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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트] 기억 (총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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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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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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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절대 전자북으로 사지 마세요.
피카소, 샤갈, 뒤셍파트가 없습니다.
전자책은 종이책의 가격 70%인데 책 내용마저 70%라서 어이가 없네요 ㅡㅡ;;
독서모임 나갔다가 피카소, 샤갈, 뒤셍 파트 없어서 난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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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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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프카의 화법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큰 벌레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변신은, 첫구절부터 매우 강렬하고 기이하다.

하지만, 곧 소설 초반부는 그레고르 잠자가 익숙치 않은 벌레 몸체를 가지고 어떻게든 출근하려 하고,

집안 식구와 매니저의 등장에도 출근 걱정하는 것을 담담히 묘사한다.

멀쩡하던 사람이 벌레가 되었다.

처음에야 당황하겠지만 분명 분노와 슬픔같은 감정의 기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카프카는 그냥 그레고르의 벌레가 된 이후의 일상만을 담담히 묘사할 뿐이다.

카프카는 슬프다 외롭다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냥 벌레가 된 이후의 일상을 차분히 묘사할 뿐이다.

변신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은 그레고르가 일종의 소통을 시도하나 실패하는 내용이다.

벌레는 인간의 말을 알아 듣지만, 인간은 벌레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레고르의 소통의 시도들은 모두 무위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카프카는 발성기관이 없어져 말을 하지 못하는 벌레의 생각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족들조차 하지 못한 그레고르의 생각을 알고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독자인 우리야 말로 그레고르의 가족이자 절친이 되어 죽음 앞에 애통해한다.

2. 왜 벌레인가?

책을 읽으면서 첫번재로 궁금해지는 것은 왜 벌레로 변신했냐는 것이었다.

이따금, 우리는 벌레만도 못하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인간으로서의 실존이 아닌 본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난 19세기 말 체코에서도 이와 같은 표현 내지는 생각이 존재했는지 궁금했다.

만약 그렇다면, 왜 벌레로 변신했는지는 간단하다.

그레고르 잠자는 가족과 직장에서 이미 돈 벌어오는 벌레로 취급을 받아온 사람이던가,

아니면 벌레가 되었기에 벌레 취급을 당하던가,

벌레가 될까봐 두려운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서던가 일 것이다.

어떤 이유건, 벌레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가치 저하가 담겨 있다.

소설의 결말은 그레고르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해 있던 아빠와 엄마와 여동생이 각기 경제활동을 하며,

그래도 희망이 있다라며 글을 맺는다.

가족들의 희망은 그레고르가 사람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가족들의 희망은 일정한 수입이 생겨나는 것이다.

아들의 수입에 의존하며, 빛을 갚아야 함에도 가정부를 고용하고 큰 집에 살던 그들에게,

그레고르는 이미 벌레였다.

꼭 남성 가부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현대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보다도,

안정적인 수입이라는,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이라는,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 상태와 슬픈 생존이 가슴 아플 뿐이다.

누구도 자본주의 아니 속물일 수밖에 없는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카프카의 변신은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말하는 꿈의 기능처럼,

불안한 우리들에게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3. 벌레인가, 인간인가? 실존철학

사람이 벌레로 변해있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궁금한 것은 변신한 그레고르는 사람인 것인가 벌레인 것인가이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그레고르는 사람인가? 벌레인가?

사람과 벌레를 구분짓는 것은 존재인가? 본질인가? 형태인가? 행위인가?

사람인가?

본질은 현상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형태는 그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있게해주는 현상의 한 종류이다.

바퀴벌레 같이 생긴 그레고르의 형태는 그레고르가 벌레임을 직관적으로 알려준다.

사람이라고? 눈 앞에 벌레를 보라.

그렇다면 벌레인가?

하지만 그레고르는 여전히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하며,

자신의 취향을 지키려고 하고,

여동생의 연주를 하찮게 여기는 하숙생들에게 분노를 표한다.

의사결정에 따른 행위는 지극히 착하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청년 가장이다.

즉, 정신과 의식은 그가 사람임을 보여준다.

사람인가? 벌레인가?

존재, 본질, 형태, 행위, 어떠한 기준으로 그레고르의 정체성을 규정할 것인가?

정답은 없다. 어차피 개인의 취사 선택일 것이다.

