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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쉼표가 필요하다 - 끊임없는 연결의 시대, 한가로울 자유를 찾아서
마이클 해리스 지음, 김승진 옮김 / 현암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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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초연결 상태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여백 혹은 부재(absence)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변화가 우리 삶의 여러 측면(기억, 데이팅, 정보 얻기, 집중 등)에 끼친 영향을 다루는 책이네요. 재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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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니킬 서발 지음, 김승진 옮김 / 이마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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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Cubed: The Secret History of the Workplace.” 한국어 제목은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영어 제목을 본다면 책은 일터로서의 직장 공간을 강조하고자 하는 미묘한 어감을 풍기고, 한국어 제목은 사무실의 건축적 특성에 좀 더 방점을 둔 것처럼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맞다. 저자는 한편으로는 노동사회학과 경영학의 연구 성과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건축과 도시 계획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사무실이란 어떤 곳인지 또 화이트 칼라 노동은 어떻게 변해왔는지 19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사무실workplace 전반의 역사를 개괄하고자 시도한다. 

19세기 후반까지 우리가 상상하는 화이트칼라들이 일하는 사무 공간은 낯선 곳이었다. 책의 1장은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소개하며 시작하는데, 작품이 쓰인 1853년은 “사무실이 이제 막 세상 사람들의 인식에 잉크 자국을 내기 시작했”을 때였다(23쪽). 19세기 후반까지 사무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전체 노동 인구의 오 퍼센트에도 못 미쳤고 그들의 작업 방식 역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파티션으로 칸칸이 나뉜 좁은 구역에서 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많은 경우 사무원들의 일은 회계 업무나 베껴 쓰기(필경)였고, 이들은 잡화점이나 상사(商社)에서 비즈니스맨과 함께 부대끼며 일했다. 이때 사무원들의 일은 보통 긍정적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남성적이지 않고 미국적 정신에 반하는 것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19세기 후반 대불황을 겪으며 많은 기업들이 수직적으로 통폐합된 경제적 배경과 철도와 우편 등의 인프라가 발달된 사회적 배경 하에서 사무원의 수는 매우 늘어났고, 건축술의 발달로 고층 빌딩이 비록 에어컨은 없었지만 그들을 오밀조밀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미국에서 사무원이 당시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들의 수가 어떻게 늘어났는지를 제1장에서 개괄한 후, 제2장은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 방법과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달, 당시 미국의 노동쟁의와 경영 상황이 우리가 흔히 아는 사무실 공간에 끼친 영향을 다룬다. 

사무 공간에는 남자만 있었을까? 1870년에는 그랬지만, 1920년에는 여성이 미국 사무직 노동자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대부분 속기사나 타자수, 비서 업무에 국한되었지만. 제3장은 사무실 일터에서 여성의 지위를 일과 성(性)의 측면에서 모두 다룬다. 여성의 사무실로의 진입은 여러 의미에서 일터의 질서와 문화에 균열을 냈다(아주 재밌는 부분이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고). 

제4장은 모더니즘과 사무실 건축에 대한 이야기이다 -- 르 코르뷔지에 같은 익숙한 이름이 나온다. 에어컨과 형광등, 달반자suspended ceiling는 현재 우리가 아는 사무 빌딩을 건축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5장은 직전 장과 달리 빌딩 내부의 이야기 -- 사무실 내에서의 인종적 소수자들의 지위, 진취적 정신과 배치되는 관료제적이고 순응적인 조직형 인간들에 대한 무성한 논의들, (오피스 와이프를 포함한) 직장과 아내들의 관계 -- 를 다룬다. 

6장은 초점을 조금 바꾸어, 1960년대 즈음 사무실 내부 공간을 혁신하고자 했던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의 시도를 다룬다. 작업 공간을 창조적인 곳으로 만들고자 했던 시도는 피터 드러커 등의 지식 노동론이나, 과학적 관리 이후의 인사 관리 이론 등의 경영학 성과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딱딱한 사무 공간을 능동적인 업무와 창발적인 성과들이 오가는 곳으로 변화하고자 했던 액션 오피스 등의 시도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저자는 “유연성을 위해 만들어”진 액션 오피스가 “‘인간적인’ 헝겊”으로 싸인 “경직성”을 들여왔다고 지적한다(290쪽; 제임스 스콧의 『국가처럼 보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7장은 6장의 문제의식의 맥을 이어, AT&T의 예시를 중심으로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실패와 사무실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 다음,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끝난 이후의 사무실의 변화를 다룬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는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과 중간 관리자의 대량 해고 등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이러한 배경 속 여성 비서들의 저항 운동이나 사무직 노조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매끄럽게 읽힌다. 

