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잘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 무엇이든 쓰다 보면 잘 써지는 게 글이라고
이윤영 지음 / 위너스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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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영 저, <어쩌면 잘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위너스북


국민학교에 다녔을 때 방학을 만끽하다 보면 반드시 두려운 시간이 오기 마련이다. 개학 2~3일 전, 어머니의 방학 숙제 독촉에 시달리며 이런저런 과제를 정신없이 하기 일쑤였다. 그중에서 특히 어려운 일은 독후감 쓰기였다. 꼬박 세 시간 정도를 투자해야 마무리할 수 있는 숙제였기에 가장 괴로웠던 일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란 내게 괴로움과 지겨움을 안겨주는 피곤한 존재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글 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주 깨닫는다. 그 시절 억지로 쓰던 글이 성인이 되어서 잘 써질 리 만무하다. 심지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이런 내게 이윤영 작가의 <어쩌면 잘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위너북)은 글쓰기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며 친절하게 달래준다.


 

저자 이윤영은 십 수년간 방송작가와 콘텐츠 디랙터 등으로 활동한 소위 '글쟁이'이다. 글쓰기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다 돌연 전업주부가 되기로 한다. 경력보다 자녀 양육과 살림을 선택했던 그가 우연한 기회에 SNS를 접하게 된다. 시청률에 신경 쓰며 치열하게 자판을 두드리던 그에게 SNS의 가벼움은 너무 낯설었다. 하지만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과 의미 있는 소통이 있음을 깨닫는다.


 

저자는 우리에게 다정한 말투로 이야기한다. 그저 한 줄이라도 좋으니 일단 시작하라고. 오늘은 그저 한 줄에 그쳤지만 시간이 지나면 위대함으로 다가갈지도 모를 시도가 될 수도 있음을 여러 예를 들어 알려준다. 마치 엄마가 아들에게 말하듯 글쓰기를 권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말투는 잔소리처럼 거슬리지 않고 참으로 달콤하게 다가온다. 맛있는 간식을 먹으라는 엄마의 말처럼.


 

어떤 글쓰기 선생들의 책을 보면 너무 문단이 길거나 따라하기 힘든 것을 시도하라는 요구가 보이기도 한다. 이런 책을 글쓰기가 힘든 사람이 골랐을 텐데, 희망보다는 좌절과 분노를 주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윤영 저자는 너무 쉬워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에서 시작하라고 알려준다. 카톡을 이용한 간단한 메모를 올린다든지 10분만 자신만의 글쓰기 시간을 확보해 보라는 것 등이다. 이런 것들마저 하기 어렵다면 글쓰기를 삶에서 생각하지 않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해 오랜 기간 전문 작가 일에 몸담은 저자이기에 이런 말들을 쉽게 한다고 치부할 수 있다. 글에 있어서 이미 너무도 앞서나간 전문가가 자신에게는 일상적인 일을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저자가 제안하는 글쓰기의 방법들이 참으로 구체적이고 자세하며 또한 친절하다. 그의 전문성에 기가 죽을 독자를 배려한 부분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은 육아를 경험한 프로 엄마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책은 블로그 이야기로 시작해 블로그 쓰기로 마무리된다. 홀로 글쓰기의 내공을 쌓더라도 독백이면 곤란하단 말이다. 기자의 글이 편집자를 거치며 수없이 고쳐지듯 블로그 독자를 통해 검열을 받으라 권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글에 다소 뻔뻔한 자신감을 가지라 강조한다. 글에 자신 없는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응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대부분이 글쓰기를 권하는 글이 그러하듯 어떤 문장이 좋고, 어떤 글이 훌륭한지 이 책 역시 콕 찍어 알려주지 않는다. 문제집 풀듯 글쓰기의 해답을 바로 확인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울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인생에 정답이 없듯 글쓰기에 어찌 정답이 있겠는가?


 

책에 묘한 몰입도가 있어서 숨 가쁘게 달리기하듯 다 읽고 책장을 덮는다. 그간 이런저런 핑계로 몇 달간 글 하나 올리지 않은 썰렁한 내 블로그가 떠오른다. 방문자 하나 없는 곳이지만 바로 지금 내 손가락의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오랜 시간 잃어버렸던 글쓰기의 욕구가 조금 생기는 느낌이다. 작가의 부드러운 꼬드김에 넘어가 이미 타자를 두드리는 내 모습을 보니 그의 책에 묘한 설득력이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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