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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섬 : 나의 투쟁 4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9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투쟁, 이번엔 오랜 기억의 다락방에서 단서를 찾는다.』
칼 오베 크나우스 고르의 「나의 투쟁4-유년의 섬, 한길사」를 읽고
기다리던 웹툰의 연재인데, 갑자기 휴지공고가 뜨거나 생각했던 내용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건부터 이야기하고 정작 알고 싶은 내용은 다음으로 미룬다면 많이 섭섭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할 것이다.
이번에 나온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 4번째 책인 ‘유년의 섬’이 내게 그런 책이었다. 아니 첫인상이 그러했다. 게다가 칼 오베의 카리스마있는 사진이 표지에서 사라지고 아이들이 바닷가에 있는 그림이 표지로 등장한 것은 시리즈와는 다른 외전적 작품을 넘어 전혀 다른 작품인듯 낯설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 내용도 앞선 시리즈의 작품들과는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완전히 다를 것 같아 처음에 이상히게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기다렸던 작품이기에 무척이나 반갑기도 했지만 성형수술을 해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거나 뭔가 생경감을 느끼게 하는 지인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책을 읽어 나가면서 4권이 왜 ‘유년의 섬’이 자리해야 했는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최근 읽고 있는 미치코 가쿠타니의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에는 밀레니엄 전환기에 일어난 회고록 열풍의 대표적 예로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 시리즈를 언급하며 ‘작가 자신의 일상 생활에서 끌어낸 상세한 세부묘사로 가득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미치코 가쿠타니의 말마냥 나의 투쟁 시리즈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을 것 같은 일상의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는데 이 4권 ‘유년의 섬’은 지금까지 읽어온 책중 그런 경향이 가장 큰 책중의 하나이다. 어린 아이 시절의 기록들은 이전 작품들이 그런 일상적 묘사에도 불구하고 크나우스고르가 작가로서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지 등을 여러 측면으로 보여주는 데에 반해 나의 투쟁 네 번째 책은 어린시절의 유치한 기록(?)들을 두서없이 전달하는 듯 하다. 읽다보면 굳이 이런 기록까지 넣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 같은 잡스러운 이야기, 쓸모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의 총집합인듯 비쳐진다.
그러나 조금씩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그의 유년의 삶의 조각들은 마치 어릴적 여러가지 잡지의 사진들을 찢어 샤프펜슬의 끝으로 점점이 찍어서- 손톱만한 크기로 모자이크 그림을 만든 아이들도 있었지만 난 샤프로 좁쌀만하게 붙여나간 그림을 만들었다.- 한개의 그림을 완성시켜 나가듯 저자는 지금의 자신을 대변해가는 듯 하다. 특히 나의 투쟁 1권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해가는 과정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애증어린 기억들을 세밀하게 묘사했었는데 그 아버지와의 갈등과 기억을 4권에서 상당한 분량으로 다루고 있다. 1권을 읽으며 작가가 어릴적 보낸 노르웨이의 자기 아버지는 지금 내나이 또래가 기억하는 자신의 아버지들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고 느꼈었는데 - 노르웨이에 한동안 살았던 분의 이야기를 듣더라도 그런 것 같다.- 이책은 가부장적인 억압적인 아버지에 대한 작가의 기억을 적지 않이 담아낸다. 1권에서 저자가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태도가 왜 그럴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수 있는 단서들을 제공한다. ‘유년의 섬’에서 쉽게 울어버리곤 하던 저자가 아버지의 고압적인 성격으로 자신이 잘못한것보다 과하게 야단받고 심지어는 아버지의 선입견과 잘못된 정보로 오해받고 체벌받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넘어 복수를 꿈꾸기까지 하였던 유년의 기억들은 1권에서 아버지의 죽음이후에야 그 깊은 상처를 되새기고 해결해가게 된다. 물론 아버지도 저자에 대한 미움이나 분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들을 사랑했고 나름 대화하고 소통하기를 원했었다. 하지만 당시 아버지들이 그러했듯-지금도 그렇지만- 저자의 아비지도 사랑하는 것에 서툴렀고 대화하는 것을 몰랐기에 사랑하고자 하는 손짓들이 오히려 자식에게는 상처와 아픈 기억을 남기는 모습을 보이고 만다. 나중에 어머니의 공부후 아버지가 가족들과 떨어져 공부하면서 알콜중독에 빠지게 된 것은 1권에서의 아버지의 노년의 모습이 왜그러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초가 된다.
저자는 4권의 책 초반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똑같은 이름 ‘칼 오베’라 불리는 것이 타당한가하는 주장을 편다. 각각의 시기의 자신은 각각 다른 모습과 생각을 가졌기에 그 시기마다 그 이름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 까 하는 논리를 펴는데 결국 이것은 그가 왜 그의 삶의 소소하고 쓸모없는 듯한 이야기를 6권이라는 벽돌책에 담아내면서도 ‘나의 투쟁’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런 것 같다. 삶은 투쟁이다. 어떤 때는 사소하고 쓸모없는 일로 시간을 소모한 것 같아도 그런 일들 조차도 내가 또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나의 투쟁’이라 말할수 있을 듯 싶다. 저자는 그래서인지 이미 나의 투쟁 1~3권에서 부끄러워 숨기거나 최소한 미화시킬 것같은 일들마저 날것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4권에서는 유년의 모습을 더더욱 그렇게 세밀하게 여실히 담아낸다. 찌질해보고 유치찬란해 보이는 모습들을 그려낸다. 그러면서도 ‘나의 투쟁’이라는 제목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은 그 나이 때의 ‘칼 오베’는 그 나름의 삶의 투쟁을 치러낸 것이고 자신을 알게 모르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 것 같다. 내 자신 나의 삶을 돌아보면 마치 우리나라 과거의 독재정권이 언론이나 문화 검열을 하며 먹물로 그 기사와 책의 곳곳을 지워나갔듯 지우거나 포장하고픈 기억들이 곳곳에 지뢰밭처럼 널려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을 기억한다면 그 기억들조차 나의 일부로 인식할때 나는 나로서 설수 있고 나를 만들어 갈수 있을 게다.
이제 또다른 ‘나의 투쟁 5’가 출간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제 나이들어 이렇게 오랜 텀을 두고 출간되면 이전 책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그 기억의 날줄을 이어가는 것이 힘들어서 출판사와 번역자가 원망스럽긴 하지만 이것도 어떤 면에서는 출판사와 독자의 갑을 관계이기에 그 처분을 기다릴뿐.. 책을 조금 느리더라도 내고 있는 출판사에 감사할뿐. 하해같은 은혜를 기다리며 책을 덮는다.
#한길사 #나의투쟁 #유년의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