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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전쟁 - 진흙탕 선거의 전략과 기술
데이비드 마크 지음, 양원보.박찬현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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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가 네거티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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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전쟁 - 진흙탕 선거의 전략과 기술
데이비드 마크 지음, 양원보.박찬현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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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데이비드 마크의 <네거티브 전쟁>

 [프레시안 최재천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네거티브 캠페인은 예술일까, 진흙탕일까

1996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하원의원 선거 때의 일이다. 공화당 출신 연방하원의원 프레드 헤인먼은 기자에게 "의원 세비와 이전 직장이었던 경찰 퇴직연금 등을 합해 연간 소득이 18만 달러가 조금 넘게 돼 이제서야 '중산층'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사려 깊지 못한 발언이었다. 이 발언은 2년 전 선거에서 공화당 바람 때문에 아깝게 패배해 듀크대 정치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던 민주당의 베테랑 전직 의원인 데이비드 프라이스의 컴백을 불러 왔다. 프라이스는 지역구 전체를 "여기는 지구다. 오버" 광고로 뒤덮어 버렸다. 광고는 행성과 별, 우주선을 배경 화면으로 관제센터와 나레이터 간 조롱 섞인 대화로 구성했다.

나레이터가 "헤인먼은 연간 18만 달러에 달하는 수입 때문에 중산층이 됐다고 불평하고 있다"고 말하자 관제센터는 "프레드, 이제 그만 귀환하라"고 응답했다. 중산층의 현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 헤인먼 의원을 외계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결과는 프라이스의 승리였다. <네거티브 전쟁>에 나오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이다.

여의도는 싸움판이고, 선거판은 진흙탕이다. 최소한 책 제목만으론 그렇다. <네거티브 전쟁-진흙탕 선거의 전략과 기술>(데이비드 마크 지음, 양원보·박찬현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원 저자는 워싱턴 DC의 유명한 온라인 정치 저널 <폴리티코>의 선임 에디터인 데이비드 마크다. 영문 원제는 'Going Dirty : The Art of Negative Campaigning'. 미묘한 차이가 느껴 질 것이다.

선거가 존재하는 한 네거티브 캠페인은 동반한다. "미국 정치 역사는 일부 네거티브 기법의 소멸 속에서도 상당수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며 존재하고 있다." 선거전에서 사라지지 않을 한 가지 요소는 네거티브 공격의 기밀함이다. 더구나 네거티브 캠페인은 "이제 선거가 끝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다.

영구적 네거티브 캠페인의 시대


▲ <네거티브 전쟁>(데이비드 마크 지음, 양원보·박찬현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프레시안

시드니 블루멘셜은 1982년 펴낸 그의 책 <상시(常時)적 선거전(The Permanent Campaign)>에서 선거운동과 통치 행위는 거의 절대적으로 상호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조차도 소수당이던 공화당에 의해 1980년 중반부터 입법 공간 자체가 정치적 격전장으로 비화됐다. CNN 정치 평론가 빌 슈나이더는 이같은 상시적 선거전을 '상시적인 네거티브 선거전(The Permanent Negative Campaign)'으로 명명했다. (그간 대부분의 우리나라 번역은 '상시적'을 '영구적'이라는 말로 사용해 왔다. 이 책은 부분에 따라 '항시적'이라는 말까지 혼용한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중 미국기업협회의 노먼 J 오른슈타인과 브루킹스연구소의 토머스 E 만은 2000년 <영구적 캠페인과 그 미래(The Permanent Campaign and Its Future)>를 펴냈다. 1976년 지미 카터의 보좌관 펫 카텔이 처음 사용할 때만 하더라도 영구적 캠페인은 '행정부와 그 정책들에 대한 일반 대중의 지지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서의 통치 과정'을 의미했다. 그랬던 것이 <영구적 캠페인과 그 미래>의 1장에서 정치학 교수 휴 헤클로가 설명하듯, 2000년 들어서는 "통치 그 자체로서 대중의 지지기반을 교묘히 조작하기 위해 애쓰는 끊임없는 과정"이 되고 말았다.(<거짓말 정부>, 스콧 매클렐런 지음, 김원옥 옮김, 엘도라도 펴냄)

그래서 부시 행정부의 전 백악관 대변인 스콧 매클렐런은 영구적 캠페인이란 "오늘날의 정치 리더들이 통치를 위한 최우선 수단으로 대중의 지지 기반을 형성하고 겸허히 조작하기 위해 1년 내내 벌이는 정치 활동"이다라고까지 정의한다.

