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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인간다움을 말하다 - 정의가 사라진 시대, 참된 인간다움을 다시 묻다
송용구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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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인간다움을 말하다>

 

몇 년 전에 지인의 서재를 구경하다가 한 두 시간 남는 시간을 때우려고 문학동네 명작선집(정확히 그 명칭인지는 모르겠지만)을 살펴보다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얇은 책을 꺼내 읽은 적이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모르는 여인의 편지>. 남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단 한 순간 때문에 평생을 남자를 사랑한 여자가 남긴 편지, 가 그 책의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너무 급하게 읽어서인지 원래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인간이어서 그런지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아련함은 기억에 남는다. 전반적으로 남자들의 로망(누군가 나를 지켜봐주고 사랑해 준다는)을 다룬 책 같기도 했지만 사는 동안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따뜻할까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전혀 다른 상황 설정이었지만 츠바이크의 책을 읽는 내내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떠올렸고, 독일인의 감성을 떠올렸고, 그래서 그 감성을 옮기는 독일어 번역가들, 독일문학 학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기억했던 이름이 바로 송용구 번역가였다(사실은 용구라는 이름이 우리 집에도 한 분 있기 때문에 쉽게 기억을 했던 거지만). 굵직한 독일 문학을 옮기는 번역가, 그런 분이 써 나가는 문학 이야기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 궁금증만으로 <인문학, 인간다움을 말하다>를 선택했고, 읽어냈다.

 

결론을 말하자면 순수한 학자의 순수한 책이 아닐까 싶다. 목차와 소제목이 이 책의 특징과 저자의 성격을 대부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1장부터 8장까지의 제목만을 가지고 새로 쓰는 인간다움 8계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목차가 상당히 아름답고 순수한 책이다. 살짝 흥분하면서 읽은 1장을 제외하면 2장부터 7장까지는 정확한 지식과 사람이 갖추어야 할 본성을 잔잔하게 이야기해 나간다. 8장의 지브란을 읽을 때는 몇 십 년 동안이나 잊고 살았던 내 감성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얼마나 아련했는지. 지브란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읽고 또 읽었던 정말 사랑하는 책이었는데, 어느 순간 책도 사라져 버리고 내용도 내 기억에서 사라져 버려 안타까운 작가였다. 하지만 <인문학, 인간다움을 말하다>에서 사랑은 사랑 외엔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며 사랑 외엔 아무 것도 구하지 않는 것. 사랑은 소유하지도 소유 당할 수도 없는 것. 사랑은 다만 사랑으로 족할 뿐이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지브란과 정말로 많이 사랑하고 함께 했던 시간이 있었음을 떠올렸고 마음 한 편이 아련해졌다. 시간이 나면 꼭 다시 <예언자>를 영접하리라!

 

하지만 책 전반에 걸쳐서는 송용구 선생님이 좀 더 까뮈와 같았으면 하는 바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좀 더 반항해 주고 좀 더 도발적이고 좀 더 까칠한 책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너무나도 얌전하고 순수해서 아이들에게 읽어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하기는 하겠지만 좀 더 어려운 나만의 독서 책으로는 그다지 적합한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루한 지식을 소유한 나로서는 모르는 내용이 상당히 많아 도움이 되는 독서였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문학을 제대로 전달해 줄 수 있으면서도 쉽게 쓰는 저자의 잔잔한 문체도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아주 소중한 분을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곧 송용구 저자가 쓴 <인문학 편지>도 읽어봐야겠다.

 

단지 책 표지부터 1장까지는 읽는 내내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정의가 사라진 시대라는 표지 제목을 보면서 정의는 사라지지 않았을 텐데, 그 정의를 누르는 인간의 탐욕은 얼마나 큰 힘을 갖는가를 한참 생각해야 했고, 들어가는 글에서 비인간적인 사건을 유발하는 원인은 가깝게는 우리 사회의 구조와 시스템에서 찾아야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추락한 인간성과 전도된 가치관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적은 글에서는 사람의 본성은 환경과 주변 사람에 의해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래도 사회 구조와 시스템이 더 근본이라고 생각하고 고쳐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송용구 선생님은 1<날개>에서 를 진정한 인간성을 찾아가려는 사람으로 아내를 물질에 호도된 타락한 사람으로 묘사하는데, 그 부분을 읽는 동안 나는 내내 한숨이 나왔다.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르의 가족은 송용구 선생님의 묘사가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 한 여인이 너무나도 즐거워서 몸을 파는 직업을 갖고 있었을 리는 거의 없을 테고(물론 자발적 매춘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며, 매춘의 윤리적 측면을 논할 생각은 전혀 없다) 혼자 몸도 아니고 무능한 지식인 남편을 부양하고 있다면(그 관계는 처음에 분명히 사랑으로 시작했을 텐데), 그런 직업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물질 밖에 모르는 인간으로 매도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상의 시대에는 그럴 수 있었다고 해도 21세기 우리 시대에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갈구했지만 사랑이 아닌 경멸만을 나에게 주는 남편에게 상대방은 필요도 없는 돈을 뻐기듯이 던져 줄 수밖에 없는 여인의 마음도 인간다운 사람이 되려면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날개>를 읽어보지 못했으니 이 남자가 몸을 쓸 수 없고 여자가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충분히 아내도 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는 자신의 인간성을 찾겠다며, 날개가 돋으라고 돈을 버릴 수는 없는 거다. 최소한 아등바등 살아가는 아내에게 돌려줘야 했고, 아내의 짐을 덜어주려고 노력해야 했고, 적어도 사회 제도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면 아내를 경멸할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어는 줘야 했다. 내 마음이 중요한 만큼 아내의 마음도 충분히 배려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긴 글도 이상의 <날개>를 진지하게 읽어본다면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송용구 선생님 덕분에 <날개>, <시지프스의 신화>, <고도를 기다리며>, <예언자>, <인문학 편지>를 독서 목록에 추가했다.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독서야말로 정말로 값진 독서라고 믿는다. <인문학, 인간다움을 말하다>는 그런 의미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무엇보다도 부록이 알차다. 송용구 선생님이 책을 쓰면서 참고한 책 목록도 좋지만 세인트존스 대학교 선정 100권 목록처럼 몇 년에 걸쳐 천천히 읽어나갈 책 목록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 <인문학, 인간다움을 말하다>가 나에게 준 또 다른 선물이었다. 인문학의 시각으로 문학을 바라보고 그 지평을 넓히고 싶은 사람에게는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디자인이 정갈한 책도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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