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보름
R. C. 셰리프 지음, 백지민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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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구월의 보름』은 평범한 영국 중산층 가족의 보름간의 휴가를 통해, 일상 속에 깃든 인생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입니다. 특별할 것 없는 가족의 여름휴가를 그 무엇보다도 특별하게 풀어냅니다. 소중한 매일매일을 흘려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소설은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듭니다.




기억에 남는 책구절


책구절 1

“휴가를 떠난 사람은 상황만 조금 달랐어도 자신이 되었을지도 몰랐던 사람, 자신이 되었을 수도 있었던 사람이 된다. 모든 이는 휴가 중에 동등하다. 모두가 비용이나 건축 기술일랑 고려하지 않고 저마다의 성을 꿈꿀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35p)


매년 찾아오는 휴가가 특별할 것 없으면서도, 더없이 특별한 해방의 시간이라는 것이죠. 


책구절 2

“하지만 그는 시간은 시계의 바늘에서나 균등하기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에게 시간은 미적대면서 거의 뚝 멈추어 있는가하면, 재빨리 내달리고, 절벽을 뛰어넘듯 훌쩍 사라지거나, 다시금 미적댈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약간의 슬픔을 품고서 알았던 것은, 시간이 종국에는 늘 따라잡는다는 것이다.” (209p)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시간의 상대성, 그리고 결국엔 누구나 공평하게 시간에 따라잡힌다는 사실이 슬프면서도 담담하게 다가옵니다.


책구절 3

“인생의 황금 같은 시간은 기억이 꼭 붙들 수 있는 예리한 윤곽을 남기지 않는다. 읊조린 말들도, 작은 몸짓이며 생각도 남지 않으니, 깊은 감사함만이 시간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머무른다.” (341p)


지나간 아름다운 시간은 우리 기억에 뚜렷하게 남지는 않지만, 그 시간에 느꼈던 감사와 따뜻함만은 오래도록 남는다는 이 구절, 소설이지만 한 편의 시구 같은 아름다운 문장이에요.


책구절 4

“그녀는 둘리치의 집을 떠날 때부터 휴가가 끝나기 전에 무언가 굉장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이 글래펌 환승역에서 함께 서서 기차를 기다렸을 적에, 기차가 호샴에서 빠져나갈 때 그들이 함께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었을 적에, 그들이 보그너의 길거리를 통과해서 시뷰로 다 함께 걸어갔을 적에, 거듭 또 거듭 그녀는 이휴가가 마지막일 거라고, 그녀가 아버지와 어머니, 딕과 어니와 다시는 결코 이렇게 하지 못하리라고 느꼈다. 슬프고도, 다소 아쉬운 감정이었고, 지금에서야 그녀는 그 의미를 이해했다. 근사한 시절이었다, 보그너에서의 이 휴가들은. 하나 그런 시절들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다. 그런 시절들이 해를 거듭하며 계속되면서, 죽어가는 어린 시절의 불씨에 미약하게나마 부채질을 시도할 수는 결코 없었다.” (384p)


구월의 보름을 한 부분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바로 이 구절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께 드리는 추천의 말


『구월의 보름』은 가족과 함께한 평범한 휴가, 그 속에 담긴 소중한 순간들, 그리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잔잔한 여운을 남깁니다. 지친 하루하루를 뒤로 하고 여름휴가를 떠나고 있는 여러분, 근래에 바쁘게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기억에 남기기 조차 어려운 여러분, 여러분만의 보름을 가방에 넣고 밖으로 나서보세요.


* 이 글은 독파챌린지 서평이벤트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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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하는 뇌 - 인간의 뇌는 어떻게 영성, 기쁨, 경이로움을 발명하는가
앨런 라이트먼 지음, 김성훈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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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라이트먼의 영적 유물론 소개서, <초월하는 뇌>이다.

문과인들에게 미리 고하자면, 이 책은 과학자가 유물론으로 이야기하는 철학서라고 말하고 싶다. 따라서 처음에는 유물론적 서술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과학적 이성과 영적 경험 간의 조화를 하나의 가능성으로 제시하는 저자의 관대함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

<파이돈>을 중심으로 저자는 죽음이 존재의 종말은 아니라는 희망을 전한다.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죽음을 목도할 제자들에게 원자로 돌아갈 영혼의 불멸성을 논증하여 그들의 슬픔을 달래주려 했던 것처럼, 멘델스존 역시 그의 <파이돈>을 통해 그의 자녀들의 이른 죽음이 소멸이 아닌 불멸이라는 희망을 전하고자 했다.(32p) 최근 한강 작가로부터 시작된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메시지도 큰 틀에서는 죽은 자들의 원자가 오늘날 산 자들로 전해지는 그 연결성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영적 유물론과 맥을 같이한다.

