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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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는 제목 그대로 '제이 개츠비'라는 한 젊은이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궁전 같은 저택에서 매주 화려하고 성대한 파티를 여는 수수께끼의 인물, 개츠비. 사실 개츠비는 가난한 집 출신으로 오로지 첫사랑인 데이지에 걸맞은 남자가 되기 위해 각종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여 막대한 부(富)를 쌓았고,우연히라도 그녀를 만나고자 매주 파티를 열었다. 


그러나 문제는 개츠비 인생에서 이루어야 할 유일한 목표인 데이지가 그다지 이상적인 인물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책임하기 그지없고 속물같은 그녀에게 자신의 낭만과 이상의 꿈을 맡긴 것은 커다란 실수였다.(그 불안한 꿈을 끝까지 믿고 목숨까지 잃는 개츠비, 이 바보 멍충이)


하지만, 데이지는 개츠비가 세상에서 처음 만난 '멋진' 상류층 부잣집 아가씨였고, 개츠비 자신도 그녀의 목소리는 ‘돈 냄새'로 가득 찼다고 말한 점을 미뤄 볼 때 개츠비는 이미 데이지가 완전무결한 장미는 아니었음을 알고는 있었던 듯하다.


사실 등장인물 중 화자인 닉을 제외하고 - 소위 말하는 전통적 부자 - 모든 인물에게는 도덕적 결점이 있다.마지막까지 오지도 않을 데이지의 전화만을 기다리다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 이르러 비로소 나는 개츠비의 '위대함'을 어렴풋이 깨달았고, 나의 마음은 연민으로 가득 찼다.


"다들 썩었어." 나의 외침이 잔디밭을 건너갔다. "너는 그 빌어먹을 인간들 다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이야." 그렇게 말했던 것이 지금도 기쁘다. 처음부터 끝까지를 그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내가 그에게 해주었던 유일한 찬사였다.

P190 김영하 역 (2009,문학동네)


닉이 어찌나 고맙던지. 그래서 '나 대신 이렇게 개츠비한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고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닉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는지 모른다.


《위대한 개츠비》의 열성팬으로 유명한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책을 읽어 보긴 했는데, 무라카미씨가 말한 거처럼 이 책이 그렇게 대단한 책인지는 잘 모르겠어요."라며 의문의 표정을 짓는 사람이 종종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라카미는 《위대한 개츠비》이 왜 대단한 작품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이유를 도리어 모르겠다고 한다.


'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하지?'와 '아, 역시 대단해!'를 순차적으로 느낀 한 명의 독자로서 나는 우선은 한 번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설사 당신이 '에이 이게 뭐야, 낚였네!’로 결론을 내린다해도 영미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칭송받는 작품을 일단은 읽어 봤다는 점에서라도 의미 있는 독서 활동이 될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이야기하면서 번역 이야기를 빼 놓을 수는 없을 듯하다. 김영하 작가의 번역본 출간으로 이처럼 번역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출판사 마케팅 전략으로까지 이어진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김영하 작가, 김욱동 교수 그리고 김석희 번역가의 역저 순으로 읽어 보았는데, 나는 역시 영미문학연구회 번역사업단이 정확하게 번역하였다고 평가한 유일한 번역본의 역자, 김욱동 교수님의 손을 감히 들어 주고 싶다. 작품에 대한 철저한 분석에 기반한 친절하고 정중한 번역이었다.


김영하 작가의 경우, 본인이 소설가임을 전면으로 너무 내세웠고, 젊은 개츠비를 지향했다고는 하나, 인물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부족하게 느껴진 대사 번역과 정갈하지 못한 문장에 크게 실망하였다. 또한, 가독성을 위했다고는 하지만, 문장을 너무 자주 잘랐고 때론 뭉뚱그려 번역한 부분이 눈에 보여 솔직히 잘 한 번역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김석희 번역가의 경우, 다소 고리타분할 수 있는 김욱동 교수님의 번역과 소설가의 강점을 내세운 김영하 작가의 번역의 중간 지점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역자 후기를 읽으면서 어디선가 봤던 문장이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들춰보니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후기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점을 발견하였다. 


두 사람이 작가에 대해 조사하며 같은 텍스트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출간 연도와 프랑스어, 영어, 일본어 번역을 하고 있는 초능력자 김석희 번역가임을 생각할 때, 아무래도 의심의 무게는 김석희 번역가에게 기울어진다. 출판사 홍보 당시 '한국 최고의 번역가, 김석희'라는 문구를 내세웠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뭔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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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탄생 - 한국어가 바로 서는 살아 있는 번역 강의
이희재 지음 / 교양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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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번역은 외국어 실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한국어 실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들 한다.