8장과 9장은 현재와 미래의 사무실을 다루고 있다. 미래의 사무실 문화로 지목되는 대표적인 것들은 일과 휴식, 놀이의 경계가 뒤섞인 사무실이나 재택 근무 문화이다. 이러한 혁신들은 주로 실리콘 밸리의 벤처 기업에서 많이 이뤄졌는데, 그것들이 모두 성공적이지만은 않았다. 8장은 사무실의 칸막이를 없애는 등의 시도가 놓치고 있는 것은 일반 직원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수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지, 즉 혁신과 창의라는 미명 하의 계획들이 사무실의 문화를 과대 결정(overdetermine)하는 것은 아닌지 암시한다. 

9장의 말미는 우리가 1990년대 이후 사무실을 혁신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주의해야만 할 것은 바로 늘어난 비정규직 인력임을 보인다. 어떻게 본다면 현재의 사무실 문화는 19세기 중반의 그것과 흡사한 듯하다. “19세기 중반에 노동 시장은 광대하고 규제가 없었다. ... 사무실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 적어도 20세기 초에 등장한 것 같은 형태의 사무실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415쪽) 저자는 책의 앞에서 인용한 C. W. 밀스의 문장을 책의 끄트머리에서 다시금 꺼낸다. 

이렇게 책을 덮으면 종횡무진 이어진 화이트칼라 사무 공간의 역사 기행이 끝나게 된다. 종횡무진이라는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닌데, 저자의 박식함 덕택에 약 150년의 사무 공간의 역사가 건축이나 경영학, 노동사회학, 여성학, 당시의 소설과 광고 등 여러 주제와 제재를 넘나들며 흥미롭게 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정보들을 난삽하지 않고 읽기 즐겁게 이어 놓은 저자의 글쓰기 솜씨도 중요함은 언급해야겠다. 내가 일하고 있는 이 공간의 역사가 궁금한 교양 독자에게도, 아니면 그저 탁월한 논픽션을 즐겁게 읽고 싶은 심심한 독자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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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통치 - 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
조은주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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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경향신문 <다시 쓰는 인구론> 특집에서 다음 책을 알게 되어서 읽고 있다: 조은주, 『가족과 통치: 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 창비, 2018. 어제 빌렸는데 정말 재밌어서 단숨에 읽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가족계획사업과 인구 정책에 집중하고 있는데 푸코의 말년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의 통치성(governmentality) 논의를 주요한 이론적 자원으로 쓰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의 기획은 국가와 사회가 대립한다는 개념적 경계를 넘어서고 어떻게 국가가 여러 가지 통치 테크놀로지를 통해 ‘인구’라는 개념을 발견하고 가족 계획과 섹슈얼리티, 재생산의 문제에 개입하고 그에 관한 사람들의 품행(conduct)을 어느 쪽으로 인도하는지 사회사적으로 밝히는 것이다(국가의 통치 과정은 다음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새로운 [인구의] 통치 과제의 조사와 확정에서 사적 개인과 조직이 행하는 주도적 역할, 전문가들과 행위자들 사이 교류로 이뤄지는 상호작용, 지방자치의 민영화, 자원활동의 동원 등. 콜린 고든, “통치합리성에 관한 소개,” 『푸코 효과』, 난장, 2014, 66-67쪽, 155쪽). 여러 주제를 넘나들기 때문에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의학자들과 사회학자들 같은 지식인들이 국가의 가족계획사업을 제안하고 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사실상 이런 예방의학, 보건학, 가족계획 연구가 국내 사회과학 연구 발전의 중요한 기원 중 하나였다는 내용이다. 4.19 혁명이 일어나기 전 의사이자 보건사회부 차관이었던 양재모는 WHO와 유엔 원조처의 지원을 받아 유럽에 가서 사회보장제도를 연구하는데, ILO 전문위원의 ‘사회보장 시스템보다는 가족계획사업이 훨씬 더 한국에 시급하다’는 충고를 듣고 이후 가족계획 사업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게 된다(『가족과 통치』, 37-9쪽). 양재모가 주도한 대한가족계획협회는 5.16 군사쿠데타 직전에 설립되었고, 쿠데타 이후 급변하는 정치적 기회구조 속에서 양재모가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포함됨에 따라 이후 군부독재 체제에서 인구 및 가족계획의 핵심적 행위자가 된다(같은 책 3장). 세브란스 출신이라는 연줄로 긴밀히 엮여 있었던 의사나 보건 관료들은(양재모를 포함) 전후 미발전한 국가들의 근대화에 관심이 있었던 미국 정부나 여러 재단의 후원과 어드바이스를 받아 인구 및 출산 통계의 설립 같은 통치 테크놀로지를 세우는 데에 상당한 역할을 하는데 여기서 서울대 의과대 교수인 권이혁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인 이만갑과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인구학 연구를 1963년 진행했다. 