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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주의 선언 - 좋은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문광훈 지음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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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바를 한 번 더 확인하는 작업이라 했던가. 직전에 읽은 책이 21세기 제언이다 보니, 그 제언 속에서 <심미주의 선언>도 읽힌다. 그게 아니라면 이 시대의 지성인들은 현세대에 현재 자신을 응시하라고 외치기를 하나의 책임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심미주의 미학>은 이름에서부터 다가가기 쉽지 않은 책이지만 한 마디로 '아름다움은 이 세상의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천명한다. 개인과 사회가 아름답게 이어지기 위해.


  유명한 성시스티나 성당의 미켈란젤로 벽화. 심미라더니 정말로 작품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에 대한 설명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켈란젤로의 허물로서 주체라는 이야기의 단초를 잡는다. 주체는 쉽게 말해 자신이다. 그리스 시대에는 본인으로 하여금 진리를 찾을 수 있었으며, 중세 시대에는 주체를 버림으로써 신의 진리에 도달했다. 그리고 지금의 진리는 불변함이 아니며, 오히려 끊임없이 변화해 나아가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즉, 진리는 결정된 어느 하나가 아님과 동시에,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몸부림 그 자체가 된다. 
 

 예술은 그러한 변화로서 본인에 의한-자의적인 변화이다. 미술의 영역은 현대로 오면서 추에서 미를 찾는 것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미술의 역사-미학의 역사는 '미와 반미(反美)'로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렇게 미술은 탄생과 함께 고수와 탈피를 야기시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변화인 것이다. 또한, 개인으로서는 개인과 세계와의 관계를 '점화'시키는 작용이면서, 작품을 보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종(種)이 동시에 향유하는 미를 찾는 것(審美)이 되므로, 누구도 이 세상에서 무관해지지 않는다. 여기서 예술적이라 말하지 않고 심미적이다 이르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작품을 내어 보이는 예술가에 한정되지 않고, 예술을 즐기는 이들에게 열려 있기 위해.
 
 전체적으로 책은 철학적이고 쉽지 않다. 그러니 한 언저리에 들어간 저자의 아내가 한 얘기-소수만이 미술에 관심이 있고, 그 소수 중의 소수만이 철학적으로, 이런 책을 보고 고민하지 않겠냐고-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쉽게 휙휙 넘길 수 없어 아직 책을 다 읽지는 못했다. 이후는 책을 다 읽고 보충하는 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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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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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발 하라리의 신간을 김영사로부터 얻게 되었다. 이번은 책에 대한 감상을 줄줄 풀어내고 싶어 이미지가 아닌 글을 택했다. 이번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는 제목부터 상당히 직설적이다. '제언'이란 이름으로 결국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우선 이 책은 저번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 시리즈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고 그다음에야 발을 디디고 있는 지금에 눈길을 돌린 것이다. 우리의 어제에서 혜안을 얻고 아직 오지 않는 내일을 맞는 것은 오늘이라는 사실과 함께, 하루, 한 시간, 아니 한 자를 생각하는 이 순간에도 변하는 것이 현재이기에 과거-현재-미래 중에서 현재를 가장 마지막으로 삼은 것이 아닐까 한다. 이전 책이 단지 현상을 통찰했다 하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통찰에 제언, 당부 그리고 재촉이 버무려졌다.  



 보라!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그렇다면 아마 책 표지의 둥근 원은 '눈동자'일 테다. 무엇을 봐야 할까. 생명공학과 손을 맞잡은 AI 무한한 확장, 자유주의 이후 이야기의 공백, 기후변화-난민 등 세계적인 문제 앞에 민족-종교로 갈라선 호모사피엔스 등 내가 살아가는 지금의 이슈들이다. 여기서 들어보지 못한 것이라 꼽을 수 있는 것은 '자유주의'에 대한 믿음 정도일까. 다 한 번쯤은 단편적으로 흘러 다니는 정보로 접했다. 다만, 붙잡고 뜯어볼 의지도 없이 그대로 흘려보냈을 뿐이다. 우리, 호모사피엔스는 일상을 영위하느라 복잡한 사실은 곧장 외면하고 만다. 꼴도 보기 싫어서 정치판을 외면하듯 한 것일지, 직면한 격변의 파도가 너무나도 높아서 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일지. 하지만 저자는 '누가 인생이 단순하다고 말했나? 풀어가야 한다.'고 다그친다. 


