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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아물지 않는다 -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이산하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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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를 강요하지 않는 깊이 그 자체. 곁에 두고 페이지를 가만가만 넘겨보는 것 만으로도 위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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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남덕현 지음 / 빨간소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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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슬픈 것들이 타 죽기에 딱 좋은 빛깔’의 ‘노을이 코앞까지 번져올’ 때 책을 덮었다. 창밖 아카시아 나무의 까치둥지가 붉다. 바람이 거센지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며칠 전부터 부지런히 집을 짓던 까치들은 어디로 갔을까? 완성된 집이라고 보기엔 뭔가 어설퍼만 보인다. 북풍한설이 얼마나 매서운데 깜냥없이 지금 집을 지을까? 하릴없이 방구들에 누워 창밖의 둥지를 헤아려본다. ‘고작 저 높이와 빈약한 벽 하나로 은밀한 사적 영역을 지키겠다는 의지는 얼마나 가련한가.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면 나의 집도 저만치 가련하리라.’는, 점(占)집 처마 밑에서 비를 긋는 작가의 상념이 문득 서럽다. 어쩌면 사람이 태어나 사는 일도 제 ‘깜’ 모르고 집 한 채 짓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며, 그 처마 밑에서 비긋기를 기다리며 담배 한 개비 피우는 일이거나, 한모금의 담배연기처럼 사라져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여기 이렇게 집 한 ...채를 짓는 사람들과 비긋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담배 한 개비 물어 태우는 사람들이 나온다. 뭔가 어설프고, ‘드잡이면 어떻고 막무가내면’ 또 어떤 사람들이 ‘핵교서 정식으루다 배우든, 핵교 담장 배까티서 야매루다 배운 처지든’ 피아(彼我)의 구분 없이, 새둥지 나뭇가지 엮이듯 얼기설기 엮여 ‘의미가 아닌 소리’를 자아낸다. ‘핵교 담장’은 ‘살아온 내력이 진실을 직관하는데’ 아무 경계도 되지 못한다. 그저 내가 있으니 너가 있고, 너가 있으니 내가 있으므로 우리 함께 ‘말반죽’을 치대며 소리를 내고 어울렁 더울렁 장단 맞춰 살아갈 따름이다. 그러다 종당에 그의 시 「기도•2」(시집 『유랑』)에서처럼 ‘인간의 삶이란 급히 떨어지는 한 방울 눈물 같아서, 스스로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을 겨를이 없으니, 당신이 옆에서 어, 어 떨어진다, 떨어진다, 큰소리로 외쳐주시면 그때서야 툭 하고 숨을 놓으’면 그뿐인 것이다.
소리를 내어주고 들어주는 일 모두 공명(共鳴)일 것이다. 웃음을 내어주고 들어주는 일, 울음을 내어주고 들어주는 일도 모두 공명일 것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이니 그저 웃을 수 있을 때 웃고, 울 수 있을 때 함께 울 수 있기를, 작가가 들려주는 삶은 그렇게 공명하는 삶이 아닐까?

거미 한 마리 벽을 타고 지나가는 어스름이다. 부지런히 상념을 물어다주는 개 한 마리가 내 옆에서 목덜미를 긁는다. 어디선가 제 몸보다 긴 나뭇가지를 물고 까치가 날아왔다. 정월의 보름달이 가까운 날이다. 곧 ‘달 밝으니 만 가지 근심이 따라 밝아지’는 밤이 되리라. 만 가지 근심이 밝아지다 보면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완전한 질문으로 이끄는 직관의 문’도 따라 열릴 듯하다.
바람길 솔솔 난 둥지는 허물어질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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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 미장원에서 노마드시선 7
조연희 지음 / 노마드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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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온 다음날이었다. 젖은 낙엽이 보도블록에 질펀했다. 개중 검붉은 단풍하나를 주웠다. 잎맥을 따라 찢어진 단풍잎이 막 떠오른 햇살에 말라가고 있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가방에 있는 책 속에 끼워 넣었다.

 

오늘, 불현듯 낯선 남자의 스킨냄새에서 망각한 애인을 되살리듯 책갈피에서 단풍잎을 발견했다. 단풍잎이 꽂혀있는 자리는 조연희 시인의 시집 야매 미장원에서고도리편이었다.

 

창밖에서는 쏴아 흑싸리 흔드는 소리가 들리고

그럴 때마다 얘, 누가 온 것 같아.

엄마는 2월 매화 열 끗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오빠가 집을 나간 건 기러기가 대이동을 하던 계절이었다.

팔월 공산의 세 마리 새처럼

그렇게 지붕을 넘어간 가족들

 

나는 칠월 홍돼지처럼 날마다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다.

정말 형편없는 패야.

