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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을 수 있다면.
수십개의 다리가 달린 괴물의 사체처럼 한덩어리가 된 우리들의 몸을 더이상 들여다보지 않을 수 있다면, 깜박 잠들 수 있다면, 캄캄한 의식의 밑바닥으로 지금 곤두박질칠 수 있다면.
꿈속으로 숨을 수 있다면.
아니, 기억 속으로라도.
<소년이 온다 - 한강, p54>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소년이 온다 - 한강, p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