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자유의지는 자기정립의 필연성에 따라 자기의 본질을 규정한다고 이야기 한다.

즉, 존재는 본질에 앞서게 되고 그렇기에 실존인 것이다.

그레고르는 스스로 벌레가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불안한 꿈을 꾼 다음날 일어나 보니 벌레가 되어 있었다.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었음에도 가족의 생계와 안위를 걱정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금식을 하고 죽음을 재촉한다.

그레고르는 소설 속 어떠한 등장인물보다도 인간적이다.

4. 카프카,변신과의 만남 & 새로운 시작

처음 이 작품을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문학회 활동을 하던 나는 동아리 친구들에게서 이 작품을 들었다.

변신이니, 벌레이니, 실존주의니, 꿀먹은 벙어리마냥 듣던 나는 도서관에 가서 찾았다.

아뿔싸, 스포일러는 이래서 돌맞을 짓이구나;

가장 충격적인 부분들을 이미 이야기듣고 책을 읽으려니, 도무지 집중도 감동도 오지 않았다.

솔직히 그 시절엔 인생의 쓴맛이 뭔지 몰라서 더더욱 그랬던 거 같다.

이번 독서 모임에 참가하게 되며 25년만에 다시 손에 쥔 카프카의 변신.

달라진 것은 하나. 이제 인생의 희노애락을 체험한 점.

나는 이제 돈벌어오는 기계같은 삶이 무엇인지 잘 알고있다.

그레고르와 나의 차이점은 사건의 선후관계.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고,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면,

난 이미 혼자가 된 후, 벌레가 되어간다는 차이?

인간성이 나빠야만 벌레만도 못한건 아닐 것이다.

목적이 없는 삶이야 말로 벌레만도 못한 삶이 아닐까?

별 생각없이 참가한 독서 모임에서 25년만에 다시 접한 카프카의 변신은,

내게는 다시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삶의 목적과 희망과 평온함을 소망한다.

 

 

아래는 독서 모임 숙제로 제출한 변신을 소재로 하여 쓴 시이다.

변신 - 묘후

어느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때

나는 홀아비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불안한 꿈은

언제나 나를 숨가쁘게 해

가쁜 숨을 몰아시며

돌아보면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몸을 뒤척여봐도

온기는 없고

주변을 더듬던 나의 손은

빈 자리만 맴도니

축축히 젖은 배게는

분명 땀이면 좋겠다

언제부터 일까

이혼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결혼 첫날

나의 사랑은 가벼워 날아가 버리고

남은 것은 흔한 약속 하나

이마저도 못 지키면

나는 벌레다

스스로 다짐하면서

그래도

망상만은 괜찮지 않을까

자유를 꿈꾸던 7년의 세월

그 배덕감은 나를 휘감고

유혹에 약한 마음은

억센 너의 기세에 초라해진다

어디서 잘못됐는지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몸을 누이면

나는 꿈을 헤매고

아침에 불안한 꿈에서 깨어날 때면

벌레로 변해 있으니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젖가슴을 찾던 손길로 넥타이를 메고

지독하게 반복되는 일상으로

더듬이를 분주히 흔들며

홀로 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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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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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로운 전쟁

인류의 전쟁사를 살펴보면, 이면이야 어찌되었든 표면적인 이유는 정의를 위한 것으로 표방된 전쟁들이 있다.

십자군 전쟁을 생각해보면, 어째서인지 우리는 기독교 십자군은 선하고, 이슬람군은 악한 것처럼 느껴진다.

실상 십자군은 전혀 정의롭지 않은 행위들을 많이 했음에도 말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며 정의를 주장했다.

민간무장단체 알카에다를 처리하기 위해 국가를 침공하는 것에 어떤 정의가 있을까?

이라크 침공의 핵심 요인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지금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왠지 악의 축이었던 정권을 선한 미국 군대가 정의롭게 전쟁을 진행한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수많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들은 대의명분을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다.

그냥 감성적, 감각적으로 미국의 위대함과 미군의 강대함을 관객들에게 심어주려 노력할 뿐이다.

그것 만으로도 우리는 미국의 전쟁 수행이 바르다고 믿게된다.

조너선 하이트의 책은 사람들이 어째서 이런 식의 선악 판단을 하는지 분석해준다.