네거티브 캠페인과 영구적 캠페인이 매일 만난다. 미국을 예로 들자면 정치 자금 모금과 여론조사, 후보자 포지셔닝 추적은 당파적 경쟁 시대에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이다. 저자는 "네거티브 캠페인의 최종 승자는 정치 용어와 언어를 가장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쪽이 될 공산이 크다"라고 했다.

우리식 예를 들자면 이른바 '세금 폭탄론'이 될 것이다. 언어를 통해 진보주의자들이 어떻게 정치적 논쟁의 프레임을 이끌어가야 될 지에 대해선 조지 레이코프의 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도 충분히 소개돼 있다. 다만 최근 주목할 만한 사실은 뉴라이트 일각에서조차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 민주당은 1994년경부터 '자유주의적(Liberal)'이란 표현을 삼가고 대신 '진보적(Progress)'이란 표현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

네거티브 선거는 불법인가

역자들도 서문에서 지적했듯 우리 공직선거법 제58조는 "선거운동이라 함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라고 했다. 합법적 선거운동의 개념 속에 네거티브가 포함되어 있다는 증거다. 물론 이때의 네거티브는 불법적이고 부정적 방식이 아닌 정치적 의견 개진과 의사표시와 통상적인 정치 활동의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 법의 취지와는 달리 우리 사회에서 네거티브는 부정적이고 불법적인 선거운동의 대표적인 형식으로 규정된다. 그래서 검증과 네거티브가 혼용된다.

소수파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는 검증이라 인정되기도 하고, 다수파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는 부정적인 정치 형태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론 검증이 네거티브로, 때론 네거티브가 검증으로 혼동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정작 필요한 검증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시민사회와 언론과 선거관리위원회와 법원이 중심을 잡아줄 법도 하건만 아쉬운 형편이다. 뒤늦은 후회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다수득표와 다수당의 권력이 절대화되는 때다. 물론 우리 법원은 검증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있다.

"공직선거에 있어서 후보자를 검증하는 것은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이므로 후보자의 공직 적격성을 의심케 하는 사정이 있는 경우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쉽게 봉쇄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후보자에 관한 의혹 제기가 진실인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근거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경우에는 비록 사후에 그 의혹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하여 이를 벌할 수 없다" .(대법원 2007. 7. 13. 선고 2007도2879 판결)

선거운동의 교과서, 네거티브 캠페인의 역사서

이 책의 미덕은 이렇다.

첫째, 네거티브 전쟁의 교과서자 사례집이다. 미국 저술 작업의 특징이 여실히 드러난 책이다. 미국의 역사, 선거, 헌법, 정책을 중심으로 반드시 구체적 사례와 근거가 제시된다. 역시나 이 책도 이러한 미국 저술 작업의 장점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둘째, 하원의원, 상원의원, 각종 경선,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건국 초기부터 2006년 중간선거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역사적 맥락과 흐름과 정치과정으로서의 네거티브 선거 사례가 제시된다. 이 책을 읽어가는 일은 곧 미국 헌법 책을 읽는 일이요, 미국 정치사를 이해하는 일이다. 미국 역사를 읽어가는 일이다. 그래서 때론 너무 많은 등장인물과 시대와 역사가 버거울 때는 있다.

셋째는 대단히 흥미로운 미국 정치사라는 점이다.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링컨은 '일리노이 원숭이'로 불릴 정도로 못생긴 외모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19세기 네거티브 선거의 가장 충성스러운 하수인 중 하나는 바로 신문이었다. 당시 신문은 대단히 정파적인 찌라시였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선거란 18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때쯤 비로소 후보가 연단에 서기 시작했다. 189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자가 최초로 지역 유세를 시작했다.

1940년대와 50년대에 걸쳐 미국 사회에서도 색깔론의 광풍이 몰아 닥친다. 물론 우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여론조사가 선거전에 도입되고 악용되기도 한다. 네거티브 캠페인 도구로서의 반공산주의는 1962년을 고비로 멀어져 간다. 닉슨의 경우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더 이상 그러한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국가안보가 미국사회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면서 "공포의 정치"가 시작된다. 때론 변형된 네거티브의 모습으로 재등장한다. 1964년 대선에서는 '사이비 과학 수준의 정신과 의사 여론조사'를 통해 전체 응답자의 3분의 2가 골드 워터 후보가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보내 여론을 조작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론이 공론을 리드해 간다. 여론조사의 민주성에 대해 역사가 던져주는 교훈 중 하나이다.