또한 저자는 영적 경험과 과학적 진리를 단절시키는 과학적 시도를 사회적 분열에 버금가는 행위라고 이야기한다.(222p) 저자는 인간은 진리에 대한 지식을 끊임없이 열망하지만, 죽기 전까지 궁극적인 지혜에 절대로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존재임을 이야기한다.(58p) 진리에 대한 열망은 완전성과 완벽성을 향한 인간의 본성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진리는 닿을 수 없는 이상과도 같다는 것이다. 유물론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영역과도 같은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그렇게 신의 변덕스러움에서 인류를 해방시키고자 한 시도였지만 결국 유물론과 신적 경험은 완벽하게 분리될 수 없다.(75p) 그렇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유물론적 우주에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신과 과학의 전쟁이라고도 이야기하는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영적 경험과 과학 사이의 균형을 제안하는 앨런 라이트먼의 영적 유물론은 어느 것이든 하나를 분명하게 선택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나와 세계의 관계를 되새기며 이성적 위로를 안겨준다.


* 이 글은 다산북스 <정의수업> 서평단 이벤트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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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수업 - 삶에서 무엇을 지켜낼 것인가 스토아철학 4부작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이경희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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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홀리데이의 스토아철학의 절정, 정의수업이다. 영문 제목을 풀이하자면 '옳은 일을 지금 당장 하자'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대한민국의 정의가 뒤흔들리는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다. 무엇이 정의인지, 나의 정의는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누구라도 이끌어주었으면 싶은 시기에 정의수업을 만났다.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이 시대의 정의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만 한다.(19p) 나 자신 하나 곧게 세우기 어려운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정의는 우리가 접근하기 쉬운것이고 그래서 더 인간적인 것에 있다.(46p)
아마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공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 예를 들어 정치인이나 공무원 혹은 기업인들이 제발 좀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조차도 그랬으니 말이다. 제발 나이를 먹었으면, 그 오랜 경험을 쌓았으면,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면 더 열린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들이고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기꺼이 어려운 이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느냐고.(376p)
그러나 곱씹어보니 이 책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읽어야 했다. 길을 잃을 때마다 책장에서 꺼내 되내어야 하는 건 우리였다. 공정하고 멋지고 올바른 사람이 책임지는 세상이 너무나도 느리게 찾아오기까지 우리 자신이 스스로 영리하고 유능하고 역량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223p)
이 혼란함을 어떻게 헤쳐나가야할 지 막막한 우리에게 굳건한 힘을 주는 책, 정의수업이었다.

* 이 글은 다산북스 <정의수업> 서평단 이벤트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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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흐르는 대로 - 영원하지 않은 인생의 항로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해들리 블라호스 지음, 고건녕 옮김 / 다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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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처럼 작가의 이야기와 함께, 삶이 흐르는 대로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의 마지막과 삶의 끝자락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곁에서 나의 현재와 내 삶의 앞으로의 흐름이 보인다. 아마 이런 이유로 작가는 "이번 생에서 다음 생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이 얼마나 불가해하고, 강렬하고, 감동스러운지"를 전하고자 12개의 이야기를 엮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이 흐르는 대로>를 통해 내가 다른 이들에게 단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호스피스 간호가 얼마나 아름답고 용기있으며 다정한 치료인지에 대해서이다. 작가의 아버지조차 "환자가 그냥 죽어나가도록 내버려두는 간호사"라고 이야기하는 호스피스는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 계속해서 미지의 세계 속의 신비로운 요정같은 직업일 것이다. 부디 이 책의 독자들이 마지막 페이지를 내려놓으며 "유한함을 받아들이고 흘러가는 대로 내맡길" 삶의 마지막 여정을 묵묵히 함께 걸어가는 호스피스 의료진들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 이 글은 <삶이 흐르는 대로> 서평단 이벤트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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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재킷 창비청소년문학 127
이현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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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시작하기 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이 작품의 분류에 대한 이야기이다. <라이프 재킷>은 청소년문학으로 소개된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청소년이기 때문에 청소년문학인걸까? 하지만 이야기의 충격과 여운은 어른의 마음까지 파도처럼 출렁이게 한다.

이야기는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아이들로부터 시작한다. 한순간에 자신의 자리가 없어진 아이들이 호기롭게 자신이 잊히기 전에 다른 이들을 잊어버리겠다며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을 떠나는 그 순간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 모험의 과정에서 사랑을 배우고, 시작을 꿈꾸며, 다시 한 번 집을 가질 수 있기를 염원하기도 하고, 생과 사가 얼마나 허무한지 온몸으로 부딪히기도 한다.

이 모든 이야기에서 우리는 책임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고, 그에 따르는 책임이 있음을 요트 위의 아이들은 끊임없이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는 그 무정한 진리에 겁을 먹고 피해버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지는 단 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바다에서의 시간이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진리는 하나다. "삶은 바다처럼 무정한 것이다. 파도의 일을 막을 수는 없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그럼에도 파도에 삼켜지지 않는 일이다.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결국 나 스스로 선택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그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 또한 나 자신뿐이다.

*창비 출판사의 가제본서평단 참여를 통해 작성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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