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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청년 논객 한윤형의 잉여 탐구생활
한윤형 지음 / 어크로스 / 2013년 4월
평점 :
1.한윤형의 신작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사실 주제의 선명도나 응집도가 좋은 책이라 하기는 어렵다. 그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여기 실린 글들은 대부분 여기저기서 그가 써 왔던 글들을 하나로 엮은 글들인데, 그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와 그가 평소 공적 지면에서 하던 공적인 이야기가 다소 헐겁게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헐거운 느낌이 강한 부분은 1부인데, 대부분의 글이 흐름이 짧으면서도 오히려 뒤에 이어지는 2부/3부보다도 폭넓은 이야기를 다루는 터라 글 자체부터가 '가벼운' 건 당연하겟다. 글의 논조 또한 몇몇 꼭지는 주간신문에 올라오는 사회칼럼의 초안문에 가깝다가도, 다른 꼭지들은 그 지면에 같이 올라오는 에세이들에서 '감성' 성분을 적당히 뺀 듯한 느낌이었다. 몇몇 글들의 경우에는 원래 몇 개의 개별적인 글이었던 게 하나로 합쳐진 게 아닌가 싶은 부분도 있었고.
2.하지만, 그런 만큼 가장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부분 또한 1부였는데, 이는 내가 그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을 책벌레로 보내고 고딩 때에는 스타리그에 열광하던 나름의 공통 기억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 제일 클 것이다. 요새야 책을 그리 열성적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한때 나도 학창 시절 책을 제법 보면서 자의식만 오지게 커졌다가-한윤형이 여기에 대해 중2병이라는, 아주 간결하게 그 자의식 과잉을 꼬집는 단어를 안 쓴 게 조금 아쉽다-내가 생각 외로 내가 경멸하던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으며 우울해했고, 그만큼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니라 전문적인 정치평론 같은 건 엄두도 안 냈으나 나름 현실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그가 맞닿았던 것과 같은 벽에 부딛혀 왔다. 그와 비슷한 시점에 늦깎이로 스타리그의 팬이 되었고, 스타리그의 중흥기에서 황혼기까지를 같이 봐 오면서 선수들이 만들어 낸 명경기들 하나하나에 환호하는 모습은 약간의 디테일 차이는 있겠으나 나의 모습과도 겹쳤다.
여기에서 그쳤다면 한윤형의 이야기인 1부는 '책 좋아하고 스타리그 보는' 마이너한 취향의 청춘의 이야기에서 끝났을 것이다. 다행히도, 한윤형의 글은 이러한 '마이너한' 삶의 경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의, 그리고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들 대부분이 보편적인 기억이나 삶의 경험이 많지 않음을 잘 알고 있고, 그 점을 선선히 인정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러면서 조금씩 그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혹은 짧은 칼럼에 가까운 꼭지들을 통해, 지금 남한 청춘의, 아니 남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 나갈(그리고 독자들도 같이 남한 사회를 고민하게 만들) 준비를 하는 것이다.
1부의 가치가 이러한 '워밍업'에만 있다고 한다면, 이 책은 몇몇 언론들이 한윤형(과 몇몇 젊은 필자들)에게 부여한 "20대 논객"스러운 책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1부의 많은 꼭지들은 그러한 워밍업과는 크게 상관이 없으면서도, 나름의 가치를 갖는 부분이 있다. 가령 학창시절 그가 자신의 취미생활-독서-을 부모의 간섭에서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인 [문어체 소년의 취미]는, 다소 종목은 다를지언정 취미를 갖고 그 취미를 지키기 위해 부모와 싸워야만 했던 모든 소년소녀들의 기억을 이끌어내고, 삶의 의미에 대해 논하는 아주 정직한 제목의 꼭지인 [의미 부여]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그 부여 방식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도록 유도한다. 이쯤 되니, 얼핏 난삽해 보이는 1부는 짧은 고민거리, 혹은 논제들을 던져 주는 게 애초의 의도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3.2부와 3부는 이제 1부에서 제시한 화두에 대해 고민을 해 본, 혹은 고민할 준비가 된 독자들에게 한윤형의 논지를 본격적으로 풀어내는 장이다. 2부에서는 세대론 떡밥에 대해, 한윤형다운 요약 능력을 통한 세대론 떡밥의 역사와 함께 그 세대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논하고, 3부는 더 나아가서 이 '잉여 세대'가 어떻게 사회에 대응해야 할까를 논하는 장이라고 보면 얼추 맞을 것이다.