넷째,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여러 형태를 제시하기도 한다. '포지티브한 네거티브 광고'가 있다. 빌 클린턴의 재선 때 일이다. 토론회에서 사회자는 클린턴에게 상대방인 돌 후보(당시 72세)의 나이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는 지나치게 고령이 아닌지 물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그의 낡은 사고체계입니다." 1997년 선거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나이와 건강을 둘러싼 부끄러웠던 논쟁과 한번 비교해 볼 일이다.

다섯째, 시대의 변화는 네거티브 캠페인도 동시에 진화시킨다. TV 광고에서 직접 우편의 형식을 통한 맞춤형 메시지로 변환된다. 이를 두고 '소총 광고'라고 표현했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했다. 당연히 활용 대상이다. 네거티브 자체가 곧 선거운동이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 도구의 변화는 곧바로 응용된다. 온라인 전용광고도 활용된다. 블로그가 사용되는 건 물론이다. 라디오 토크쇼, 저술 작업, TV, 영화 등을 통한 네거티브 캠페인의 변용에 대해서도 이 책은 구체적 사례 중심으로 제시한다.

이 책의 저술 시점인 2006년을 기준으로 새로운 기법이 선보였다. 상대 후보에 대한 인터넷 검색시 부정적인 뉴스가 쏟아져 나오게 하는 '구글 폭탄'이 그것이다. 검색 엔진의 알고리즘이 갖는 맹점을 이용해서 부정적인 기사들이 검색 결과 상위에 등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기술의 진화만큼이나 네거티브 캠페인도 진화하는 것이다. 물론 신기술의 진화에 대한 적응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 미국이나 홍보 비용이 갖는 불평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돈 안 쓰는 선거를 강화하기 위해 정치 자금에 대한 제한은 철저화됐다. 하지만 개인 재산을 사용하는 것은 무제한이다. 네거티브건 포지티브건 정보를 알리는 방식과 비용에서 불평등이 비롯될 때 발생하는 불공정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이 책은 말하고 있지 않다. 사실관계의 나열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지극히 무채색인 측면은 있다. 언론인 특유의 무당파성이다.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미래와 우리는

저자는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순기능을 얘기한다. 포지티브 광고는 후보의 진짜 핵심 정보를 생략할 수 있기 때문에 자칫 유권자의 오판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거티브가 흥분과 열정을 통해 공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보자들이 공론화하기 꺼리는 정보가 그들이 내세우고 싶어하는 정보만큼이나 중요한 경우가 보통이라는 점도 중요한 논거다. 유권자들은 표를 던지기 전에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권자의 자기결정을 강조한다. 네거티브에 대한 후보자들의 반응 또한 공직 수행의 적격성을 평가하는 척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 미국 대선 때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지지를 선언하면서 기나긴 선거 기간 중 보여준 오바마의 태도와 대응 능력을 들기도 했다. 유사한 맥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네거티브는 진흙탕 싸움에 불과하다. 정치는 싸움질이고, 가장 추악하고 가장 이기적인 직업으로 인정받는 우리 선거에서도 네거티브는 유용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후보들이 선명하고 뚜렷한 정체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스스로와 상대 후보 간 차이점을 분명히 할 때 궁극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유권자"라고 선언한다.

이미 우리 선거에서도 네거티브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치컨설턴트가 있다. 민컨설팅의 박성민은 '대중은 반대하러 투표장에 간다'고 했다. 그래서 집단적 편가르기가 유효하다는 것이다. 상대 후보에 대한 반대표를 모으는 게임이 선거이기 때문에 반대를 결집시키는 운동으로서의 네거티브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미래 지향적 투표 행태가 아니라, 과거 회고적 혹은 응징적 투표 행태가 두드러지고 특유의 바람에 따라 시계추 효과가 강한 정치 현실도 충분히 비교되어야 할 것이다. 비슷한 맥락이지만 또 다른 의문을 던져두어야 한다.

버나드 마넹은 자신의 기념비적 저서 <선거는 민주적인가>(곽준혁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에서 유권자들은 정당이나 정강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사람에게 투표한다고 했다. 다만 후보자의 개성 이외에도 선거에서의 선택 항목에 따라 투표 행태가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점은 인정한다. 이런 논리를 차용한다면 인물과 정책에 대한 네거티브는 여전히 유효한 수단이다. 하지만 선거가 인물론을 벗어나 철저히 그저 새로움과 그저 중간 심판만이 강조되는 경우에는 또 어떻게 될까.