이후 1965년 서울대학교에 인구연구소가 설립되는데 이는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의 전신이다. 그리고 “농촌지역 가족계획 연구사업팀의 일원이었던 서울대학교 사회학 석사 출신의 안계춘은 이후 인구협회의 지원으로 시카고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70년대 초[1973년] 연세대학교에 사회학과가 신설되면서 교수로 부임한다”(같은 책, 159쪽). 책에서 자세하게 쓰여 있지는 않지만 “가족계획연구원의 연구자들 역시 [미국의 제3세계 원조 프로그램을 통해] 1980년대 초까지 하와이대학교, 시카고대학교 등에서 경제학, 사회학, 인구학, 통계학 등을 전공하여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163쪽)는 언급을 고려할 때 박정희 시대의 가족계획 사업은 한국 사회학의 제도화에 있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6장 "근대가족 만들기"는 미셸 푸코의 "성적 억압의 가설이 잘 유지되는 이유는 그것을 지지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성의 역사>, 1권)라는 말로 시작한다. 섹슈얼리티를 억압과 금지의 이분법으로 사고할 때 우리는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 한국의 역사적 맥락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성 담론이 "금기나 억압, 통제, 금욕적 태도나 보수적 입장"(<가족과 통치>, 184쪽)을 일관적으로 견지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그 함정이 될 수 있겠다. 책에 따르면 기존의 연구는 "가족계획이 보급한 피임의 목적은 단지 임신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출산 조절의 구체적 방법은 비가시화되었고 가족계획과 섹슈얼리티의 연관성은 회피되었으며 성관계는 오직 생식을 위한 것이었을 뿐 쾌락을 위한 성은 죄악시되었다고 주장해왔다"(192쪽).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가족계획은 단순히 피임술의 안내와 보급만을 필요조건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푸코적 이론으로 생각할 때 국가권력의 통치는 각 개인들의 미시적 실천을 합리적이고 정당하다고 인식되는 지식을 활용해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동의를 얻어 특정한 방식으로 규율하고 관리한다. (책의 3장은 1960년대 가족계획 초기, 공무원이나 여성들이 문맹이어서 살정제 피임약 사용법을 인식하지 못해 경구로 복용하여 문제가 생긴 어느 마을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가족계획은 "평범한 사람들이 성행위와 임신 및 출산을 분리시켜 사고하는 태도"(178쪽)를 전제하고 그것을 확산시켜야 했다. 60-70년대 가족계획에 대한 담론은 섹슈얼리티에서 쾌락적 성행위와 생식 활동을 분리시키고자 노력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족계획 담론이 "성에 대한 억압이나 금기, 통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정반대로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인 성의식과 충분한 성지식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성에 대한 보수적 태도를 문제시"했다(181쪽). 이는 대한가족계획협회의 기관지인 <가정의 벗>에서 잘 드러난다. <가정의 벗>은 거의 매호 섹슈얼리티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고, "성적 욕망을 긍정하는 것은 물론 성적 행위의 기술을 강조하고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글을 끊임없이 게재했다"(184쪽). 책이 직접 인용하는 당시 가족계획과 관련된 문헌들을 읽어보면 그 내용이 현재의 여성잡지나 맥심 같은 남성잡지에서 묘사되는 성생활 담론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 상당히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흔히들 자유주의적, 쾌락적 성 담론의 시작을 알린 사건으로 1948년과 1953년에 미국에서 발간된 킨제이 보고서를 꼽곤 한다. 책이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실은 의사 등의 전문가들에 의해 그러한 쾌락주의적인 성 담론이 한국에도 그다지 긴 시차를 두지 않고 유포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킨제이 보고서가 한국에 처음 번역 소개된 것은 1950년대이고, "의과대학 교수들이 집필한 가족계획 안내서 <가족계획>은" 주부들의 성생활에 대한 미국의 통계적 연구들을 인용하고 있다(204쪽). "피임법의 대대적인 선전과 더불어 가족계획의 성 담론은 쾌락적 섹슈얼리티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여러 전문가 담론과 결합되어 유통되었고, 여성잡지를 비롯해 늘어나는 대중매체는 여성들이 새로운 정보, 특히 성생활과 임신 등 여성에게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통로이자 교양 독서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205쪽). 