난잡하면서도 그 때문에 생기가 있고 독자의 흥미를 이끌기 적당한 구성인 1부에 비해, 2부와 3부는 전통적인 사회 비평서들과 유사한 구성을 보여 준다. 각 꼭지들의 배치는 한윤형의 논지를 부드럽게 전달하고, 독자들도 비슷한 단계에 걸쳐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배려가 돋보이나, 역시 구성 자체로는 다소 평이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1부도 마찬가지지만, 이 책의 핵심 컨텐츠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윤형, 그리고 그가 만들어내는 '남들과 다른데 또 그 다른 사람들과도 다른' 텍스트들이니, 구성이 평이한 점에 대한 아쉬움은 이쯤에서 접도록 하자.
4. 개인적으로 진중권의 최고 능력이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폭로" 하는 것이라면, 한윤형의 최고 능력은 "어떤 사건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깔끔한 요약"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텍스트로 요약하는 능력은 그렇다. 시각적 수단으로 요약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Capcold(김낙호)의 플로우차트와 굽시니스트의 엽기적이기까지 한 오덕 시사만화, 그리고 현 시대 최고의 시사만화가 박순찬 화백이 있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화제가 이상하게 흐를 것을 염려하여 여기까지만.)
2부,3부의 핵심 컨텐츠 또한, 한윤형의 비급 "요약지왕"을 통해 세대론과 그에 얽힌 담론들에 대한 깔끔한 정리이다. 이러한 정리 덕분에 이 책은 다른 책들이 갖지 못한 무기를 손에 넣는데, 즉 '생각하기를 귀찮아하지는 않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그게 잘 안 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세대론 담론이나 그에 얽힌 사회경제적 화두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훌륭한 등대가 되어 준다.
어찌 보면 이 무기는 [청춘]의 독자들에겐 독이 될 수도 있는데, 텍스트의 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검증"을 할 만큼 열성적인 독자가 아닐 경우, 이 책이 제시한 깔끔한 요약만을 받아들이고 이 책이 미처 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그냥 지나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다행히도 1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2부에서도, 3부에서도 한윤형은 자신의 요약 너머에 있는 고민할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심지어 3부의 첫 꼭지인 [소통 없는 시대에 사람들을 설득하는 법]에서는 자신의 키워 경력에서 나온 노하우까지 전수해 준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 꼭지 하나만으로도 [청춘]을 사 볼 가치는 충분하다 하겠다.)
5.물론 이렇게 열심히 읽고 나면, 여러분은 아마 어느 정도의 좌절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한윤형이 책 전반에서 이야기하듯이, 이 책은 화두를 제시하는 책이지 답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며-사실 현실에서 한두 명이 얇은 책 하나로 세상의 문제를 다 해결할 답안을 제시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그 화두 또한 상당히 암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윤형은 '희망'을 아주 버리지는 않는다.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는 않지만, 그의 책은 지금의 방식에 안주하거나 포기하는 대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며, 그 무엇인가가 적어도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할지에 대해 말한다.. 그가 말하는 것이 옳은지를 증명하려면, 아니 우리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다시 불태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그는 여기에서도 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답을 알기 위해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야 할 것이다.
"전혀 다른 세상을 살게 될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더 이상 부모 세대와 선배 세대를 원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생각과 별개로 세상은 움직일 것이고, 결국 그 세상을 살아갈 이들은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청춘을 위한 나라가 없다면, 다른 나라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책무도 결국 이 세대에게 떨어진 것이 아니겟는가. ([청춘], '이 세대에게 남은 것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