미래의 선거 전략에서는 인물론이나 정책적 선택이 아니라 현 정부의 행정 능력에 대한 중간 심판적 성격을 띠일 것이라는 것이 버펄로 주립대학 제임스 캠벨 교수의 연구 결과다. 그러므로 미래의 선거 전략에서는 인물이 현재보다 중요하지 않고, 늘 새로운 후보가 부상할 것이라는 것이다. 역시나 한국적 현실에서 고민해 보자는 얘기다. 미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적 현실을 접목시키는 좋은 연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책의 번역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구석도 있다. 지난 대선 시절 <중앙일보> 워싱턴특파원으로 일하는 김정욱이 <네거티브, 그 치명적 유혹>(플래닛미디어 펴냄)을 번역 출간한 일이 있다. 그 책은 네거티브 캠페인을 1위부터 25위로 나누어 흥미로운 게임으로 묘사했다. 그 책의 사례는 대부분 이 책의 사례와 겹친다.

이 책을 번역한 양원보도 세계일보 정당팀에서 일하는 정치부 기자다. 왜 하필 기자들이 네거티브 캠페인에 대한 책을 번역했을까. 물론 일반화의 오류임은 잘 안다. 그럼에도 굳이 고민하자면 현장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정치의 양지와 음지를 모두 경험한 데서 오는 직업적 본능과 현장성 때문일께다. 그럼에도 아침 일찍 출근해 하루 내내 취재원에 시달리고, 밤이면 폭탄주에 온 몸을 적시는 대한민국 정치부 기자(일본의 마루야마 마사오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정계부 기자)에게 언제 이런 책을 번역할 공부와 내공과 시간이 주어졌을까. 그래서 새삼 이 책을 진지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한편, 고맙게 읽어야만 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090814182857&section=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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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홍 교수의 미래학 산책
황주홍 지음 / 조선일보사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미래에 대해 안다는 것은 모든 이들의 꿈일 것이다. 고대부터 무당과 점술이 유행했고, 지금까지 이러한 유행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과학시대인 지금 무당의 점꽤와 점술은 터부시되기 마련이다. 그런점에서 우리가 흔히 미래학자들이라 명명하는 사람들은 과학적인 데이타를 기반하거나 설득력있는 논거를 제시해야 한다. 물론, 그것이 미래에 나타나는 현상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점에서 헌팅턴이나 폴케네디, 토플러, 드러커, 다니엘 벨, 후쿠야마 등은 이러한 요건들을 충족시키는 대 학자들이다.

이들은 미래를 읽는 혜안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다양한 대안들을 쏟아낸다. 우리는 이러한 대안들을 읽어내고,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미래가 누구의 편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가 미래의 편인가라는 점이다.'라는 말처럼 우리가 미래의 편이 되기 위해선 이러한 혜안을 가진 사람들의 지식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엔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그만큼 읽을 사람도 책도 많다. 그런점에서 요약서란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요약서의 요류들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 바이지만, 이 책은 그럴 필요가 없을만큼 체계적으로 잘 정리가 되어 있다. 게다가 한국사회에 주는 암시적, 직접적 함의들은 보너스로 생각해도 좋을만큼 미래학자들을 잘 읽어내고 있다.

새천년이 시작된지 2년이 지나간다. 그러나 지금의 2년은 과거 2년보다 더 빠르고 중요하다. 앞으로의 2년은 지금의 2년보다 더욱 그럴 것이다. 세상은 그만큼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이 책은 훌륭한 답을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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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새로 보기
신복룡 지음 / 풀빛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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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저자의 수업을 들었던 사람이다. 저자는 수업시간에도 틈틈히(이책출판전) 책속에 수록된 내용들에 관해서 강의하곤 했었다. 정말 수업을 들을때마다 많은 학생들이 놀라움의 눈으로 저자를 바라보곤 했었다. 그만큼 그의 강의는 충격적이었고, 신선했다. 이제 그 틈틈히 하곤했던 강의들이 한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난 출간되자마자 책을 구입했고 그날로 다 읽어버렸다. 수업시간에 한번씩은 다 들은 내용이고 신문지상에서 한번씩 더 보았던 내용이며, 책또한 그리 어렵지 않게 씌여졌기에 읽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책을보면 볼수록 식민지잔재 청산이라는 구호를 말로만 외치고 있진 않은가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리가 외어야 했고 외었던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다 거짓이고 왜곡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마다 괴롭다. 역사학자들은 다들 무슨생각으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분노와 이들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역사속의 피해자들에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이 책을 통해서 공부한 후학들에 의해 이 땅에 진실로 가득찬 역사서가 새로이 많이 등장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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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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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광장>에 등장하는 단어 중 핵심적인 두 개가 있다. 바로 '광장'과 '밀실'의 개념이다. 브리태니커에 따르면, 광장이란 개방된 장소에 사람들이 한데 모이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이며, 밀실이란 남이 드나들 수 없게 하고 몰래 쓰는 방을 말한다. 그렇다면, 소설 <광장>에 나오는 광장과 밀실은 어떤 함의를 담고 있을까?