물론 당시의 가족계획 성 담론은 현재의 성 담론과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여성의 성적 쾌락은 즐거운 것이고 과학 지식을 통해 면밀히 탐구되고 보다 세심한 방식으로 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었긴 하지만 쾌락이 그 자체로 장려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남편과의 '정신적 애정'을 도모하고 가정의 평화를 단단히 하는 보완물의 성격으로 장려되었기 때문이다. 즉 가족계획의 성 담론은 "성의 쾌락적 차원을 혼인관계에 견고하게 위치"시켰다는 것이다(205쪽).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여기서 기든스의 논의를 끌어들인다. 즉 가족계획의 성 담론은 한국의 전통적 가족 관계를, '낭만적 사랑'(romantic love)에 기반한 서구의 '정상적'인 가족관계로 재편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계획사업이 겨냥한 근대적 가족의 모델은 이상적인 자녀 수와 실제 출산자녀 수, 가구 구성원 수의 양적 변화를 수반하는 동시에, 이러한 양적 변화만으로 표상되지 않는 정서적 삶의 재질서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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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 산업도시 거제, 빛과 그림자 질문의 책 22
양승훈 지음 / 오월의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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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내용과 크게 유기적 연관은 없지만 우선 내 경험을 떠올려보는 것으로 시작을. 내가 중학생 때 진학 관련 체험 행사로 서울도시과학기술고등학교(舊 북공고, 서태지가 다녔던 그 학교)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전반적으로는 특성화고(실업계) 고등학교에서는 어떤 걸 하는지 알기 위해서 당시 담임 선생님이 기획했던 행사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교실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가 끝에는 고등학교 교장이 학생 유치를 위해 잠시 동영상과 같이 홍보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용인즉슨 북공고가 이제 쇄신하여 이름도 바꾸었고 주목받는 신진 산업인 해양플랜트 특성화 고등학교로 방향을 정하기로 했다, 운운. 나는 플랜트라 하면 게임 플랜트 vs. 좀비밖에 몰랐었고, 그리고 이것은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해양플랜트가 뭔지에 대한 설명도 뒤따라왔다. 들으면서 음 이런 산업도 있구나. 그때는 신문도 안 보고 그랬으니까 뭐 누군가는 바다에서 원유 시추하는 그런 기계를 만들어야 하겠지 그런데 왜 이름이 플랜트일까 심는다고 해서 플랜트인가… 하고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에 이 고등학교는 해양플랜트 전문 마이스터고등학교로 지정된다.

