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방랑
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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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읽어보리라는 마음을 먹었을 때는 언젠가 나도 해보고 싶은 동양 여행을 안내해 줄, 혹은 미리 체험하게 해 줄 책이리라고 생각했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그 묵직한 사진들이 동양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해주리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는 아이고,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1944년생인 사진작가 후지와라 신야가 1980년과 1981년도에 찍고 쓴 글을 읽을 때는 정말로 아이고, 아저씨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정말로 80년대에 30대를 살아간 우리 네 아버지들과 비슷한 감성과 비슷한 정서로 찍고 써 놓은 글들. 2010년대가 끝나가는 무렵에 1980년대의 후지와라 신야보다는 훨씬 더 많은 나이로 살아가는 나이지만 그 아저씨적인, 80년대 젊은이의 감성을 어찌해야 하는 난감함이 들었다.

 

평범한 마초의 눈으로 보는 따뜻한 세상, 이구나, 정도의 느낌? 후지와라 신야를 아는 사람도 열광하는 사람도 적은데 한국에서 모든 작품이 번역되어 나온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고.

 

, 마초라고 했는데, 마초를 언제나 부정적인 의미로 써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마초는 뭔가 수컷의 이미지가 더욱 강렬한 사람을 표현할 때도 쓸 수 있는 말 아닐까?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조르바의 말과 행동은 마초 그 자체이지만 여자를 대하는 마음과 행동은 그 시대 누구보다도 멋진 남자였지 않을까?

 

아마 후지와라 신야도 조금은 순화된 조르바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분명히 후지와라 신야를 영혼의 구루라고 한단다. 나의 구루는 될 수 없겠지만 정말로 누군가의 구루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

 

동양방랑>은 세상을 보는 후지와라 신야의 따뜻한 시선, 특히나 한국을 보는 다정한 시선,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1980년대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글로 담았다. <동양방랑>은 내가 간직할 책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정말로 소중하게 간직해줄 지인이 생각나는 책이다. 그 사람에게 이 책은 정말로 한 송이 붉은 꽃, 마음이 얼어붙을 때 훌쩍 어딘가로 떠나 마음 속 얼음을 녹일 결심을 하게 해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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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양장) 헤르만 헤세 컬렉션 (그책)
헤르만 헤세 지음, 배수아 옮김 / 그책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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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어렵다고? 그것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인데?

모니터에 화면을 띄워 놓고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이거였다. 머릿속이 백지다. 어째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십대 때 삼중당 문고의 <지와 사랑>으로도, 학원 세계 문학 전집으로도 여러 번 읽고 감동하고 행복했던 책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헤세의 작품인데, 이번에도 진한 감동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나가는 것이 버거웠다. 10대의, 20대의, 30대의 고민과는 다른 눈으로 40대의 고민을 하면서 읽어나가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그냥 마구 읽어내려갈 수 있는 문장들이 아니었고, 그저 감동만을 받기에는 지나온 현실들이, 시간들이 왠지 왠지 내 마음을 강하게 짓눌렀다.


