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대장
박도화 지음 / 등(도서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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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화 동화작가는 공주 사대부고를 졸업하고 충북대 사대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공주사대가 가깝고 등록금도 저렴한데 굳이 타지로 가게 된 건 이유가 있다. 150센티 이상이라는 입학 규정에 발목이 잡혀 고민 끝에 굳이 모험을 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공주사대를 다니면서 150센티 이하의 입학생들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어떤 식으로든지 서류에는 150 이상이라는 증명이 있어야 했고 엄연히 존재하는 규정에 맞설 만큼 대범하지 못했다.

운명이라는 파도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어떤 식으로든지 밀어닥친다. 그 후 박도화 작가는 타지 생활 끝에 졸업했지만, 교사로서 임용은 포기해야만 했다. 갑작스러운 희귀병으로 투병하다가 퇴원했지만 이미 뇌의 손상으로 손과 다리의 경직이 심하게 진행되어 일상생활 자체가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장애의 불행은 절벽처럼 아득했지만, 그는 운이 좋았다. 사대부고 동문, 교사가 된 친구들의 도움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난 비슷한 처지의 인연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새롭게 닥친 상황을 힘들게 받아들이며 자기 앞의 생을 사랑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꿈을 이룬 것이라 하겠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두 가지 꿈을 키우며 살았다. 글을 쓰는 것과 국어 교사의 꿈이다. 장애를 만나 교사의 꿈은 포기하였지만 아이들을 향한 교육의 열정은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손으로 글씨를 쓸 수도, 유창한 언변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체험했으니, 컴퓨터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논술 독서 글쓰기 교실에서 짧은 글을 읽고 느낌을 쓰는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공감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설명보다는 길고 섬세하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지도를 했다고 한다. 어눌한 발음은 댓글을 다는 방법 등으로 보완하며 논술 글쓰기 수업을 통하여 삶의 의욕을 회복하였다. 무작정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던 그즈음 동화를 만난 것이다.

아이들은 고정관념과 편견에 덜 물들어 있어서인지 논술선생님의 다른모습이나 보행 장애를 새로움으로 받아들이고 호기심을 보이는 장면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글이 곧 사람이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경우가 있는데 박도화 작가에게도 그러하다. 동화의 사연은 작가의 체험과 주변에서 만난 사연을 리얼리즘 기법으로 담았다. 명랑한 성품과 생기 있는 목소리는 장애와 맞서는 당당함이며 이는 작품에도 그대로 담겨있다. 그게 박도화 작가의 살아있는 밝은 웃음이다.

 

은찬이야. 엄마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갈 때는 사람들의 울음소리에 슬프고 무섭기만 했어. 그런데 막상 이곳에 와보니 상상과는 달리 밝고 평화로운 세상이야. 아직도 내 생각에 슬픔이 가득한 엄마의 얼굴을 발견하는 일만 빼고는 잘 지내고 있어.

나로 인해 더는 아파하지 마. 예전처럼 밝고 환한 모습을 보여줘. 그게 소원이야. 전에 내가 어릴 때의 친구를 만나, 걸어 다녔던 옛날 생각이 떠올라서 어깨가 축 처지고 몹시 우울해하면 따스한 손길로 쓰다듬으며 말하곤 했잖아.

은찬아, 웃으며 살아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야.”

엄마 때문에 내 별명이 유쾌한이 됐잖아. 늘 웃는다고. 주위 사람들이, 심한 장애를 지닌 내가 그늘이 없어 보인다고 신기해했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다 엄마 덕분이야.

- 사랑하는 엄마에게중에서

첫 동화집 영원한 대장9편의 이야기가 묵직하면서도 상큼한 울림을 준다. 장애의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과 가족이 함께 나누는 순간순간의 위태로움이 섬세한 결로 아로새긴 무늬가 주는 힘이다. 작품마다 장애 가족이 등장하지만 그 안에는 다문화돌봄 노동’, ‘사회복지와 관련하여 시대의 아픔을 호흡하는 공감대의 넉넉한 사유가 담겨 있다.