 유발 하라리의 시각은 신기한 게, 자신도 인간이면서 인간을 조망하듯 말한다. 책에서 보면 줄곧 인간, 인류, 사람이란 말 없이 '호모사피엔스'만을 사용해 우리를 언급한다. 그 자체가 사피엔스라는 종족, 인류를 전체 생태계 속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한다는 말이 되겠다. 또한, 민족, 종교(신사적으로 본인이 속한 공동체, 유대인과 유대교를 대상으로 삼는다), ~주의(여기서는 특히 자유주의)를 지구에 나타난 지 불과 얼마 되지 않는 호모사피엔스의 시간 중에서도 얼마 되지 않은 개념이자 가치, 믿음임을 환기한다. 자유주의, 국가와 민족은 정말 인간의 발자취에서 '고작'일 뿐이다. 물론 그것들이 무용하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유의미해서 문제였다는 것이지.


 비교적 앞부분에서는 이전에 읽었던 호모데우스와 인상이 조금 겹치기도 한다. 왜냐면 앞에서는 우리가 직면해 있는 기술적 도전을 말하기 때문이다. 다만,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는 더욱 냉철하고 깊게 짚고 온다. 호모데우스에서 기억에 남는 '인본주의의 붕괴와 데이터교의 등장'에 대해 21세기 제언은, 그 성질에 대해-우리가 믿었던 직관이 사실은 신경 패턴에 불과해지는 것, 인간이 사회의 움직임에 점점 더 무관해진다는 점을 한 단계 더 파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를 일깨워주는, 눈을 틔워주는 구절은 거의 한 장 걸러 하나씩 있을 정도지만, 그중에서 제4부 '허구'는 정말 인상 깊었다. 허구, 진실이 아닌 것 혹은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데이터로 따지면 정보가 범람하는 바다를 넘어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쓰기에 이르렀고, 기술로 보면 AR과 VR로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지금은, 가히 허구의 시대라 할만하다. 그러나 저자는 '허구'는 지금만 있었던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것이 바로 호모사피엔스 특유의 힘이라고 역설한다. 아, 이전에 어떤 주의(主義)를 종교라고 일컬었던 실마리가 풀린다. 모두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인 것이다. ​종교는 물론이요, 이념, ​국가, 기업, 돈은 허구-상상을 공유함으로써 존재한다. 정말 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실체가 있는가 생각해보면 없다, 허구이다.

 허구는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은 만들어낸 허구에 휩쓸리며, 크게 호모사피엔스라는 공동체는 하나 남은 시대의 이야기인 자유주의가 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그에 대해 당장, 내일로 미루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유발 하라리가 이 책을 펴낸 이유이다. 


 그럼 다시 번 생각해보자. 책에서 제언이라 했으니, 어떻게 더 나은 오늘을 위해 참고할만한 방법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책의 구성은 실로 대단하다. 글은 내가 현재 서 있는 세상에서 내면으로 흘러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개인, 한 개체로 도착하기 때문이다. 하라리가 말하는 바는 '본인을 알아라'이다. 감정은 신경 반응일지라도, 기쁘면 만면의 웃음이 지어지고 심장이 뛰는 것은 사실이다. 허구도 아니고, 밖의 어느 것도 아닌 본인에게 구속되는 것이다. 실은 이 제안은 앞과 이어진다. 다운그레이된 인간이 업그레이드된 인공지능을 사용하게 될 미래, 세계적인 문제 앞에서 허구의 종교와 민족에 사로잡혀 갈라서게 될 미래를 걱정하였으니 말이다. 다르게 말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해진 허구 프레임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신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단 하나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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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백이호 옮김, 이인식 / 김영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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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은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입니다

포크의 갈퀴에 대해서
전혀 질문해본 적 없는 저에게
무척 흥미를 주는 제목이었는데요




책에서는 사람이 만들어낸 물건,
즉 인공물의 변천(진화)을 소재로 다룹니다

그중에서도 복잡하고 커다란 것이 아니라
작으면서도 많이 쓰이고
그 형태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에 주목하죠




'형태를 기능을 따른다'
인공물의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격언입니다만
여기서는 형태는 실패를 따른다고 바꿔버립니다

언뜻 보면
격언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새로운 언사는




사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본 결과로 보입니다

'형태를 기능을 따른다'를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속에서
인공물이 변화할 수 있게금 만드는
사회적 동기를 결함의 발견에서 찾으며,
 
기능을 충족시키는 형태는 하나가 아니기에
디자인이 개입할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는
산업디자인과 관련된 영역에서
또 다른 국면을 열게 되는 책이 됩니다




책에서는 틈틈이 이렇게 과거,
지금의 전 단계를 이미지로 보여줍니다
-캔 따개의 모양이에요!