2. 도덕심리학의 3가지 원칙

조너선 하이트가 정의하는 바른 마음은 쉽게 생각하면 선악판단이라고 보면 된다.

조너선 하이트는 선악판단에 있어서 3가지 원칙이 있다.

 

 

제1원칙, 바른 마음은 철저히 이기적이며 전략적이다.

즉, 자신이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이기적이며 자신의 평판을 올리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선악 판단의 과정은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다음이다."

직관적으로 이미 선악에 대해 판단 후에, 그 판단에 대한 근거(변명)를 추론을 통해 마련한다는 의미이다.

 

제2원칙, 바른 마음에는 다양한 힘이 있다.

이 원칙이 말하는 바는 사람들이 중요시 여기는 도덕적 가치를 6가지로 분류하는 것이다.

그 여섯가지 요소는 배려와 피해, 공평성과 부정, 자유와 압제, 충성심과 배신, 권위와 전복, 고귀함과 추함이다.

조너선 하이트의 설문조사를 통한 통계에 따르면,

진보주의자들은 배려, 공평성, 자유에 대한 가치 부여는 높고, 충성심과 권위와 고귀함에 대한 가치 부여가 낮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6가지 항목 전반에 대해 비슷한 가치를 부여한다.

즉 진보주의자들에 비해 질서를 위한 가치들을 중시 여긴다.

 

제3원칙, 바른 마음은 개인보다 집단의 차원에서 더 강력하다.

이 원칙이 말하는 바는 바른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판단력이 집단에 소속될 때 더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911테러는 그 진실과 상관없이 미국민들로 하여금 보수와 진보주의자 가릴 것 없이,

강력한 국가시스템과 안보, 팍스아메리카나를 강조하는 집단 구성원으로 변모시켰다.

따라서, "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한다."

3. 진보 정당의 미래

이 책이 중요하게 시사하는 바는, 도덕성 특히 군집스위치가 작동된 도덕성은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지난 촛불 혁명과 대선 과정을 통해, 군집된 도덕성의 힘을 체험했다.

군집된 도덕성은 이득이라고 하는 경제적 동인을 뛰어넘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한편, 진보주의자들이 고민하는 현상 중 하나가, 계급 배반 투표 즉, 어째서 중하위권의 민중들이 자신에게 이로운 정책을 많이 펼치는 진보주의 정당에 투표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너선 하이트는 바로 도덕성 때문이라고 답변한다.

진보주의자들은 배려와 공평성, 자유라는 가치를 중요시 여기며, 권위와 충성심, 고귀함이라는 가치를 너무 소홀하기에, 질서와 체계안정을 바라는 보수주의자들에게서 표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어째서 시골의 농민들이 질서와 안정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보수주의자가 되는 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있다.

따라서 진보주의자들은 권위와 충성심, 고귀함이라는 가치에서 보수주의 정당 못지않게 배려하는 인상을 보수주의자들에게 심어주는 선거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보수주의자가 많이 형성되는 지역 내지는 계층에 대한 환경 조사와 그 환경을 바꾸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4. 바른 마음과 태극의 음양

나는 직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그렇기에 직관적으로 사람에 대해 호불호를 판단하면서 그 기준으로 선악판단을 해버리는 나쁜 습관을 조심해야 한다. 선악의 가치판단은 거의 대부분 상대적인 것이며 주관적이기 마련이다.

상대의 올바름에 대해 내가 억지로 판단할 필요도,

나의 올바름을 상대의 기준에 억지로 맞춰줄 이유도 없다.

지극히 서양 윤리학을 이야기하던 조너선 하이트가 결론으로 다가가서는 태극의 음양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결국 서로의 선악은 상황에 따라 음에서 양으로, 양에서 음으로 승강하며 순환하는 가치일 것이다.

이를 이해못하면 결국 위선이 되고 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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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범우희곡선 35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신정옥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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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테니시 윌리엄스, 신정옥 역, 범우 - 묘후(myohoo)


책길 독서 모임에서 이번 주 모임 책을 아주 흥미롭게 선정했다.
'나는 욕망한다'
욕망에 관한 책이면 소제든 주제든 욕망과 관계 있으면 어떤 장르의 책이든 ok.
재미있는 책 선정 방식이다.
주제를 보자 마자 떠오른 책이 있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학창시절 어디에선가 영화 제목으로 처음 접했던 이 작품의 제목.
이처럼 욕망에 대해 강렬히 상징하는 제목이 또 있을까?
비록 어린 나이여서 당시에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제목만은 기억하던 것을 원전인 희곡으로 읽기로 난 정했다.


