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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이타주의자 - 세상을 바꾸는 건 열정이 아닌 냉정이다
윌리엄 맥어스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평점 :
냉정한 이타주의자 – 윌리엄 맥어스킬
몇 주 전에 매달 몇 만원씩 기부하는 자선단체에서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이전에도 남편이 자동이체 카드를 바꾸는 바람에 그 달 후원금이 들어가지 않아 가끔 전화를 받은 터라 이번에도 그런 전화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그때 상담원이 전화를 한 이유는 전혀 다른 이유였다. 상담원은 먼저 아이들을 꾸준히 후원해 주고 있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니, 곧바로 이 세상에 엄마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서 모유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며, 한참 무언가를 설명하고는 그래서 한 달에 1만원을 더 기부해 엄마와 갓난아기를 살려주시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길게 이어진 상담원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대충 엄마와 아기를 위한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더구나 1만원이라는데 차마 거절할 수 없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서서히 내 마음 속에서는 살짝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설마 이 사람들, 나한테 지금 영업활동을 한 거 아닐까? 내가 너무 만만해 보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평소에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느꼈던 민망하고 당혹스러운 감정들이 조금씩 올라왔다. 이런, 내가 지금 옳은 판단을 내린 걸까? 에이, 그렇겠지. 잊자, 라고 생각했을 때 이 책 <냉정한 이타주의자>를 만났다.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책이 나에게 오다니, 일단 나도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흐뭇해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읽자마자 나는 내 자신과, 그리고 평소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지인들과, 저자와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정말 앉은 자리에서 이 책을 다 읽어버렸다. 우와, 내 가치관을 뒤흔드는 책. 내 가치관을 지지해 주는 책. 내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실들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섞여서 내가 질문하고 대답하고 생각하게 만든, 놀라운 책을 알아버렸다. 후원을 이런 식으로 생각해야 했던 거야? 독서하는 내내 많이 놀라웠다.
사실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선단체에 매달 얼마를 후원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 날에는 자기도 그런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가끔은 있지만 대부분은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나무라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대답을 하지만 내 논리도 그다지 정확하지가 않아서 영 대답하기가 시원치 않은 질문도 있다.
후원을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대단하네. 나는 여유가 없어서.”이다. 그건 그 분의 선택이니 별 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고개만 끄덕여준다.
두 번째로 많이 듣는 말은 “우리나라에도 가난한 아이들 많은데 굳이 외국 애들은 왜?”이다. 그럴 때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아이 한 명, 외국 아이 한 명 후원합니다.”
세 번째 질책은 “왜 하필 기독교 단체야? 당신 기독교인가?”인데 아니다. 나는 비종교인이다. 한 몇 년 간은 왜 이 단체를 선택했는지 감정적으로 설명해 보려고 했지만 논리가 빈약해서 그만두었다. 그저 “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게 좋습니다.”라고만 대답한다.
네 번째 질책은 “기껏 그런 데 후원해 봤자, 그 돈 대부분은 경영자들이랑 직원들이 가져. 1만원 후원하면 1000원도 아이들한테 가지 않을 걸.”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하는 대답은 “저도 알지만 그런데…….” 뿐이었고, 내 반응을 지켜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서 나는 절대로 큰 후원단체에는 기부 안 해.”라고 말하면서 어때 내 말이 맞지, 하는 듯한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고 대화를 끝낸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반응까지는 이해를 한다고 해도 네 번째 질책은 사실 내가 반론을 못했을 뿐 그 분이 옳다고 느끼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냉정한 이타주의자> 덕분에 이제 내 느낌에 논리를 입혀 반박할 근거가 생겼다.
윌리엄 맥어스킬은 소비자가 맥을 살지 PC를 살지를 고민할 때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비는 얼마인지 CEO의 연봉은 얼마인지 따져보지 않는다고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돈을 지불하고 구입할 상품을 보면 되니까. 자기를 위한 상품을 살 때도 기업의 재무건전성은 신경 쓰지 않으면서 남을 위한 상품을 살 때 왜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따지는가? 사업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그 효율성을 따지는 게 맞는다고 말한다.
이제 나는 내가 후원하는 자선단체의 재무건전성과 사업은 다르기 때문에 당당하게 후원할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하지만 그 때문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내가 후원하는 단체는 과연 효율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가? 아이고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는가? 직접 현장에 가보지도 않았고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거두는지를 알 수 있는 정확한 자료도 없는데.
하지만 윌리엄 맥어스킬은 나태하지 말고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사업 실효성을 따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제시한다. 후원할 단체를 고를 때는 그 단체의 “추정비용효율성, 실효성검증, 사업실행력, 추가재원 조달의 필요성”을 근거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정도 자료는 매년 후원자에게 보내주는 사업 보고서 등을 보고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올해는 한 번 해 볼 생각이다. 후원할 사업을 고를 때는 “규모, 방치 정도, 해결 용이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 부분은 공부를 해야 한다.
<냉정한 이타주의자>의 첫 부분을 읽고 있을 때는 저자가 자선단체를 너무 줄 세우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의문이 정말로 강하게 증폭했을 때 저자는 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버거와 페나가 냉정한 이타주의자들에게 드는 반론(62쪽. 어떤 명분이 가장 효율적인지 따져 보는 게 비윤리적이라는 것)을 제시하고 어째서 냉정해져야 하는지를 설득해 나간다. 물론 다 설득이 되는 건 아니다. 결국 어떤 이성이 작용하더라도 나는 가끔은(아마도 자주이겠지만)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마음껏 후원을 할 것이다. 비용대비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더 마음이 쓰이는 곳은 어쩔 수가 없다.
<냉정한 이타주의자>를 읽으면서 많은 순간 놀랐다. 아르바이트 월급을 제때 주지 않고, 밀린 아르바이트 비를 줘야하기 때문에 정직원들 월급을 늦게 줄 수밖에 없다는 기업 불매 운동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반대 운동을 하되 불매 운동은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줄 수 있다는 주장은 정말로 뭔가에 한 대 맞은 것처럼 놀라웠다. 공정무역보다는 오히려 착취하는 공장이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감정과 이성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 공장식으로 사육하는 가축을 먹지 않겠다는 내 결심을 뒷받침해 주는 주장 앞에서는 한참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를 받았지만, 소보다는 닭, 달걀, 돼지를 먹지 않는 것이 훨씬 더 탄소 배출을 줄이는데도 동물의 복지를 개선하는 데도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은 새롭게 안 사실이다.
숫자를 만 단위로 끊어 쓰는 우리나라에서 숫자 표기 기준은 따로 정하지 않기로 했다는 누군가의 말을 들은 적도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3,000이 아니라 3000으로 적어준 책을 봤다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느낌, 감정, 의문, 깨달음을 동시에 제공하는 책 <냉정한 이타주의자>는 내가 이 지구 행성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늘 참고하는 책이 될 것 같다. 결국에 결정은 내 마음이 하고 말겠지만. 좋은 책을 읽었다.
(계속해서 의문점을 쓰고 느낀 점을 쓰느라 포스트잇이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