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너를 신뢰하라
루이지노 브루니 지음, 김석열 옮김 / 벽난로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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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리치 8명의 재산이 전 지구의 60억 인구 중 36억 명의 재산과 맞먹는다고 하는 기사를 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이미 온 인류가 인간답게 살 수 있을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기아, 빈곤, 전쟁, 폭력 등에 시달리며 비참한 삶을 간신히 이어가거나 끝내 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오히려 언젠가부터 점점 그 주기가 짧아지는 경제 위기의 반복으로 비참한 삶의 규모는 점점 커져가는 것 같다. 오늘날 (극소수를 제외한) 인류를 짓누르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로부터 인류가 좋은 삶을 되찾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그리스도교 윤리에서 가장 강조하는 7가지 덕목인 향주삼덕-믿음(信德), 희망(望德), 사랑/아가페(愛德)-과 사추덕-신중함(知德), 정의(義德), 굳셈(勇德), 절제(節德)-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단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흔히 강조하는 매우 기본적이기도 한 이 덕목들에 관한 이야기는 자칫 추상적이고 사변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데,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맞닥뜨린 어려움이 이런 덕성이 사라진 까닭이라고 간결하게 이야기하며 독자로 하여금 일곱 가지 덕목이 우리의 일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예를 들어, 5정의의 다음을 읽었을 때, 난 건물주 리쌍과 세입자 우장창창의 갈등이 떠올랐다.


정의가 요구하는 바에, 잘못된 방식으로 부응하는 모습 중의 하나는, 모든 사회생활을 '법률화'하여 법의 틀 안에만 가두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들을 가능한한 성문화함으로써, 모든 인간관계를 일종의 '계약'처럼 만들려는 경향이다. 이는 오늘날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경향 내지 유혹은 정의를 강화하기보다는 우리의 학교와 공동주택과 병원을 상호 불신의 함정에 빠지는 장소가 되도록 칸을 질러 버린다. 다양한 모습의 인간관계를 계약의 형식에만 맞추어 가려고 할 때, 인간관계는 부자연스러워지고 변질되기 때문이다. (67)


현행 법상 건물주 리쌍의 우장창창에 대한 퇴거 요청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법이 항상 완벽한 정의를 담보하는 것은 아닌데다, 특히 이 건의 경우에는 세입자가 부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심각한 결함이 있는데 법을 그대로 적용했다고 결코 옳은 일을 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우장창창이 건물주 리쌍에게 가장 원했으나 끝내 들어주지 않아 가장 서글펐던 요구는 직접 만나서 대화하자였다. 당사자가 얼굴을 맞대고 법과 계약이 다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최선의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우장창창이 만나서 대화하자고 했을 때의 간절함과 단 한 번도 만나주지 않았을 때의 모멸감을 막연하게나마 느낀 나는 이 책 서문의 다음 문장이 말하는 바를 좀 더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곧 경제 거래란 사람 사이의 만남을 수반하는데, 사람들에게서 인간 만남 차원의 모든 것을 박탈하지 않고 특히 말할 권리를 빼앗지 않는다면, 그 만남은 참으로 인간다운 만남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11)


또한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 덕목들을 지속적으로 함양하고, 수행함으로써 실천할 때에 덕성이 완성된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함으로써,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로써 정의란 무엇보다도 먼저 정의란 사람에게 있어서 지속적인 훈련의 결실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던 것이다. '실존'하는 다른 위대한 덕성들이 그러하듯이, 정의는 원칙적으로 제시되거나, 의거 기준으로 선포되기에 앞서서, 먼저 실천되고, 추구되고, 함양되어야 하고, 생활화되어야 한다. (68)


반면에 덕의 윤리학은 본성(우리 모두는 덕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과 문화(그러나 우리가 이미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연습과 훈련, 그리고 의지가 필요하다.) 사이에서 역동적인 긴장감으로 살아간다. (90)