그렇지만 이런 인공물을 처음 접해보는 사람으로
단편적인 이미지와 글로
작동원리를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덕분에 인터넷으로 다시 찾아보면서
맥주 캔 따개도 수십 가지가 있을 수 있구나
알 수도 있었지만요 


또 아쉬운 점이라 하면
인공물로 하여금 꺼낼 수 있는 이야기와
해당 인공물의 변천을
동일한 위치의 목차로 구성해둔 사실입니다

한 쪽을 우선해 목차를 짰으면
던지는 메시지가 더욱 인상 깊었을 것이라는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공물의 제작 그리고 변화를 풀 수 있는
유용한 실마리를 제공해준 유용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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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인문학 - 색깔에 숨겨진 인류 문화의 수수께끼
개빈 에번스 지음, 강미경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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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컬러인문학>은

이것도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과 마찬가지로

나중에 한번 봐야지! 해두었던 책이었어요





한때 인문학 열풍이 휩쓸었죠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지'에 대한 고민일지

지식을 향한 열망의 표현이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인문학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은

사람살이에 관한 것일 텐데요


컬러 인문학도 다르지 않습니다

혹은 바꿔 말해 '색의 문화사'라고 말해보고도 싶어요




책에서 소개하는 색은

총 11가지입니다


빨주노초파란보의 무지개색뿐만 아니라

갈색, 분홍색

무채색의 하양, 검정 그리고 금색까지


우리 삶에 많은 영향력을 끼친 색들로

골라내었습니다


색깔별로 구성된 책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요




처음 펴보고 받은 인상은

'백과사전 같다' 였습니다


담은 내용 자체가 색의 어원부터 시작해

사회적 이슈, 문화적 함의, 예술작품까지 이르고


색과 연관된 키워드를 제목으로

그리고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그 아래 풀어두어서,


게다가 남부럽지 않은 선명한 사진도 더해지니

정말 백과사전이 된 것이죠






책의 저자 개빈 어번스는 서문에서 말합니다

-색은 사회, 문화에 따라 변화했다고


그리고 이를 문화적 팔레트라 비유합니다


저는 이 표현이 무적 마음에 들었답니다


물감이 무한정이라 하더라도

팔레트를 채우는 것은

팔레트를 가진 자의 몫이니까요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책에서 말하는 문화는

아무래도 저자가 익숙한 그리고 알고 있는

'서양'의 문화에 치우쳐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나라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네요


<파랑의 역사>에서도

남았던 아쉬움이 여기에도 이어집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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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 - 크기의 생물학
모토카와 타츠오 지음, 이상대 옮김 / 김영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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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받아본 책은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입니다


크기의 생물학이라는 부제가 흥미로워

김영사 블로그에 소개되었을 때

찜해두었던 책이죠




생물은 서로 다른 모습,

그리고 서로 다른 크기로 존재합니다


절대적인 연수로는

자그마한 쥐는 고작 몇 년,

커다란 코끼리는 몇십 년의 수명을 얻습니다


그렇다면 크기가 크면 오래 살고

작으면 짧게 살고 그뿐일까요?



아닙니다


수명을 심장이 한 번 박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나누면

포유류는 20억 번이라는

거의 동일한 수가 나오니

결국 똑같은 길이만큼 살게 된답니다


*


이처럼 책에서는

다양한 생물의 활동, 생활을

크기(체중-부피)와 연관 지어 생각해봅니다


즉 (수명/심장박동)과 같이 크기에 상관없는 것과

표면적처럼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을

살펴보는 것이죠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숫자와 공식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래프도요!


이들은 모두 그러한 크기와의 관계를

계산하기 위한 과정이기에


거리낌이 있다 하면

수식에 상관없이 도출되는 결과들만 받아들여도

책 읽는 데 무리는 없어 보여요

(구체적인 수식은 패스한 어느 문과생)


 



이렇게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에서

크기에 주목해 말하고 싶었던 바는


"생물은 각각의 생활에 맞게 디자인되어 있다"

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요?


자연상태 생물들에게 적용되는 식을

대입해본다면


에너지를 무지막지하게 쓰며

자신의 행동반경 내에 많은 사람과 모여 사는

아주 커다란 생물일테지요


게다가 본인이 처한 환경을 바꾼 뒤에만

사용해서 효율을 얻을 수 있는

바퀴까지 사용하니


자연 세계에서 인간은

정말로 커다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물학이라고 적혀있지만

책에 등장하는 계산들만 잘 넘어간다면

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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