광장에 대한 최인훈의 아니 이명준의 발상은 그리스 민주주의 시대를 뜻하는 듯 하다.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광장에 나와 토론하는걸 즐겼다. (물론, 노예와 여자는 제외되지만, 이 시대의 노예와 여자는 사람 취급을 못 받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란 표현을 써도 무방할 듯 하다.) 그리스의 광장은 자유토론의 장이었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field가 아니라 forum 내지는 agora 정도가 적당할 듯 싶다.

자신의 의지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이 의지표현을 통해 자신의 길과 사회의 길을 찾아내는, 사람과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고, 자유 비판하는 진정 자유가 있는 곳. 곧 희망과 꿈이 있는 공간이다. 반대로 밀실이란 그 광장과 달리 개인적 공간으로서 광장에서 풀지 못할 비밀이 가득한 마지막 숨을 곳이다.

이명준이 생각한 광장과 밀실은 뚫려 있어야 했다. '개인의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의 속은 편했다. 광장만이 있고 밀실이 없었던 중들과 임금들의 시절에, 세상은 아무 일이 없었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은 시작되었다.'는 그의 말을 보면, 광장과 밀실이 서로 구분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곳 그곳이 진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이는 광장과 밀실은 어떠한가?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는,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어있는 곳 그곳이 아니던가.

이명준은 남쪽에서 광장을 발견하지 못한다. 물론, 그는 밀실 속에서 만족한다. 아니 만족 이라기 보다는 폭군들이 너무 강한 광장에서 싸울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밀실 속으로 숨어드는 삶을 선택하려 한다. 그러나 남쪽에서의 취조경험은, 그에게 남쪽에는 그가 숨는 밀실마저도 없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게 된다. 광장과 밀실이 뚫린 세계가 아니라 어두운 광장이 밀실을 습격하는 세상이 남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광장이 있다는 북을 택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마저 버리고 북으로 향한 그는 그곳에서 광장을 보았을까? 아니다. 북은 잿빛 도시였다. 오히려 남쪽보다 더한 사상적 탄압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도 역시 광장은 없었다. 자아비판을 통한 광장은 그가 꿈꾸던 광장이 아니었다. 그곳에서도 과장을 발견하지 못한 그는 밀실을 찾게된다. 그곳이 바로 은혜라는 품안이다. 역사는 그를 밀실 속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만들게 되고, 곧 헛된 이데올로기기의 산물인 한국전쟁이 터진다. 전쟁 속에서의 오랜 친구와의 얄궃은 상봉, 은혜의 죽음, 이후의 포로생활을 겪으며 그는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선택을 가장 간단히 해버린다. '중립국 행'

그가 선택한 중립국 행 그는 세상 어디에도 유토피아인 광장이 있는 곳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밀실을 찾아 떠난다. 일부가 말하는 비겁한 선택 -중립국 행- 지식인이 한 체제 속에서 체제변혁을 시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의 울림 속에서 선택한 중립국 행, 이것이 그가 선택한 최후의 밀실이었던 것이다. '광장에서 졌을 때 사람은 동굴로 물러가는 것.' 이라는 그의 짧은 한마디 독백이 그의 심정을 잘 표현해준다.

이 책을 통해 난 과연 광장에 서 있는가 아니면, 밀실에 서 있는가란 자문을 많이 해 보았다. 아직 세상에 대한 연륜이 적은 탓일까? 아니면, 광장과 밀실을 구분하지 못할만큼 세상이 혼란한 것일까? 정말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정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었지만, 이 책을 통해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고민한다면 정말 뜻깊으리라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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