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왜 모두 죽어야 하는가
심너울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6월
평점 :
한국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시선으로 SF를 그려내는 작가, 심너울이 새로운 장편소설로 찾아왔다.
<왜 모두 죽어야 하는가>의 주인공은 약사 출신 식약처 공무원 서효원이다. 서효원이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현재가 아닌, 약물 안정성과 효과의 심사 및 분석에서도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인간은 그 과정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저 결과물만을 살펴보면 되는 근미래이다. 그 덕분에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꿈꾸며 공직에 몸을 던졌던 서효원의 일상은 하루하루 보람 없이 흘러갈 뿐이다. 하지만 그런 일상은 갑작스러운 보건복지부 장관의 호출과,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벤쳐기업 잠입근무로 뒤집히게 된다.
금융시장에서 보고서 하나로 기업의 명운을 쥐락펴락하는 기업에, 정부 고위 인사의 명령을 받고 잠입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작가의 다른작품에 비해 그 규모나 이야기의 층위가 높아진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모든 인류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문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틀리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서효원이라는 주인공 또한 대중의 보건을 증진시킨다는 거대한 이상에 비해 자그마한 업무를 가지고 허우적대는 개인일 뿐이며, 서효원이 생사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여러 인물들 또한 한국인으로서 익숙해보이는 소시민 군상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음악에 재능이 있지만 결국 개인 인터넷 방송을 전전해야만 하는 연주자, 과학 연구를 하다가 우연히 합류한 벤처 사업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끼여버린 커플, 전공인 체육에서 제대로된 커리어를 밟지는 못하고 오늘날에 이른 경호원까지. 심지어는 무게감을 가지고 권력의 상징처럼 등장했던 인물 또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저 하나의 한국인에 불과함을 드러내게 된다. 이렇게 소시민적인 모습을 드러낸 인물들과,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움직이는 모습은 인공지능이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하고 실용화된 미래가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한국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SF소설답게 이야기의 가장 핵심 축은 결국 과학이라는 소재가 단단하게 붙잡고 있다. 식약처 사무관이라는 주인공의 직업에 걸맞게, 이야기는 제약업계가 개발하는 새로운 약물과 그 타당성에 대한 확인을 둘러싸고 진행된다. 그리고 이는 모든 인류의 노화와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놀라운 약물과 그 개발에 얽힌 사연으로 전개가 확장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야기를 둘러싼 과학적 내용에 대한 설명으로 책이 꽉 차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부연 설명은 독자가 이야기에 적당하게 몰입될 수 있는 수준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이런 설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가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러듯이, 소재로 등장하고 설명되는 과학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을 통해 이야기에서 어떤 위치와 역할을 차지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 지식이 충분한 독자는 자신들이 아는 내용이 이야기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발견하면서, 반대로 본인처럼 과학에 대한 지식이 미천한 독자는 등장인물들의 모험이 이에 따라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직접 확인하면서 즐길수 있다.
이는 과학이라는 소재를 쓰면서도, 그 과학적 내용과 원리보다는 결과에 대한 사회적 상상에 기반해 서사가 구성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순히 발전이라는 이유로 규범을 어기는 실험이 옳은지, 그리고 그 결과물을 일부만 독점하는 것이 정당한지, 이와 같은 갈등은 비단 소설뿐만 아니라 우리 세상에도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주제이다. 더 나아가, 제약 회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하는 일상적인 일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소설의 결말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한 거인의 위대한 성취에 기반한 부정의보다, 소시민에 불과한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일상적 정의가 더 아름답다고. 과학과 한국의 소시민으로 이야기를 지어내는 심너울 작가다운 결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