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 CHROMATOPIA
데이비드 콜즈 지음, 김재경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8월
평점 :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했을 이야기. 하지만, 몰라도 불편하지 않아 금방 잊어버린 물음들. 그런 궁금증과 물음을 일깨워 주는 책을 너무나 사랑한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도 내겐 그런 책이었다. 솔직히 미리보기를 통해 본 책 속 사진들이 너무나도 매력적이라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아동수당으로 받은 돈을 문구점에 가서 물감과 펜을 사느라 다 써버렸을 정도로 워낙에 색칠하고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와 나.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컬러'에 대해 더 알게 되고,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나갔다. 그 결과 아이에게 컬러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었고, 아이도 이 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를 읽으면서 지금은 너무나 간단하고 편하게 색칠할 '색'을 구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더 이상 흰 색을 얻기 위해 동물뼈를 태우고, 검은 색을 내기 위해 램프의 그을음을 모으지 않아도 된다. 노란색을 얻기 위해 독성이 있는 오피먼트를 채굴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 말 그대로 원하는 '컬러'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의 노력과 희생을 생각하니 주위에 있는 사물들이 품고 있는 '컬러'들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긴 시간 동안 많은 이들과 사연을 가지고 내게 온 '컬러'라니 절로 사랑스럽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콜즈는 물감을 만드는 일을 한다. '색을 만들고 담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일생을 색과 함께 보냈다.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우연에 가깝다. 가족에게 물려받은 유산, 우연한 만남, 실수 등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다. 무엇보다 내겐 흙을 색으로 바꾸는 연금술에 대한 끈질긴 고집이 결국 내가 설립한 물감 제조회사를 세계에서 인정받는 뛰어난 유화물감 회사로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광고 일러스트레이터였다고 한다. 자연히 물감, 종이 등이 가득했고 자연스럽게 미술 쪽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특히나 작업실에 있던 안료들은 그가 세계 곳곳의 안료의 기원에 흥미를 갖게 한다.
거의 40년간 색을 만들어 왔지만, 난 아직도 감성을 자극하는 색의 힘에 놀란다. 안료의 아주 오래된 역사를 접했을 때나 세련된 안료를 처음 봤을 때, 감전된 것처럼 설렘과 즐거움을 느낀다.
색을 만드는 일을 하는 이가 들려주는 '색'의 역사. '색'을 찾고, 가공해서 색을 뽑아내고, 담아내는 과정을 들으며 설레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아무래도 '최초의 색'은 어떤 형태였을지가 제일 궁금했는데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안료는 '오커'라고 한다. 오커는 황토를 뜻하고 인간이 만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은 오커를 사용해 동물, 사람 영혼을 묘사한 그림이라고 한다.(p17)
p.17
오커가 사용된 흔적의 기원은 250,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생략) 천연 오커에 함유된 철로 다양한 노랑, 빨강, 갈색을 만들 수 있다. 고대에는 천연 광물을 땅에서 줍거나 채굴해 단단한 돌에 빻아 가루로 만든 뒤 물과 섞어 물감으로 썼다. 후기 문명에서는 이 과정을 개성해 먼저 오커의 불순물을 씻은 다음 건조해 곱게 빻았다.
책 제목이 '예술가들이 사랑한' 이 붙어 있는 만큼 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특히 이번에 클래식클라우드의 <페르메이르*전원경>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라피스 라줄리'를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페르메이르가 파란색을 나타낼 때 즐겨 사용했고 그 가격이 비싸서 그림을 많이 그릴 수 없었다는 대목도 있던터라 궁금했다.
p.65
라피스 라줄리의 색은 라피스 라줄리를 구성하고 있는 푸른 광물인 라주라이트(천람석)에서 나온다. 첸니노 첸니니는 라피스 라줄리를 모든 색을 뛰어넘는 가장 눈부시고 아름다우며 완벽한 색이라고 묘사했다. (생략) 라피스 라줄리 100g에서 추출할 수 있는 울트라마린은 고작 4g으로, 비싼 가격 탓에 성모마리아처럼 그림에서 중요한 인물이나 대상에만 사용됐다.

화가들이 사랑한 색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니 보다 그 화가의 작품의 의미가 와닿는 것 같았다. 이처럼 구하기 어려운 물감을 사용했다니 하는 놀라움과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얼마나 고단했을지 하는 공감이 한층 깊어진다.
노란색하면 고흐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가 노란색을 표현 하는데 사용된 것은 크롬산남 안료였다고 한다.
p.123
1816년부터 널리 사용되기 시작해 반 고흐를 포함한 많은 예술가에게 지지를 받았다. 크롬산납이 변색된 대표적인 예로 고흐의 노란색을 꼽을 수 있다. 따뜻한 노란색이 지금은 초록빛을 띠고 힜다. 크롬산납은 80년 동안 사용되다 카드뮴으로 빠르게 대체됐고, 19세기 말에는 예술가의 팔레트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클라우드 모네는 '드디어 대기의 진짜 색을 찾았다. 바로 보라색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다. 인상파 화가들은 망가니즈 바이올렛을 숭배하다시피 해서 비평가들에게 바이올렛 마니아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에 쓰인 색과 그 색을 만드는 재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너무나 흥미로웠다. 독성이 있는 안료로 인해 사람들의 목숨이 위태로웠다는 사실도 무척이나 호기심을 자극했다.
에메랄드 그린은 이름은 너무나 멋지지만 매우 유독했다고 한다.
p.125
버디그리에 비소 화합물을 반응시켜 만든 에메랄드 그린은 여전히 젤레의 녹색처럼 매우 유독했는데, 인쇄된 벽지에 자주 사용되어 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독성에 노출됐다. (생략) 유아원에 있던 아이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일도 있었다.
다행하게도 지금은 생산이 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1960년대가 되어서야 금지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약 2천 년 동안이나 꾸준히 생산된 리드 화이트 역시 치명적이었다.
p.39
은처럼 하얀 리드 화이트는 수백 년 동안 예술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안료였다. (생략) 물감을 제한된 시간에만 쓰는 예술가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리드 화이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두통, 기억력 상실, 복통 같은 중독 증상을 보이다가 마침낸 죽음에 이른다.
이 역시 지금은 다른 징크 화이트, 타이타늄 화이트로 대체되어 안전하게 하얀 색을 사용할 수 있다.

고대의 사람들도 색을 추출해낼 수 있었다면, 우리도 물감을 자연에서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런 상상을 눈치 챘는지 저자는 책 후반부에 집에서 물감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리드 화이트를 만드는 법, 울트라 마린을 만드는 법 등이 있는데 너무나 위험해 보이고, 소위 말하는 가성비가 너무나 낮아 보였다. 그 정성과 비용과 안전성을 생각한다면 바로 화방에 가서 물감을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다른 동물들과 인류가 다른 점은 글을 쓰거나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 이런 것만 생각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또 다른 차이가 보였다. 바로 '색'을 찾아내고 표현하려고 애쓰는 종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다양한 색을 보고 느끼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창의성과 사고하는 힘이 길러지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아이가 마음껏 색을 찾고 표현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줘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책을 덮었다. 너무나 즐거운 '색' 이야기. <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