어린 시절, 어린 마음에도 나는 완벽한 학자인 나르치스는 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골드문트 같은 예술성을 타고 나지 않은 나이니 골드문트를 닮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지만, 노력하고 노력하면 그래도 니클라우스 스승처럼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오만이 30대 중반 즈음에 깨진 뒤로는 헤세가 추구하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추구하는, 니클라우스 스승이 그나마 성취했던 삶의 단계는 오르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내 인생 반평생이 가 버렸구나 하는 자학이 읽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런 현학적인 깨달음보다는 헤세가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왠지 너무나도 남성적이라 동의하기가 힘들다는 느낌도 들고 지성과 감성의 비율을 아버지와 어머니로 하고 있는 점도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어떤 의미로 아버지가 어머니가 중요한지는 어렴풋이 알겠지만, 부모가 된 뒤로 아이들에게 부모는 넘어서야 하는 벽이자 한계라고 생각하기에, “어머니 없이 어떻게 죽으려고 하나요? 어머니 없이는 사랑도 할 수 없죠. 어머니 없이는 죽지도 못하는 거잖아요.”라는 말 앞에서는 아니야, 아니라고를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독서에 푹 빠지지도 못하고 나의 헤세는 어디로 간 것인지, 나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디에서 헤세를 찾았던 것인지를 고민하고 당혹해 하면서 책을 읽어 나갔다. 그리고 충격을 받으면 읽어나간 네 번째 독서 여정이 끝났다. 나는 아무 것도 얻지 못했고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아무 것도 잃지 않았다. 지난 세 번의 독서가 맹목적인 찬양, 바보 같은 공감이었다면 이제 곧 다시 하게 될 다섯 번째 독서는 어쩌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완전한 반대편에 서서 새로운 의의를 찾으려는 여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골드문트의 결심처럼 나도 불확실하고 어리석은 나 자신만의 길을 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니까.


ps.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공감하고 마음에 새기는 말은 나르치스의 말이다. “내 목표는 오직 한 가지 뿐인데 내가 가장 잘 봉사할 수 있는 자리, 내 성향, 내 개성과 재능이 가장 잘, 가장 훌륭히 작동할 수 있는 토양을 찾은 것이야. 다른 목표는 없어⋯⋯. 내게 가능한 범위에서 내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정신에 봉사하고 있을 뿐이야.”(95쪽) 죽을 때까지, 나도 그러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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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한문 공부 - 문법이 잡히면 고전이 보인다
정춘수 지음 / 부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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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한문 공부>(정춘수 지음, 부키)


한번은 한문 공부라니, 제목 정말 잘 지었다. 생애 한 번은 한문 공부를 해보자는 거지. 그리고 그 말에 불끈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도 정말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 윗세대는 한문을 배우고 한문을 썼던 세대이지만 40대 중반인 우리 세대는 특별히 한문에 신경을 쓰고 제대로 공부한 사람 외에는 한문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사람이 없다(물론 아닐 수도 있다. 내 이야기를 완전히 일반화해서 마구 떠드는 걸수도). 하지만 정말로 우리 세대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한글화 바람이 많이 불었던 때이고 신문에서도 한문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 가는 시대였다. 우리보다 한참 아랫세대들처럼 한문 자격증 시험을 본 것도 아니고, 한문은 스펙으로나 실력으로나 거의 쓸모가 없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한문을 좀 더 잘 알았더라면 책을 읽는 방식도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더 늦기 전에 한문을 조금 공부해 볼까 하는 생각을 조금씩 먹게 되는 것 같다. 나뿐만이 아니라 밖에서 대화를 해보면 많은 우리 세대 친구들이 한문 진짜 어렵다. 조금만 더 진지하게 공부를 해볼 걸 그랬어, 하는 말을 한다. 하지만 막상 공부를 하려고 해도 어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해 마음 먹기만 수년, 도저히 시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부키 출판사에서 <한번은 한문 공부>가 나왔다. 일단 덥썩 들어 펼쳐봤다. 이런, 안에 들어 있는 문장들도 아름답지만 한문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저자의 말도 마음을 흔든다.


“한문은 고대부터 문법론을 지니고 있던 라틴어와 달리 문법론 없이 발달해 온 언어.”(7쪽)


그런 것이다! 라틴어는 고대부터 문법론이 있었는데, 한문은 없었다. 그런 어떻게 문장을 쓰지?