철마다 매화 벚꽃 난초 모란 국화가 피어나는

카키색 군용 담요는 한때 우리의 정원

우리 가족 다섯, 고도리처럼 다시 모여

함께 만두를 빚을 수 있을까.

그러나 삶은 뒤집어야만 볼 수 있는 패였다.

엄마가 찾고 있는 패는 없는 게 아닐까.

언니는 왜 섣달 비 쭉정이 같은 사내를 꼭 쥐고 있는 것일까.

 

, 누가 온 것 같아.

엄마는 끝나지도 않은 화투를 접으며 말했다.

열 끗 중 한 개의 패가 내 아버지였지만

아직도 난 내 패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 <고도리> 전문

 

10월에 나온 시집에 ‘10월 단풍이 시 <고도리>에 꽂혀있는 운명이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이 있는 붉은 국화나 꺾어 말릴 것을 그랬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시인의 말처럼 삶은 뒤집어 보아야 볼 수 있는 패이니 말이다. 그날, 그곳, 그 나뭇잎, 10월 단풍, 그 책, 그 시, 그 자리. 이제는 과거인, 현재였던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나다운일이 그 단풍을 주워 그 자리에 끼워 넣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운명 같은 우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며 시를 읽는 것이다. 뒤집어보아야 알 수 있는 패이니 읽어보지 않고 무슨 수로 배길까. 오늘, 이곳, 이 자리, 야매 미장원에서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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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었으므로, 진다 - 이산하 시인의 산사기행
이산하 지음, 임재천 외 사진 / 쌤앤파커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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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하듯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는가.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입술이 달싹여지는 순간 이름은 만들어지는 언어가 아니라 새어나오는 소리였다. 아무리 붙들려고 해도 붙들리지 않는 끝내 터져 나오고 마는 소리.

동백꽃은 낙화의 과정 없이 그 생살을 잘라 툭 떨어진다. 죽음을 예고하지 않는 자, 지켜보는 이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조차 주지 않는 한 순간의 절명에 난 차마 눈물도 뿌릴 수 없다. 동백의 임종을 지켜볼 수 있는 건 동백 스스로 뿐, 그는 우리를 허하지 않는다.

시인은 그렇게 홀로 산문(山門)에 들어 죽고, 다시 산문을 나서며 태어났다. 그리고 그 죽음과 삶 사이, 아니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산사에서 바다처럼 출렁이고 산처럼 무너지며한없이 낮아지다가 끝내 삼키지 못하고 흩뿌려지는 마지막 숨결을 거두어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숨결을 소리로 풀고 글로 적어 내려갔을 것이다.

 

보리암의 3층석탑은 나침반을 불구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한다. ‘자기가 지금까지 믿고 의지해왔던 그 나침반이’ ‘한순간에 아무 쓸모도 없는 폐품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인은 깨달았다고 한다.

자기부정!

안다는 것,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그 앎을 공고히 하는 것보다 부수어버리는 일이 더 힘겹고 용기가 필요함을 시인은 나침반에 빗대어 역설하고 있다.

문득 새벽닭이 울기 전 예수를 세 번 부정한 베드로가 생각났다.

예수의 예언에 그는 죽으면 죽었지 예수를 부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 단언했다. 그의 믿음에 대한 자부심은 붉은 침이 항상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과 같았으리라. 그러나 곧 끌려가는 예수의 등 뒤에서 예수를 세 번이나 부정하고 만다. 붉은 침은 방향을 잃고 흔들렸을 것이며 그는 허물어지듯 엎드려 통곡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 인간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었습니다. 주여 제발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 세 번의 부정은 예수를 배반한 것이 아닌 자기배반, 자신을 무너뜨리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들판에 자라는 풀 한포기와 다름없이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파헤쳐지는 나약한 한 존재로의 자기인식. 이 세상의 모든 선하고 악하다고 일컬어지는 인간들과 결코 내가 다르지 않다는 뼈아픈 자기고백. 어쩌면 모든 숭고한 삶은 내가 남과 다르지 않다는 처절한 자기고백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그 끝에서 부복한 몸을 일으켰을 때 비로소 귀가 열리고 눈이 떠졌을 것이다. 그제야 아프고 고단한 삶 속의 사람들에게로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실상을 보며 가슴으로 껴안아 흐느껴 울었을 것이다. 그리고 담담히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을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한없이 낮아지려던 그는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나침반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의 붉은 침은 어디로 향하고 있었을까?

나는 시인의 나침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시인은 시인대로 자신의 나침반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늘도 묵묵히 길 떠날 차비를 할 것이다.