이번에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양승훈, 오월의봄, 2019)를 읽으면서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해양플랜트’라는 단어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해양플랜트 산업은 책의 전반적 내용을 관통하는 키워드이다. 2008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선박 수주가 감소하고 한국의 조선업 기업들은 위기를 타개할 해결책으로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해양플랜트 수주를 시도했다(168-9쪽). 그런데 이러한 결정은 우선 아주 미시적으로는 현장 노동자들이 그동안 축적해온 지식이 어느 정도 쓸모없어지게 되는 문제를 낳았고(145-6쪽), 그 이외에도 생산관리, 엔지니어-현장의 관계 문제, 그리고 세계 경제의 구조 변동과 긴밀하게 엮여 있는 비정규직·하청 문제와 유럽 업체들과의 기술력 격차(3부 참고)까지 조선소 안과 밖의 맥락을 모두 아우르게 되는 복잡한 문제를 낳게 된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조선업의 위기에 대해서는 자주 듣고는 했지만, 이상하게 플랜트에 대해서는 듣거나 신문에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읽고 나니, 그저 신문 헤드라인으로만 접했던 조선소 위기에 대해 이런 역사가 있었구나 하고 이제야. 그리고 중학생 때의 잊었던 기억이 소환되며, 사실 친구들 중에 도시과학기술고 간 친구는 없지만, 그때 학생들에게는 생소한 해양플랜트산업의 미래를 홍보했던 그 학교 교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2. 
책의 프롤로그를 읽고 조금은 반가웠다. 저자 양승훈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는데, 대학원 다니는 중에 우석훈의 『조직의 재발견』을 읽으며 전통적인 사회과학에서는 잘 다루지 않지만 “기업의 이런저런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직”과 “자본주의의 주요 배역 중 하나인 기업”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28쪽).(그리고 또 조주은의 『현대 가족 이야기』를 읽으며 산업 도시 가족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고 했는데, 조주은의 같은 책은 아니지만 『기획된 가족』을 읽으며 중산층 가족들의 생존 전략이랄지 그런 ‘실제적인’, 꼼꼼한 인터뷰와 민속지로 드러날 수 있는 이야기들에 대해 관심이 생겼던 사람으로서도 반가웠다.) 나는 정치학도 문화인류학도 전공하지 않았지만 경제학이나 경영학이 아닌 이상 비슷한가 보다.(경제학도 그런가?) 어쨌든 적어도 학부 수준에서 가르쳐지는 사회학은 기업이나 산업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다. 뭐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고 조직, 산업 얘기를 꼭 사회학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급되어야 할 부분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인상은 있었다. 조직사회학이나 복지사회학 수업이 갈증을 좀 채워주기는 했는데… 현대 사회의 주요 행위자인 ‘기업’의 행태와 영향을 이해할 수 있는 테마를 다루는 수업은 별로 없었고 그리고 사실 주변에 정치경제학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도 좌파 이론 같은 거나 공부하고 그랬다.(불평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산업의 흥망성쇠를 세계적 맥락과 한국 내부의 특수했던 역사적 맥락과 함께 포괄적으로 다루고 그에 덧붙여 기업 내부의 조직 문화와 숙련의 문제, 산업 도시의 가족들의 생활세계 등의 미시적인 측면까지 조망한 이 책은 참 반가웠고 도움이 많이 됐다. 아쉬운 점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인사이트가 참 많은 책이었다. 트위터에서 약간 화제가 되어 읽었는데 읽기 참 잘한 것 같다. 

#3. 
아쉬운 점. 저자 분도 자주 지적받았겠지 싶지만 사실 책에서 ‘가족’의 이야기가 차지하는 부분이 많지는 않다. 가족 이야기는 1부 2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그런데 95쪽에서 107쪽까지의 절 ‘직영과 외주: 외주 도입의 계보’는 조금 뜬금없다고 생각될 듯하게 조선소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다룬다. 이는 2부 2장 193쪽 이후 ‘벼랑으로 내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부분과 내용상의 연속이 있다. 아쉬운 것은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가 “배제와 포섭을 전제로 한 프로젝트”인데 그 과정에서 기존의 중공업 가족들이 어떻게 “하청 노동자들을 배제”했을까 그 구체적 과정에 대한 내용의 부족이다(113쪽). 단순히 젊은 노동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거제에 뿌리내린 삶보다는 보다 유동적인 삶을 선호한다는 묘사로만은 부족해 보인다. 숙련 없이 하청의 신분으로 거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기존의 중산층 가족을 전제로 짜여진 거제의 생활양식과 도시 인프라에 어떻게 적응하거나 불화할까? 결혼은 어떻고? 등등의 의문이 남는다. 물론 이것에 대해 말하려면 분량 상으로는 책 하나가 더 필요할 것이고 거제 뿐만이 아닌 다른 도시의, 또 다른 산업의 청년 노동자들에 대한 비교도 필요할 것이다. 사실 연구자 한 사람의 역량으로 모두 다루기는 부족한, 거대한 주제긴 하다. 거제를 비롯해 울산 등 도시의 청년·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사회적 차원에서 더 많은 관심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4. 
책에서 다뤄지는 중요한 테마 중 하나가 재교육, 성장의 문제. “하지만 이제는 배움과 성장의 양식이 달라졌다. 산업 보국을 위해 뛰었던 작업장 엔지니어들의 방식이 ‘현장 중심’ 기풍과 이른바 ‘쟁이 근성’에 기초하고 있었다면, 지금의 우수한 랩실 엔지니어들은 오픈소스판에서 뛰노는 해커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 일을 해내려고 한다”(152쪽; 이러한 맥락에서 해커 문화도 다뤄진다). 엔지니어들이 꾸준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뒷받침과 문화의 변화가 필요할까? 조선업의 문제는 단순히 구세대의 학습 문화와 신세대의 학습 문화가 충돌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지리적 문제, 서울-지방의 격차까지 포괄한다(153-5쪽). 뿐만 아니라 IT 산업은 ‘현장’이 필요하지 않은데(160쪽) 제조업 분야는 그렇지 않다는 차이점도 있다. 

