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 이타적유전자 (첨부)
이타적유전자 이타적유전자
<이타적유전자>
제목을 보면 이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기적 유전자’는 아마 본질적으로 사람의 유전자는 이기적이고, 그에 따라 사람의 모든 행동은 근본적으로 ‘이기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는 내용일 듯 하다.
그럼 문제는 무언가 이렇게 이기적인 존재들이 사는 사회에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가치를 두는 이타적인 모습이 나타날 수 있는가 인류는 분명 다른 존재, 특히 인간과 진화론적으로 가장 유사한 유인원과 기타 영장류들의 사회와도 분명 차이가 나는, 분명 인간과 그들을 나누는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이타적인 사회를 이루고 협력적 삶을 산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저자는 두 사람의 극단적인 인물의 사상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다.
하나는 홉스이고 하나는 루소이다.
홉스는 성악설을 루소는 성선설을 상징한다.
성악설은 인간은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악한 본성으로 강력한 정부와 같은 통제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반면 성선설은 자연 상태 그대로의 인간이 가장 올바른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 인디언들이 자연과 환경을 영적인 차원에서 보존하는 자연적 삶을 영위해왔음을 과장하여 강조하는 것은 이런 성선설의 영향과 관련된다.
그런데 리들리는 이 두 주장을 모두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인간은 태어날 때 사회적인 본능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 인간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무엇이든 환경과 문화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어떤 환경과 문화 속에서도 분명 드러나는 본성이 있음을 주장한다.
그건 바로 이기적인 본성과 그 이기적인 본성 때문에 가질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본성, 즉 이타적인 행위를 통해 협력하고 협동하는 본성이다.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바로 자신과 가족을 위해, 다른 이들과 본래적으로 협력할 줄 아는 존재인 것이다.
이기적인 인간이 어떻게 이타적인 사회를 만드는가 이것은 저자의 궁극적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그래서 바로 이런 질문에 답이 될만한 기존의 이론과 연구들을 설명하며 자신의 이론을 설정해간다.
답부터 말하자면,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이타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답이 어떻게 나왔는지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살펴본다.
먼저 인간은 왜 다른 이에게 의존하게 되었는가 즉 이기적인 인간이 다른 이들과 협력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노동의 분화에 있는 것 같다.
고차원적 노동의 분화는 분명 다른 동물과 인류를 구분한다.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기에 다른 이들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때의 협력은 분명 자신을 위한 협력이다.
한마디로 자신을 위한 이타심, 즉 ‘이기심을 위한 이타심’ 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의 분화는 분명 자급자족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 준다.
인간은 개인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인간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간다.
그런데 개인의 의지가 사회와 충돌하면 어떻게 하는가 저자는 사회가 기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자주 표현하는 것처럼 사회는 유기적이다.
우리 몸의 구조처럼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다.
그런데 어떻게 이기적인 전체의 부분들(인체의 장기, 사회 속의 개인 등등… 어떤 집단의 구성원에 대해서도 성립한다)은 저마다 전체 조직을 배반하지 않고 그 전체에 순종하는가 인간의 몸을 비롯해 사회와 같은 유기체는 조직 전체에 해를 끼치는 이런 부분들의 배반이나 반란을 억제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배반이나 반란의 억제는 분명 전체를 위한다는 이타적인 동기가 아니라 동료의 배반으로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이기적인 불안으로 인한 것이다.
여전히 존재는 이기적이다.
결국 개인은 개인을 위해 집단에 순종하는 것 뿐이다.
`죄수의 딜레마`라는 것이 있다.
공범의 두 죄수가 있다.
두 사람이 서로 의리를 지킨다면 그들은 서로에 대해 불리한 증거를 한 경우보다 형량을 줄일 수 있지만 어쨌든 그들은 유죄다.
그러나 한 사람이 배신을 하면 그는 훨씬 유리해지지만 상대방은 훨씬 불리해진다.
즉 서로가 협동해 약간의 이익을 같이 보느냐 아니면 배신해서 더 큰 이익을 보느냐의 딜레마다.
문제는 어떤 경우든 배신하는 편이 분명하다.
따라서 서로가 상호 배신을 할 수 있다.
상호 배신은 둘 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 딜레마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까
학자들은 다양한 게임이론으로 문제상황에서 사람들의 행동유형을 관찰했다.
이를 통해 `맞대응`과 `파블로프`와 같은 전략이 인간사회에서 가장 널리 채택되고 또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 핵심은 사람들은 상호배신을 통해 모든 잃기보다는 얻는 것은 조금 적어도 안전하게 서로가 조금씩 얻는 것을 택한다는 것이다.
서로간의 의사소통과 의식수준이 높을수록 이러한 경향은 강해진다.
맞대응은 말 그대로 다른 이가 배신하지 않으면 나도 역시 배신하지 않고 다른 이가 배신하면 나도 복수하는 전략이다.
배신이 일어나면 복수의 악순환이 일어나지만 한번 신뢰가 구축되면 그 신뢰가 지속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파블로프`처럼 순간적인 배신을 아량으로 넘기면 지속적인 신뢰와 협동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런 전략이 가장 많은 것을 얻는다.
즉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가장 안정적인 행동전략대로 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기적인 동기로 협력의 `전략`을 택한다.
사람들의 이타적 행위와 협력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큰 흐름은 `호혜주의`이다.
즉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잘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즉각적인 보상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보상을 받으리라는 믿음 말이다.
여러 미개부족과 영장류 실험에서 보듯이 이타적인 행동은 무조건 다른 이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보상을 위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선물을 주는 것도 사람들에게 `부담감` 또는 ‘의무감’을 주어 자신을 기억케 하는 일종의 장치이다.
받기 위해 주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이타적’이 아니라 ‘이기적’인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도대체 무엇을 받느냐이다.
내가 한 행동을 그대로 받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많은 경우 인간은 좋은 평판을 위해 이타적인 행동을 보인다.
물론 좋은 평판은 많은 경우 후에 실질적인 보상으로 다가오지만 `좋은 평판`이라는 이기적인 동기로 인간이 이타적 행위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미개 부족 행위를 보면 작은 동물은 자기 가족들만 소유하지만 큰 동물은 많은 부분을 다른 이에게 베푼다.
왜냐 물론 큰 동물은 협력해야 잡을 수 있고 고기 역시 자기 가족이 다 먹기 어려워서이기도 하지만 나중에 자신 또한 그런 도움을 얻기 위함이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앞에서 `맞대응`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여기에 석연치 않은 것이 있다.
분명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인간은 어떻게든 다른 이들을 배신하는 것,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이기적`인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이성적으로. 근데 왜 인간은 그렇게 하지 않는가 답은 우리의 삶이 이성으로만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볼 때 이렇게 바보스러운 삶을 사는 것은 바로 우리 삶에 `감정`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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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타적유전자 이타적유전자 (첨부)
출처 : 탐구스쿨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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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이타적유전자 이타적유전자
파일이름 : 이타적유전자 이타적유전자- 2 .hwp
키워드 : 이타적유전자이타적유전자,이타적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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