 

시인이 끊임없이 산사를 돌며 생사를 거듭하는 것은 아마도 단단해지는 아상에서 벗어나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함일 것이다. 그 모습이 아름답든 추하든 고개를 돌리지 않고 두 눈 부릅떠 낱낱이 해체해보려 함일 것이다. 그리고 금강저를 든 티베트의 승려들처럼 자신의 해체된 정신을 단숨에 쓸어내 버리려는 것일 터였다.

나는 시인을 생각한다. 백지 같은 마음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산문을 나서는 그의 걸음을. 그 걸음은 빠르거나 느림 없이 단조롭고 허허로울 것이다.

그가 스스로 상처 입은 구슬이 되어 우리들 곁에 돌아왔다. 그리고는 영혼을 지닌 것은 완벽할 수 없고 완벽 속에는 영혼이 없노라고 속삭인다. 또한 완벽한 세계를 완성으로 보지 않고 인간적인 것을 완성으로 보는 인디언의 통찰을 들려준다. 처음부터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노라고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완벽할 뿐이라고. ‘상처와 결핍을 인간의 완성을 위한 존재로 보는 인디언의 영혼, ‘이 세계는 인디언의 목걸이들처럼 어디든 상처가 있고, 그 상처가 하나라도 아물지 않고 남아 있다면, 그 세계는 완전할 수가 없다는화두를 건네고 있다.

 

나는 오늘 시인에게서 깨진 구슬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이 구슬로 목걸이를 만들던 만들지 않던 그것은 나의 선택일 것이다. 다만 나는, 금계꽃을 들고 선 부처님을 보고 가만히 미소 짓던 가섭처럼 깨진 구슬을 들고 빙그레 웃고 싶을 뿐이다. 피었으므로,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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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꼬미 탐험대와 달달마녀 1 - 커져라 마법가루를 찾아라!
박희연 지음, 이중삼 그림 / 연리지(꼭사요)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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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꼬미가 울고 갈 정도인 편식쟁이 울아들!!!

하나밖에 없는 이 녀석 입맛이 어찌나 까다로운지 항상 고민이지요.

밥상머리에서 투정부릴 때는 한 대 콩 쥐어박고 싶은 과격한(?) 맘이지만

먹지 않는 아이 앞에서 자꾸만 나약해지는, 어쩔 수 없는 맘이기도 하지요. 

아마 이 땅의 모든 맘들이 저 같은 마음일 거예요.

그러다 우연찮게 '쪼꼬미'를 알게 됐어요.

'편식탈출'이라는 조그만 글귀가 제 눈엔 어쩜 그리 크게 뜨이던지......

표지의 고등어, 토마토, 콩 등의 캐릭터를 훑어보면서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어요.

설마 하는 마음은 금세, '오호라~ 제법인걸!' 바뀌게 되더군요.

편식이나 음식을 다룬 책은 많잖아요.

거기서 거기겠거니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다르더라구요.

무엇보다 창작동화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모험담에다

정말 언제 싫어했나 싶을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럽게 그려진 음식대장들!

(눈초롱 당근이랑 힘불끈 쌀, 슬기쑥쑥 고등어, 키쑥키쑥 우유 등)

책을 읽은 저녁 밥상에서 그 싫어하던 당근을 만난 울아들.

눈초롱 당근 한 번 먹어볼까, 젓가락이 절로 가더라구요. (물론 씹으면서 썩 달가운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꿀꺽 삼키더라구요. 기특기특~!!)

ㅋㅋ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아참! 덜덜마녀와 인스턴트 악당들의 우스꽝스런 모습도 아이의 재미를 한층 올려주더군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2권에서 어떻게 이어질지 아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답니다.

처음 혹시나해서 서점에서 1권만 사갖고 온 게 안타깝더라구요.^^*

 

중간중간 이어지는 '꼭 알아두세요'라는 코너도 좋았어요.

엄마, 아빠를 비롯하여 아이까지 두루 알아두면 좋을 내용을

쉽고 편안하게 적어놨더라구요. 어려운 낱말풀이도 그렇구요.

무엇보다 형식상 가볍게 올려놓은 것이 아니라 비교적 자세하게

정말 공부도 겸할 수 있는 거 같아 좋았어요.

단순히 편식 뿐만이 아니라 상식이나 예의범절까지 익힐 수 있겠더라구요.

아이가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학습하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달달마녀를 만나 쪼꼬미의 키가 커지는 그 날을 기대하며

울아들의 편식탈출 모험도 계속되겠지요.

아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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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맘 2004-09-2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게 씩씩하시고...또 애들 책을 다 읽으시나봐요. 아, 키쑥키쑥이 등장인물에서 나온 거구나...전 그것도 모르고 애들이 키쑥키쑥 하길래 키득키득이거나 으쓱으쓱인 줄 알았는데...저도 이따가 좀 들여다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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