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시의 36가지 표정 - 시간과 역사, 삶의 이야기를 담은
양쯔바오 지음, 이영주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8년 5월
평점 :
<시간과 역사, 삶의 이야기를 담은 도시의 36가지 표정> 양쯔바오 지음, 이영주 옮김, 스노우폭스북스
우와, 아름다운 책. 왠지 르느와르의 그림일 것만 같은 표지 그림으로(하지만 사실은 장 베로라는 화가가 1880년에 그린 것이란다. 이 비루한 미술 지식이라니--;;) <시간과 역사, 삶의 이야기를 담은 도시의 36가지 표정>은 시선을 확 잡아끌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공단이라고 하던가? 비로도라고 하던가? 아름다운 재킷과 치마를 입고 멋지게 모자를 쓴 여인이 다소곳이 그림 앞 부분을 지나가고 중년의 신사가 광고인지 알림인지를 잔뜩 붙인 광고탑을 쳐다보며 열심히 글을 읽고 있다.
멀리서 보이는 신사들은 왠지 여인을 보고 있는 것도 같고 광고탑을 보고 있는 것도 같고, 어쩌면 나를 보고 있는 것도 같고. 하늘 가득 나무가. 멀리 전등이 보이는 곳. 그곳이 바로 내가 가보지 못한 이국의 어느 낯선 도시구나. 19세기 풍경을 그린 듯한 그 도시 그림 속으로 풍덩 빠져들어가 거닐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해외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마음의 외침인가? 그럴 리가. 서울이라는 매혹적인 도시를 제대로 못 보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마음은 그닥 들지 않지만, 굳이 여행을 떠난다면 나는 어딘가의 도시로 떠나고 싶다. 도시로 들어가 그 도시의 모습을 보고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시간과 역사, 삶의 이야기를 담은 도시의 36가지 표정>은 그런 내 마음을 대리로라도 만족하고 싶어서 펼쳐든 책. 대만에서 태어나고 파리에서 교육 받고 다시 역동적인 대만으로 돌아와 문화부 정무차관이 되어 있는 양쯔바오가 이야기하는 도시는 매혹적이면서도 신비롭다. 어떤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방법을 알면서 보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신기하고 아름답다.
<시간과 역사, 삶의 이야기를 담은 도시의 36가지 표정>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문장은 롤랑 바르트의 목소리이다.
“우리는 고작 도시에 거주하고, 그 속에서 느긋하게 걷고 관람하는 것만으로 몸담고 있는 도시를 서술한다.”
이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면서 몸을 비비 꼬아봤지만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니, 알듯 말듯 하지만, 내 느낌을 정확하게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도시에 살면서 도시를 서술하는 사람이지만, 그 서술 방법은 느긋하게 걷고 관람하는 것? 아, 어렵다. 하지만 정말로 느긋하게 걸어보고 싶고 관람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부쩍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느긋하게 걸으면서 도시의 작은 공원들에 모두 멈추고, 도시의 모든 벤치에 모두 앉아보고 내 느낌을 내 마음을 정리해 보고 싶다. 미세먼지만 아니라면!(그러니까 걷지 않을 핑계는 늘 내 안에 있는 거다--;;)
여기서 스포 하나! 번잡한 메트로폴리탄, 서울답게 도시 이야기 하는데 빠질 리가 없다. 41쪽 시계 이야기를 할 때 나오는데, 서울과 시계라니, 어떤 내용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도시의 랜드마크만이 아니라 역사와 사람과 문화와 문학이 두루 담겨 있는 책. 서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여행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책. 다행히 다른 도시가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36가지 가운데 서울에 부족한 부분은 많지 않은 듯 했으니까. 하지만 이 세상에는 참으로 독특한 도시들이 많은데, 나는 가보지 못하겠구나 하는 쓸쓸함은 있었다. 북한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개선문이 있다고 하니, 기차가 다시 달리면 한 번 가보기는 해야지, 하는 생각은 했다. 책이란, 어떤 주제든지 참으로 새롭고 진귀하구나. 대만 작가 책은 거의 읽어보지 않았는데, 대만 작가의 책도 즐겨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좋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