“거대한 언어이자 사유체계”(7쪽)이니, ‘공감 가는 한문 문장을 발견하고 문맥과 문맥을 분석한 뒤에 번역하고 암송하면’ 된단다. 이런 방식은 거의 모든 언어 공부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한문도, 국어도, 영어도, 독일어도……. 이런 방식으로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공감을 하면서 머리말을 읽었는데, 사실 본문은 첫 장부터 상당히 조금씩 나가고 있다. 한문은 오래 파면 분명히 어떤 체계가 보여 무식하게 암기하지 않아도 희미하게 그 뜻을 알게 된다고 하던데, 이제 하늘 천, 땅 지를 읊는 입장에서는 한 글자 한 글자가 고역이다. 하지만 왠지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천천히 글자를 고민하고 문장 구조를 고민하고 옛 성현들의 좋은 말씀을 암기해 가려고 한다. 몇 년이나 소중하게 들여다보면서 즐기게 될 책을 출간해 준 정춘수 선생님께, 부키 출판사에게, 수고한 모든 편집자와 디자이너, 인쇄소, 제본소 이하, 여러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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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36가지 표정 - 시간과 역사, 삶의 이야기를 담은
양쯔바오 지음, 이영주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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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역사, 삶의 이야기를 담은 도시의 36가지 표정> 양쯔바오 지음, 이영주 옮김, 스노우폭스북스


우와, 아름다운 책. 왠지 르느와르의 그림일 것만 같은 표지 그림으로(하지만 사실은 장 베로라는 화가가 1880년에 그린 것이란다. 이 비루한 미술 지식이라니--;;) <시간과 역사, 삶의 이야기를 담은 도시의 36가지 표정>은 시선을 확 잡아끌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공단이라고 하던가? 비로도라고 하던가? 아름다운 재킷과 치마를 입고 멋지게 모자를 쓴 여인이 다소곳이 그림 앞 부분을 지나가고 중년의 신사가 광고인지 알림인지를 잔뜩 붙인 광고탑을 쳐다보며 열심히 글을 읽고 있다.


멀리서 보이는 신사들은 왠지 여인을 보고 있는 것도 같고 광고탑을 보고 있는 것도 같고, 어쩌면 나를 보고 있는 것도 같고. 하늘 가득 나무가. 멀리 전등이 보이는 곳. 그곳이 바로 내가 가보지 못한 이국의 어느 낯선 도시구나. 19세기 풍경을 그린 듯한 그 도시 그림 속으로 풍덩 빠져들어가 거닐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해외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마음의 외침인가? 그럴 리가. 서울이라는 매혹적인 도시를 제대로 못 보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마음은 그닥 들지 않지만, 굳이 여행을 떠난다면 나는 어딘가의 도시로 떠나고 싶다. 도시로 들어가 그 도시의 모습을 보고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시간과 역사, 삶의 이야기를 담은 도시의 36가지 표정>은 그런 내 마음을 대리로라도 만족하고 싶어서 펼쳐든 책. 대만에서 태어나고 파리에서 교육 받고 다시 역동적인 대만으로 돌아와 문화부 정무차관이 되어 있는 양쯔바오가 이야기하는 도시는 매혹적이면서도 신비롭다. 어떤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방법을 알면서 보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신기하고 아름답다.


<시간과 역사, 삶의 이야기를 담은 도시의 36가지 표정>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문장은 롤랑 바르트의 목소리이다.


“우리는 고작 도시에 거주하고, 그 속에서 느긋하게 걷고 관람하는 것만으로 몸담고 있는 도시를 서술한다.”


이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면서 몸을 비비 꼬아봤지만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니, 알듯 말듯 하지만, 내 느낌을 정확하게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도시에 살면서 도시를 서술하는 사람이지만, 그 서술 방법은 느긋하게 걷고 관람하는 것? 아, 어렵다. 하지만 정말로 느긋하게 걸어보고 싶고 관람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부쩍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느긋하게 걸으면서 도시의 작은 공원들에 모두 멈추고, 도시의 모든 벤치에 모두 앉아보고 내 느낌을 내 마음을 정리해 보고 싶다. 미세먼지만 아니라면!(그러니까 걷지 않을 핑계는 늘 내 안에 있는 거다--;;)