이런 설명을 읽어 보고 의문 두 가지.
(1) 조선소 이외 산업—특히 제조업—에서는 엔지니어의 교육을 어떻게 도모할까? “사실 젊은 엔지니어들은 자비를 들여서라도 외부 세미나나 밋업 등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154쪽). 다른 산업에서라고 해봤자 문제가 해결될까, 하는 질문은 아니고, 내가 너무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라 그저 궁금하다. 자기들끼리 깃헙(github) 같은 플랫폼이나 세미나 등의 오프라인 미팅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쌓는 IT 분야의 문화는 익숙하다. 그런데 그런 문화의 전형이 IT 산업에 국한되어 있으니 그것은 IT 쪽에만 특유한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좀 있게 되는 것 같은데… 다른 제조업 부문에서는 어떨지 궁금하다는 지극히 순수한 궁금증. 
(2) 앞의 것과 연결되는 의문? 지금은 안 하지만 중학생 때 프로그래밍도 배우며 서울 지역에서 이른바 ‘코딩’하고 ‘개발’한다는 동년배 친구들(90년대 후반생)과 짧게나마 교류했던 적이 있었다. 신기했던 것은 다들 페이스북이든 트위터로든 연결이 되어 있었고 스타트업 창업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고등학교 생활이 바빠도 많은 이들은 자기가 짜 놓은 코드도 종종 공유하고(내가 중고등학생 때는 github이 대중화가 안 되어 있어서 알아서 페북 그룹이나 개인 웹사이트에 올려 놓았던 기억) 뭐 그랬다. 그러다가 Seoul Bus 같은 앱 만들면 언론에도 나와서 대박 치고… 뭐 그런 것이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중고등학생 나이대 청소년들이 (물질적 보수 없이) 직접 기술을 배우고 커뮤니티도 이루고 직접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만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참 별난 것이었던 듯하다. 그렇다고 코딩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것도 아니다. 이 원동력은 대체 어디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새삼스레 궁금해진다. 

이런 책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Kevin F. Steinmetz, Hacked: A Radical Approach to Hacker Culture and Crimehttps://www.amazon.com/Hacked-Radical-Approach-Alternative-Criminology/dp/1479869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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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 2019-03-31 15: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실 ‘중공업 가족‘ 자체가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고, 실제 피붙이 가족의 이야기는 빈 곳이 좀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거제에서 가족을 부양하면서 살았다면 좀 더 섬세했을 텐데 떠날 때까지 결혼은 하지 않아서 더 그렇기도 했고요.

말씀하신대로 촘촘하게 더 채워야 할, 즉 빈 곳이 많은 책입니다. 추후에 가족의 부분이든, 엔지니어의 부분이든 더 채워야겠지요.

꼼꼼한 서평 감사 드립니다.

- 양승훈 드림 -

karenin 2019-04-01 08:1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원글에는 가족 이야기가 적어 아쉽다고 했지만 작은 아쉬움이었고, 오히려 책이 아니었으면 알 수 없었을 거제 산업 얘기를 잘 전달해 들을 수 있어서 독서 경험이 참 소중했습니다.
경향신문에 쓰시는 칼럼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공현.둠코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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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어림을 근거로 한 부당한 억압과 인권침해에 저항한 운동의 역사를 인물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서술하고 있다. 국내 청소년운동사를 정리한 출판물으로는 첫 책. 한국 인권운동의 또 하나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책이라 평가하면 과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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