《번역의 탄생》의 부제는 '한국어가 바로 서는 살아 있는 번역 강좌'입니다만, 정말 이 책을 딱 한 문장으로 절묘하게 나타내주는 문구가 아닐까? 아직 책 전체를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지금까지 읽은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한국어의 중요성'이야말로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원문에만 얽매이는 직역이 '낮은 포복'이고 원문보다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중시하는 '의역'이 '고공비행이라면 나는 아슬아슬한 '저공비행'이 좋다고 생각했다. 원문의 결을 어떻게든 살리고자 원문에 가까운 표현을 이리저리 궁리하다 보니 한국어의 구석구석을 보통 사람보다는 자세히 들여다본 것 같다.


나 역시 저자처럼 '낮은 포복' 자세로 움츠려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였다. 자신의 한계를 깨트리고자 했던 저자의 시도를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저에게도 ‘알을 깨고 나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물론 제 안에서의 수많은 ‘투쟁'이 필요하겠만서도.)

저자의 언어에의 각별한 애정과 해박한 지식에도 여러 번 감탄하였다. 머릿속에 지식이 많아도 그걸 상대가 잘 알아먹게 맛깔나게 풀어서 설명해 주시는 분이 많지는 않은데, 여러 언어의 특징이나 역사를 재미나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풀어주는 방식이 좋았다. 그리고 본문 문체가 높임말이어서일까? 문체에서 저자의 성품이 드러나는 듯하여 그 또한 좋았다.

마지막으로 번역을 하면서 그때그때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많은 표현과 예시가 있었던 점도 좋았다. 역시 번역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 봐야 할 바이블과 같은 책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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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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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물농장》은 늙은 수퇘지 메이저가 한밤중 농장의 동물들을 모아 놓고 전날 밤에 꾼 이상한 꿈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한다. 


메이저는 동물들의 삶이 비참한 이유는 인간이 동물의 생산물을 몽땅 가지고 가기 때문이라며 인간을 몰아내야 한다고 한다. 며칠 뒤 메이저는 숨을 거두고 얼마 후 동물들은 무능한 주인 존슨 씨를 예상 밖으로 아주 싱겁게 내쫓아 버리고 농장을 차지하게 된다. 그들은 농장의 이름을 ‘동물농장’으로 바꾸고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는 구호 아래 ‘동물주의(Animalism)’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한다. 


하지만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돼지들은 어느 순간 권력을 잡고, 똑똑한 돼지 나폴레옹과 스노볼은 풍차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치열한 권력 싸움 끝에 승리한 나폴레옹은 스노볼을 쫓아내고, 무서운 개를 앞세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점차 완벽한 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다시 존슨 씨가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며 불안을 조성하고, 불평하거나 항의를 하는 동물은 스노볼의 첩자로 몰아 숙청하기도 한다. 


‘동물주의’를 간단히 줄인 ‘일곱 계명’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지워지고 덧씌워진다. 돼지들은 존슨 시대보다 훨씬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고, 동물들은 이전보다 한없이 고달픈 나날을 보내게 된다. 소설은 마지막에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분간이 어려운 상태에서 끝이 난다.


1903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벵골에서 태어난 조지 오웰은 유년기에 영국으로 돌아와 명문 사립학교 이튼스쿨에 입학하지만, 여기서 상처 가득한 소년 시절을 보낸다. 이후 버마(현 미얀마)에서 대영 제국 경찰로 근무하게 되는데, 이때 그는 영국 제국주의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이후 유럽으로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고 파시스트에 맞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뒤 오웰은 드디어 정치적 목적으로 글을 쓰게 된다. 


아마도 그가 평화로운 시대를 살았다면 구소련의 전체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동물농장》이나 정보가 통제된 암울한 미래 국가를 그린 《1984》와 같은 작품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볼셰비키 혁명에서 스탈린 독재 시대에 이르기까지 구소련의 정치 상황을 풍자한 《동물농장》. 작가는 작품에서 권력의 중심이 어떻게 이동하고 특권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를 놀랍도록 실감 나게 그려낸다. 인간이 누구인지, 동물은 누구인지, 독재자 나폴레옹과 그와 경쟁하다 쫓겨나는 스노볼은 또 누구인지. 은유와 비유가 이렇게도 적나라한 작품이 또 있을까? 


소설에서 동물들이 농장을 차지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돼지들이 우유와 사과를 돼지들 몫으로 빼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이때 동물들이 침묵 대신 항의를 했었다면 권력의 타락을 막았을지도 모른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오웰은 이 장면에 숨겨두었다. 


자신들의 소중한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보편성의 시각에서 우리에게 전한다. 


91년 냉전 시대에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초강대국 소련은 국제무대에서 힘을 잃고 허망하게 무너져 버렸다. 집권 기간 동안 수천만 명을 학살하고, 유배 보낸 구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 최근의 한 설문조사의 결과, 절반 이상의 러시아인들이 스탈린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소비에트 연맹에의 향수로 ‘강한 러시아’를 주장하는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여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려 했다는 명목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소설 《동물농장》은 단지 구소련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삶 속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불편한 현실을 투영하고 있다


이 작은 우화(寓話)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던지는 강렬한 메시지는 아직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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