여기서 스포 하나! 번잡한 메트로폴리탄, 서울답게 도시 이야기 하는데 빠질 리가 없다. 41쪽 시계 이야기를 할 때 나오는데, 서울과 시계라니, 어떤 내용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도시의 랜드마크만이 아니라 역사와 사람과 문화와 문학이 두루 담겨 있는 책. 서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여행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책. 다행히 다른 도시가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36가지 가운데 서울에 부족한 부분은 많지 않은 듯 했으니까. 하지만 이 세상에는 참으로 독특한 도시들이 많은데, 나는 가보지 못하겠구나 하는 쓸쓸함은 있었다. 북한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개선문이 있다고 하니, 기차가 다시 달리면 한 번 가보기는 해야지, 하는 생각은 했다. 책이란, 어떤 주제든지 참으로 새롭고 진귀하구나. 대만 작가 책은 거의 읽어보지 않았는데, 대만 작가의 책도 즐겨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좋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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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의 역사 - 인간이 묻고 신이 답하다
리처드 할러웨이 지음, 이용주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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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책을 집필하는 이유가 마음에 들어서 더욱 읽고 싶었던 책.


“종교의 역사는 이들 예언자와 현자, 그리고 그들이 시작했던 운동, 그들이 행적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은 논쟁과 불일치로 가득한 무거운 주제다⋯⋯. 예언자와 현자는 그들에 관한 이야기 안에 실존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수십억 사람에게 의미를 전하고 있다는 그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17쪽)


다신론자, 혹은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신을 향한 믿음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따지고 파악하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행했다는 기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고 싶지 않다. 어차피 그냥 믿어야 하는 영역이라면, 고민을 해도 결국 결론은 나올 수 없는 영역이라면,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이 복을 받는 영역이라면, 나는 그저 내 영역은 아닌가보다, 하는 마음으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을 그저 충실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문화의 일부로서 종교를 고민할 때,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나 우리 문화에 영향을 주고 간 사람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종교를 볼 때는, 호기심이 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종교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나는 궁금하다. 예수가 석가가 마호메드가 노자가 공자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고, 그런 굵직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 시대를 만들어 왔던 여러 거름들과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가 궁금하다.


<세계 종교의 역사>는 그런 궁금증을 잘 풀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종교적이지도 않지만 너무나 비종교적이지도 않은 서술 방식은 다양한 관점과 해박한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


다양한 종교 가운데 내가 마음에 드는 종교는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약간의 불교, 도교, 그리고 혁명가로서의 예수의 말씀쯤이지 않을까? 우파니샤드가 ‘스승 옆에 앉는다’라는 뜻이라니, 이 단어를 마음 속에 넣고 왠지 어디에서든 생각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균형잡힌 시각으로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종교를 소개해주는 리처드 할러웨이의 능력은 참으로 부럽다.



소소의책에서 나온 <세계 종교의 역사>와 교양인에서 나온 <축의 시대>를 소소하게 비교하면서 교양을 쌓아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어쩌면 세상에는 이렇게 읽어야 할 책들이 많을까? 놀라우면서도 기쁜 나날이다.


“유대인.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신을 이해시키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이 신을 이해하기 위해 신과 논쟁하느라고 너무 바쁘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논쟁중이다.”(118쪽)(우와!)


“유교는 인간 공동체의 선을 위해 이 세상에서의 인생을 관리하는 것에 그 에너지를 집중한다. 인생은 그 자체로 잘 살아내야 하는 것이지 죽음 후 우리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의 서곡이 아니다.”(137쪽)(이런 철학을 가진 종교가 제사를 만들다니--;; 엄청난 아이러니다.)


“도교- 자연에는 세상을 통합시키는 통일성과 상호의존성이 있다. 인간은 유일한 예외, 과도한 자의식 때문에 우주의 자연적인 리듬과 결별했고, 그 결과 우주와의 일체감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140쪽)!!!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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