저자는 시효를 다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자본주의의 여명기 즉,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환되는 시기에 갈 수 있었던 다른 노선인 유럽의 협동조합운동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구체적인 모습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선물과 계약, 무상성과 본연의 도리, 의무와 자유”(14) 등의 그리스도교 윤리에 기반한 형태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시민경제와 경제윤리 전문가인 저자의 다른 저작 21세기 시민 경제학의 탄생(북돋움, 2015)을 읽으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에필로그 <결론을 내지 않기 위한 결론>에서는 시간의 차원을 제거한 기괴한 모습의 자본주의와 그 실패를 비판하면서, 시간의 차원을 되찾으려면 개인적인 지평을 넘어선 보다 큰 세계관, 세상에 대한 비전의 필요성을 말한다.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세대와 공간을 뛰어넘는(연결하는) ‘종교신앙이 그 지평을 선사하며, 그런 지평을 열었을 때 비로소 나를 포함한 인류 공동체 모두에게 좋은 삶을 지속하게 해 주는 공공선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믿음, 희망, 사랑, 신중함, 정의, 굳셈, 절제복잡하고 바쁜 일상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일곱 가지 덕목에 관한 문자 그대로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로 기분 전환이 되기도 했다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 찬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지만, 그럴수록 더 희망과 굳셈의 덕성으로 삶을 버티며 뚜벅뚜벅 걸어나가자고 말을 건네는 책이다. 두께는 얇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이 책과 함께 현실 세계와 결코 동떨어지지 않은 윤리덕목에 관해 잠시나마 영성에 찬 묵상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종교religion는 하늘과 땅을 연결religo해 주고, 세대 간을 연결해 주곤 했으며, 하나의 작품이나 사업의 시작에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이 같은 작품이나 사업의 시작이 지니는 의미를 그 창시자가 보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즐기게 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고 하겠다. 종교와 신앙은 무엇보다 특히, 모든 이들의 하늘에 맞닿아 있는 크나큰 지평들을 선사하는 것이다. (109)


정의가 요구하는 바에, 잘못된 방식으로 부응하는 모습 중의 하나는, 모든 사회생활을 ‘법률화‘하여 법의 틀 안에만 가두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들을 가능한한 성문화함으로써, 모든 인간관계를 일종의 ‘계약‘처럼 만들려는 경향이다. 이는 오늘날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경향 내지 유혹은 정의를 강화하기보다는 우리의 학교와 공동주택과 병원을 상호 불신의 함정에 빠지는 장소가 되도록 칸을 질러 버린다. 다양한 모습의 인간관계를 계약의 형식에만 맞추어 가려고 할 때, 인간관계는 부자연스러워지고 변질되기 때문이다. (67)

곧 경제 거래란 사람 사이의 만남을 수반하는데, 사람들에게서 인간 만남 차원의 모든 것을 박탈하지 않고 특히 말할 권리를 빼앗지 않는다면, 그 만남은 참으로 인간다운 만남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11)

이로써 정의란 무엇보다도 먼저 정의란 사람에게 있어서 지속적인 훈련의 결실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던 것이다. ‘실존‘하는 다른 위대한 덕성들이 그러하듯이, 정의는 원칙적으로 제시되거나, 의거 기준으로 선포되기에 앞서서, 먼저 실천되고, 추구되고, 함양되어야 하고, 생활화되어야 한다. (68)

반면에 덕의 윤리학은 본성(우리 모두는 덕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과 문화(그러나 우리가 이미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연습과 훈련, 그리고 의지가 필요하다.) 사이에서 역동적인 긴장감으로 살아간다. (90)

우리가 지나온 시간(역사)에서부터 우리가 가고자 하는 시간(미래)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깊이가 우리의 경제 문화에는 부재한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의 시민사회 문화에도, 경제학자들의 양성 과정에도, 교육 시스템에도 이 같은 시간의 깊이는 부재한다.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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