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는 천천히 걸을 것 - 율리와 타쿠의 89일 그림일기
배율.진유탁 지음 / 김영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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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는 천천히 걸을 것>

배율,진유탁

김영사


아, 어쩌나. 여행 가고 싶다. 언제 떠날 수 있을지 모르니 늘 가방에 여권을 넣고 다닌다던 어떤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큰 고민 없이 가방만 대충 챙겨 당장 떠나고 싶다.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들, 그러니까 설렘과 긴장 사이에서 느껴지는 ‘낯선 여유로움’이 책 속 모든 그림과 단어 사이에서 넘실거린다.

나는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 중에서 가장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잘 모르는 미지의 무언가를 딱히 달가워하지 않는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나에게 여행은 절대 휴식일 수 없었다. 물론 아름다운 경관과 미술품들, 음악과 이야기들은 좋은 영감이 되었지만 매번 여행을 떠났다 돌아올 때마다 마음 한 켠에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남았다. 비행기 좌석에 모로 누워 고민해 보고 있노라면 아, 그래, 나는 부지런히 찾아가는 여행을 싫어하는구나- 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이 나를 찾아오는 여행이라면 나쁘지 않겠다, 하는 생각에 닿았다.

이런 나에게 <치앙마이에서 천천히 걸을 것>은 마치 나의 마음을 누군가가 대필해준 책처럼 느껴졌다. 내가 걷는 곳에 나른히 불어오는 바람같이, 늘 함께 있었던 비슷한 온도의 공기같이, 어느새 찾아오는 풍경들, 노래들, 사람들. 내가 추구하는 여행의 형태이다. 나는 이걸 ‘게으른 여행’이라고 부른다. 나이브함의 끝을 달리는 여행.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보지 못한 관광지도 많을 것이고, 먹지 못한 맛집도, 그럴듯한 기념사진도 찍기 어려울 테지. 하지만 이 책 속에서 ‘내가 별난 부류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여행객도 있다고 생각해주시길’이라는 문장을 발견한 이후로 나의 치밀하지 못한 여행을 사랑하기로 했다.

“딱 맞는 껍데기를 찾은 소라게는 다른 소라게보다 성장이 빠르다. 나는 딱 맞는 껍데기를 찾은 소라게의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82p


“자고, 먹고, 일하고. 더불어 놀고, 운동하는 일상들이 작은 병정 무리마냥 착,착,착, 줄지어 간다. 에너지가 넘치는 여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익숙했던 일상도 아닌, 딱 그 중간쯤 되는 생활. 별 것도 아니면서 가끔은 새로 발견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 하루를 채우는 날들. 내가 알기론, 바로 그런 걸 ‘평화로운 날들’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116p


사실 요즘 비슷한 분위기의 여행 에세이를 많이 접했다 보니 책의 초반부까지는 크게 인상적인 부분이 없었다. 인스타툰, 글, 사진들이 어떤 날의 일상을 재잘재잘 말하는 조금은 성긴 구성. 하지만 한 장씩 읽어나갈 때마다 어쩐지 편안해지는 기분이, 마음에 쏙 들었다. ‘맞아, 이런 기분이지!’ 공감 가는 구석이 많았다. 꼼꼼히 기록된 타인의 여행에서 이런 공감대를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글이 꾸며진 여행기가 아닌 담백한 일기였기 때문이다. 치앙마이에서 무엇을 봐야 하고 무엇을 먹어야하 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와 같은 여행정보는 없더라도, 여행지에서의 기분, 감정, 마음, 대화, 웃음, 평화, 여유같은 것이 가득하다. 가본 적도 없는 치앙마이가 괜스레 그리운 것도 같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끝나면, 나도 노마드가 되어 어딘가를 떠돌고 싶다. 목적지 리스트에 치앙마이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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