함이라는 대중 독자들의 통념에 균열을 일으키는 친절한 입론서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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