1. 주요 인물


블랭취 두보이스 : 남북전쟁 이후 북부 공업생산력에 밀려 몰락한 남부 농장 지주의 장녀, 빛더미 부모님의 사망과 함께 저택도 잃고 첫사랑인 남편도 사망한 미망인, 영어 교사


스텔라 카웰스키 : 블랭취의 여동생, 일찍 고향을 떠나왔다, 허식이 있는 언니와 달리 솔직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남편인 스탠리의 난폭한 남성미를 사랑한다. 


스탠리 카웰스키 : 스텔라의 남편, 폴란드 출신 육체파 노동자, 군 복무 경험을 자랑스러워 한다. 직선적이고 동물적인 성격으로 허식에 찬 블랭취에 계속 갈등 관계.


해롤드 밋첼(밋치) : 스탠리의 군대 친구이며 직장 친구이며 동네 친구. 죽음을 앞둔 홀어머니는 밋치의 결혼을 보고 싶어한다. 신사적이고 듬직한 체구이나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



2. 줄거리


스탠리와 스텔라의 집에 평소 연락도 없던 블랭취가 찾아왔다. 그것도 짐을 싸들고.
일찍 고향을 떠난 여동생 스텔라는 고향집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를만큼 서로간에 왕래가 없던 사이.
잠깐만 머무를 것이라는 말과 다르게 블랭취의 무전취식이 길어지며, 하나씩 알게 되는 블랭취의 인생역정.
부모님은 남부 대농장의 지주였지만 사실 빛더미 속이었고, 저택은 이미 사라졌다.
언니 블랭취는 첫사랑이며 배우자였던 앨런이 자살을 하여, 내면 어딘가가 고장난 듯 하다.
스텔라의 남편 스탠리는 폴란드 출신의 전형적인 마초. 임신한 스텔라에게 폭력을 휘두를 만큼 순간의 화를 못참는 다혈질.
하지만 그와의 섹스는 너무나 만족스러워 스텔라는 스탠리의 폭력을 애써 용서한다.
스탠리는 얹혀사는 주제에 자신을 무식한 외국노동자 취급하며 교양있는 척하는 블랭취를 매우 못마땅해 한다.
블랭취가 스탠리의 친구 밋치를 유혹하는 데에 반감을 가진 스탠리가 블랭취의 과거를 탐색하며 둘의 갈등은 점점 고조되는데...



3. 감상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시대적 배경에는 남부 농장 지주들의 몰락과 그들의 타락.
2차 세계대전을 피해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수많은 이주민들과 그로 인한 혼란.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황금만능주의의 가속화 등이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가다 (묘지)라고 쓰인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정거장을 가서 내린 곳, (극락)."
작품 처음에 블랭취가 스텔라의 집을 찾아오며 탄 전차 노선.
욕망과 묘지는 실제로 존재했던 뉴올리언스의 전차 두대의 이름이었다.
윌리엄스는 같은 노선을 다니는 이 두대의 열차 이름이 뉴올리언스 사람들의 삶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고, 새로 쓴 희곡의 제목으로 사용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제목은 블랭취가 결혼이 비극으로 끝난 이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공허함을 남성편력으로 채우는 행위와 묘한 대비를 보인다.

블랭취는 귀부인 척하며 남성들로부터 사랑받으려는 욕망 만이 앨런의 죽음이 안겨준 고독감에서 벗어날 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부정을 통한 자기회복의 욕구.
잘못된 방어기제.
그렇기에 블랭취는 자기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끈임없이 현실과 육체를 상징하는 스탠리와 갈등을 번복한다.
이런 블랭취의 이그러진 본질은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게 된다.


결혼생활에서 하지말아야 할 한마디를 하고만 블랭취.
때문에 결혼은 비극적인 결말.
스스로 망가져가는 순수한 그녀.
자신을 구원하고프나 자꾸 극락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욕망이라는 전차.
우리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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