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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
진중권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평점 :
그냥그런 인터뷰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깊이가 깊다.
이게 이 책을 읽는 동안 떠오른 첫 생각들입니다.
사실 “예술가의 비밀”이라고는 하지만, 대한민국 예술가 아니 “대한민국 예술의 역사”에 보다 가까운 내용들이 담겨있다 할 수 있습니다. 구본창씨를 통해 사진의 역사를 승효상씨와 인터뷰를 통해 현대건축의 역사와 나아가야할 점에 대한 토론도 이어지도, 문성근씨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배우의 역사도 역사지만 문성근씨의 아버지인 문익환 목사와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이외수, 강헌, 안상수, 박찬경, 임옥상씨와 같은 예술가들 문학, 음악, 타이포, 영화, 설치미술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이렇게 질이 좋은 인터뷰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인터뷰의 깊이가 깊어서 사실 빠른 시간에 다 읽기보다는 한 챕터씩 천천히 읽고 꼽씹으면 좋은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은 인터뷰는 건축가 승효상과 대중음악평론가 강헌 부분이었습니다. 건축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은게 이미 네모난 아파트로 서울 전부가 덮히는 바람에 사람들은 새로운 건축에 목말라있지만, 서울의 건축적 정체성은 이미 혼재되버렸습니다. 이럴 때 건축은 어떤 점으로 나아가야하는가를 ‘승효상’씨 파트를 보면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딱 이래야 한다라는 답이 나온건 아니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하고 있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이 조금은 희망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헌씨 파트의 경우 대중음악의 역사를 되집어보는게 의의가 있었습니다. 지금 가요계가 사실 거의 상업자본의 논리로 좌우되는 음악이라고 하기보단 그냥 음에 가까운 노래들이 재생산되는 시대인데, 이런 시대에서 우리의 음악들이 어떤 과정으로 발전되어왔는지 보니, 좋았습니다. 많은 선구자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 ‘신해철’씨에 대한 언급이 두드러지는데 참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80년대 후반에 태어나 2000년대 음악의 르네상스 끝무렵에 성장했기 때문에 신해철의 이름은 알았어도 걸어온 길은 잘몰랐기에 이번 계기로 기존에 잘 알지못했던 선구자들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우리나라 예술의 역사를 잘 훑어볼 수 있는 개론서가 될 것 같습니다. 부제라고 하면 “한국현대예술사”정도가 될 것 같네요. 이렇게 하니까 매우 딱딱한 책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실제 제목을 센스있게 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진중권씨가 인터뷰 중간중간 언급하는 하이데거, 발터 벤야민 같은 학자들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데는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이 책은 예술이 왜 필요한지, 예술이 그동안 무엇을 해왔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술이 밥 먹여줘?”하는 질문에, “사실은 네가 먹은 밥이 예술가가 만든 밥이야”라고 대답하는 다양한 스킬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좋은 재료로 정성스레 차린 밥상 같은 책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