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고종황제의 고명딸인 덕혜옹주는 5살때 즉조당유치원이 만들어질 정도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1917년 민중들의 존경을 받는 대한제국 황실의 영향력을 두려워한 일본 제국에 의해 덕혜옹주는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명으로 일본황실 황녀로 정식 입적되었다. 서울의 히노데(日出) 소학교를 거쳐 일본에 강제유학을 간 그녀는 1925년 도쿄 가쿠슈인 대학(学習院大学)에 입학하였지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신경쇠약에 걸렸다. 1930년 모친 복녕당 양씨의 죽음을 계기로 정신분열증(조발성 치매증) 증세를 보였으나 이내 호전되었다.

일본 황태후 사다코의 명령으로 1931년 5월 8일 도쿄에서 쓰시마섬 도주인 소오 다케유키(宗武

志, 종무지
)과 강제 혼인하여 이듬해 8월 14일, 딸 마사에(正惠, 정혜)를 낳았으나 출산 후 지병이 악화되어 1953년 남편 다케유키[1]에게 버림받고 말았다. 1955년에는 딸 마사에마저 행방불명되는 불행을 겪었고, 1962년 1월 26일 귀국할 때까지 정신장애로 도쿄 인근의 마쓰자와병원에 입원하는 비참한 생활을 전전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일보매일신보에서 기자로 일한 김을한 기자에 의해 알려지면서 대한민국에 귀국하였다.

1961년 11월, 미국을 방문하던 도중 일본에 들른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이방자 여사와 만난 자리에서 덕혜 옹주의 얘기를 듣고 무릎을 치며 “그런 분이 있었냐”고 말했고 그 뒤, 박정희 정권에서 제창한 '구황실재산법 제4조 시행에 관한 건'으로 구황족에 포함된 그녀는 1962년 1월26일 오후 12시35분 김포공항을 통해 고국에 돌아왔으며 이후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지급받으며 창덕궁에서 생활하였다. [2] [3] 이는 조선일보동아일보1930년 모친상을 치르기 위해 조선을 방문한 덕혜옹주의 행적을 존경심을 담아서 보도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4]

귀국 후에는 의민태자이방자 일가 및 유모 변복동 여사와 함께 창덕궁에 기거하며 노환으로 고생하다 1989년 4월 21일, 수강재(壽康齋)에서 타계하였다. 그로부터 9일 후인 4월 30일, 의민태자비도 서거하였다. 현재 덕혜옹주의 무덤은 아버지 고종황제의 능인 홍릉(洪陵) 뒤에 있다.




자세히 나와 있는 블로그 

http://blog.naver.com/mishina?Redirect=Log&logNo=150008679902
 

 

 

 

덕혜옹주님 자체가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 그 자체였다고 생각 됩니다. 

이 책은 읽어 보지 않더라도 덕혜옹주가 누구인지는 꼭 알아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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