죽음질병의 문제는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인류의 보편적 상황이다. 그의 문장에는 이 문제가 심층으로 표면화되면서 장애라는 벽과 끊임없이 맞선다. 장애와 비장애의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하고, 편견 없이 지켜주려는 어른의 대화와 동심의 보편성이 웅숭깊은 문장으로 담겨 있다. 갈등의 전개와 해결이 밋밋한 점은 아쉽지만, 등장인물이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밝은 기운으로 독자들이 부담 없이 마주할 수 있다. 읽는 이의 가슴이 다행스럽고 든든하게 전해진다.

 

엄마의 이름은 응우옌 티 쑤언. 다들 그냥 쑤언이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봄을 의미한다니 엄마에게 잘 어울리는 멋진 이름이다. 엄마는 오 남매 중에서 큰딸인데, 이웃 나라 베트남에서 목사님의 소개로 아빠를 만나 국제결혼을 했다고 한다. 엄마가 자주 보는 가족사진을 보면 식구들 모두 비슷한 분위기가 풍겼는데 내 눈에는 그중 엄마가 젤 예뻤다. 엄마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의 사정상 나고 자란 곳을 떠나야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해줄 때 엄마의 눈이 그렁그렁해져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꼭 안았다. 엄마는 숨 막히게 날 끌어안았다가 팔을 풀고는 양 뺨을 감싸며 말했었다.

엄마는 은실이가 최고의 보물이야. 엄마 마음 알지?”

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울지 않을 것 같아서.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이 불편한 아빠를 도와 밥상을 준비한다. 한국 음식에 익숙지 않아 아직도 요리가 서툴다.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거다. 과수원집 할머니가 음식도 주고 한국 음식 요리하는 법도 가르쳐주어서. 예전엔 반찬 투정을 하기도 했지만, 5학년이나 되어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래도 엄마의 요리에 대한 걱정은 깊기만 하다. 그래서 지금도 다문화센터를 다니며 부지런히 배우는 중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고. 때때로 엄마는 선생님보다 아빠가 훨씬 도움이 될 때가 많다고 감탄한다. 엄마는 나를 학교에 보내고는 농사일을 도울 때도 있고 다문화센터에 갈 때도 있다. 거기에서 한국어와 한국 음식을 배우기도 하고 공예기술을 함께 익히기도 한단다. 무엇보다도 엄마와 같은 처지의 아줌마들과 마음이 잘 통해 속 시원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가장 좋다고.

엄마를 만나고 나서야 제대로 사는 것 같다는 우리 아빠. 아빠는 몸이 불편하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백신을 맞지 않아 5살 이후 소아마비를 앓아야 했단다.

베트남 쌀국수 생일파티중에서

 

그의 동화집을 읽다 보면 쓸쓸하고 아픈 흔적이 딱 그만큼의 따뜻함과 포근함으로 균형감각을 이룬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는 동화로서 공동체 세상을 꿈꾸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때로는 아픈 사람들을 사유하는 책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좋은 세상 만들기에 동참할 수 있음을 믿는다. 그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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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여행이다
박명순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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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시는 쓰는사람의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영화도 마찬가지.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 놓쳐버린시간 다시올 시간을 위해서 영화를 만납니다. 영화의 주인공,나를 만나는 시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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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nala 2018-12-22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영화의 주인공,나를 만나는 시간을 위해 영화를 만나는 것입니다. 좋은 영화, 보고싶은 영화, 함께보고 싶은 영화,생각만해도 좋은 영화. 모두 내가 껴안아야할 삶입니다.
 
선생님이 먼저 때렸는데요 살림터 참교육문예 5
강병철 지음 / 살림터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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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만나는 캐릭터는 독특하다. 학교아저씨같은 선생님. 술텀뱅이 같은 털털함. 친숙하고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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